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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간 '자원봉사'를 한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이 '자원봉사'인 줄 몰랐다

자원봉사자 김경희 할머니의 솔직한 고백

  • By HuffPost Korea Partner Studio
  • 입력 2018.09.28 15:58
  • 수정 2018.10.01 15:46

“몰랐다. 그게 봉사인지.” 22년간 자원봉사를 해오신 김경희님의 충격적인 코멘트다. 김경희님은 이렇게 말한다. “학창시절에 봉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을 골목을 쓸면 옆집 순자도 동네 건달 철수도 우르르 나와서 같이 쓸었다. 시끌벅적 웃기고 투박했지만 일하는 모두가 참 예뻤다. 지금까지도 내가 생각하는 봉사란 그렇게 일상적인 것이다.”

ⓒImazins via Getty Images

김경희님은 평소 노인복지회관에 들린다. 한 명 한 명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눈을 마주하고 따스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누구든 구구절절한 사연을 털어놓고 싶을 것이다. 인터넷 방송 ‘유튜브’에서 ‘박막례 할머니’가 우리를 웃음으로 무장해제 시킨다면 ‘김경희 할머니’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호탕한 웃음소리로 우리에게 행복을 전한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가며 일을 하지만 월 수익은 ‘0’원. 무급으로 일하는 김경희님은 22년간 자원봉사에 앞장서온 자원봉사계 대표 선행 이웃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KBS·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김경희님은 ‘이게 상 받을 일이냐.’라고 말한다. 다음은 그녀가 전해주는 ‘봉사’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김경희님(왼쪽)이 '몰빵바자회'에서 김장을 하고 있다.
김경희님(왼쪽)이 '몰빵바자회'에서 김장을 하고 있다.

50대 때 내가 자원봉사로 바빴던 솔직한 이유

Q. 김경희님은 꾸준히 자원봉사를 하셨다. 원래부터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었나?

A. 처음엔 자원봉사라는 뜻도 잘 몰랐고 사람들이 이러저러해서 일손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도움을 주는 정도였다. 김장하기, 어르신 말벗해드리기, 경로 식당에서 밑반찬 만들기처럼 간단한 일들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봉사가 생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봉사 정신이 투철한 것도 아니었고, “지역에 의미 있는 일을 하자”라는 마음이 있었던 건데 지금까지 이어진 거다.

Q.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사건이 있다면?

A. 88올림픽 때 텔레비전에서 자원봉사자가 일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데 눈을 뗄 수 없었다. 좋은 일에 사람이 모이면 많은 물결이 생기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태안 기름유출’, ‘신종인플루엔자’ 발생 현장처럼 많은 손이 필요한 곳에서 급식소 운영 및 구호품 지급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최근엔 김해에서 열린 ‘경남도 생활체육 대축전’에서 ‘김해시 자원봉사회’ 회장으로 자원봉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백여 명이 1만 개의 도시락 및 물품을 지원했다. 비가 많이 와 쫄딱 젖었지만 다들 몸을 사리지 않고 솔선수범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시는 분들은 다 그렇다. 신기한 일이다.

Q. 자원봉사를 시작하는데 타이밍이 있다면?

A. 자원봉사는 때가 없다. ‘내 생활도 감당 못 하는데’, ‘도움이 될 만큼 일을 잘 못 한다’며 미루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런 사람들에겐 꼭 지금이라고 얘기한다. 우리 시 행정이 미처 닿지 못하는 소외된 곳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절박하다. 자원봉사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잘리지도 않는다.(웃음) 능력보다 책임감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경희님(오른쪽)이 ‘도민체육대회 자원봉사자 발대식’에 참여하고 있다.
김경희님(오른쪽)이 ‘도민체육대회 자원봉사자 발대식’에 참여하고 있다.

하나뿐인 나의 10대 그리고 ‘나눔’이라는 단어

Q. 김경희님의 10대 때는 어땠나?

A. 난 10대에도 성격이 드셌다. 자원봉사자 동료들이 나를 ‘호랑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아직도 그 성격이 어디 가지 않은 거다. 내 고향은 ‘진해’다. 진해에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친구와 체조하고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다들 한 마음으로 동네 골목도 제집처럼, 어려운 이웃도 제 가족처럼 다 챙기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다 ‘나눔’이고 ‘봉사’였다. 모두가 ‘자원봉사자’였다.

Q. 자원봉사를 강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학창시절엔 의무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하고 학부 시절엔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의무 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오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봉사의 매 순간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더라. 학생 중엔 의무 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왔다가 진심으로 자원봉사에 올인하는 경우도 있다. 봉사의 즐거움을 자기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봉사는 대가가 없는 일이 아니다. 봉사가 일상이 되면 ‘나눔’이 주는 기쁨으로 하루하루의 활력이 솟고 삶의 질도 덩달아 올라간다.

ⓒThomas Barwick via Getty Images

 “귀찮다. 화가 난다. 민망하다. 성가시다.”

봉사 시간을 ‘채우러 가면’ 드는 감정이다.

김경희님은 인터뷰 내내 봉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기쁘다. 반갑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cristinairanzo via Getty Images

나누는 삶은 ‘드라마’처럼 극적인 결말은 없지만 무엇보다 값지다

Q. 자원봉사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자원봉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다. 많이 힘들고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봉사하는 데 어려운 점이 ‘하나’라면 즐거운 일이 ‘아홉’이다. 봉사는 저의 활력이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즐겁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행복하다. 이웃들이 보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탬이 된다는 것 자체로도 매우 기쁘다.

Q. 자원봉사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A. 몇 년을 걸쳐 도와드린 이웃주민 한 분이 있었다. 그분에게 밑반찬을 보내줄 땐 늘 야단법석을 떨어야 했다. 반찬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았고 술에 취해 있을 때가 많았다. 집주인도 쫓아냈다. 월세를 못 내고 술을 많이 마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오갈 데도 없으신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자원봉사자들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집을 구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동장님과 자원봉사회가 임대 주택을 마련하고 월세를 일부 지원했다. 이제는 술도 끊고 새 보금자리에서 새 출발하신다고 들었다. 감동적인 일이다.

Q. 2017년 보건복지부 ‘대한민국 국민나눔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다. 국민훈장은 국민의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이라 그 의미가 크다.

A.감사한 일이다. 사실 봉사 현장에는 나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봉사라는 긍정적인 힘을 원천으로 동료 자원봉사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원봉사자가 되고 싶다.

봉사활동을 한 번이라도 해본 당신에게 추천하는 소식

김경희님은 인터뷰 내내 화기애애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어떤 질문에도 솔직하고 쿨했다. 나이를 먹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체득된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했다. 이런 그녀에게 ‘나눔국민대상’은 22년간 세상과 모질게 쌓아온 추억일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대한민국 나눔국민 대상’으로 평소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한 분들과 기관을 발굴해 시상하고 있다.  작년에는 자원봉사, 기부, 헌혈, 장기기증, 멘토링 활동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한 155명에게 나눔국민대상이 수여됐다. 오는 10월, 2018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이 시행된다. 올해는 어떤 나눔 실천자들이 나눔국민대상을 수상할지 기대된다.

ⓒThomas Barwick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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