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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음악가에게

ⓒChalffy via Getty Images
ⓒhuffpost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에서 사교 모임을 준비하는 젊은 귀족은 이런 불평을 한다. ”음악이 좋으면 아무도 듣지 않고, 음악이 별로이면 아무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건 19세기 말 이야기였다. 당시엔 음악이 필요하면 음악가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해야 했다. 2018년인 지금 우리가 식당, 카페,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해도 이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녹음된 음악이다. 실제로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이 존재할 수 없었던 시절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음악을 책임졌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와 함께 가라앉으며 비장한 표정으로 마지막 연주를 하던 음악가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뮤지션들이 그렇게 멋진 이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단한 연주가가 있었다기보다는 ‘딱히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 음악 좀 한다는 사람은 저 아저씨밖에 없으니까’라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1987년에 낸 장편 ‘푸른 수염‘에서 ‘대단치 않은 재능’의 소유자라 칭한 이들이 있다. 동네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던 사람, 춤이라면 최고로 꼽히던 사람, 이야기 솜씨가 좋기로 유명하던 사람 등등이다. 이들은 한때 지역사회의 보물과 같은 존재였으나 매스미디어가 퍼진 후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겨뤄야 하다 보니 재능을 선보일 기회를 잃어서 이젠 그저 흥 많은 이웃 정도로 통하게 되어 버렸다고 보니것은 말한다.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하루의 시작을 프랭크 시내트라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지, 옆집 아저씨의 노래로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옆집 아저씨 손을 들어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늘 있었고, 거기선 언제나 음악이 흘렀다. 옆집 아저씨와 라디오와 주크박스, 모든 형태의 음반과 디지털 장비들은 모임의 분위기가 썰렁하든 화기애애하든 늘 최선을 다해 연주해왔다. 대단치 않은 재능과 대단한 재능을 음악에 써준 모든 이에게 새삼 감사를 보낸다.

* 조선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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