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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음복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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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물려받았다. 첫 제주 노릇은 설날 차례였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을 때였으니, 2월 남반구의 오클랜드는 햇볕 쨍쨍한 한여름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제사 음식을 만들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제사상 진설을 한 경험이 백번도 넘었다. 그런데도 부모님 없이 처음 모시는 차례상 차리기는 허둥거림의 연속이었다.

어찌어찌 상차림을 마친 뒤, 따가운 햇볕을 커튼으로 가리고 땀을 닦으며 차례상 앞에 잠깐 멍하니 서 있는데 뭔가가 발을 잡는다. 돌을 갓 넘긴 아들이 기어 와 내 종아리를 잡고 일어선다. 눈앞에는 아버지의 영정이, 아래는 갓난 아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순간 막막한 느낌과 함께 뇌리를 때렸던 생각은 ‘아,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였다. 서른도 중반을 넘겨서야 어른이 되었다니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구나’라는 결심을 한 순간이지만)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차례를 모시는 내내 비감하고 무거운 마음이었다. 결국 차례상을 물리기 전 음복이라며 퇴주를 몇잔 마셨더니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생전에 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도, 또 지금 사는 이야기들도 아버지에게 고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기제사건 명절 차례건 나와 아버지의 대작은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자주 하지 못했던 부자간의 취중 대화를 일년에 서너번은 하는 셈이다. 지엄한 제사 법도를 지키는 양반네들이 보면 천하에 상스러운 짓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것이 가장 신실한 제사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 아버지도 종종 제사상을 물리기 전 퇴주를 마시면서 뭔가 주저리주저리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배워 아버지와 나의 전통이 된 ‘음복 토크’다. 평소에는 과묵했던 아버지도 명절이면 음복주에 취해 이런저런 살아오신 얘기를 내게 들려주시고는 했다.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제사를 모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돌아가신 가족을 애도하기 위해, 그리고 그분과 나의 관계에 집중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분에게 못다 한 얘기를 들려드리며, 저세상의 망자와 이 세상의 자손이 촛불과 향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삶과 죽음을 나누는 행위가 제사의 가치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만한전석을 방불케 하는 각종 음식을 바벨탑처럼 쌓아 올린 제사상을 통해 권위를 확인하려 드는, 양반 흉내 내기가 아직도 위세를 부리고 있다. 이 오래 묵어 쉬어터진 전통의 지속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여자 중에서도 며느리들이다.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시증조부를 위해, 온종일 굽고 부치고 지지고 끓이게 하는 데는 남성의 권력뿐 아니라 여성들의 부엌 권력도 작용한다. 그래서 제사는 윗대가 아랫대의 다른 성(姓)을 가진 여성 가족에게 행사하는 권력질의 만찬장이다.

하지만 애정도 없고 신실한 애도도 없이 그저 양반 흉내, 집안 전통을 과시하려는 행위로서 제사를 지속시키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니라 ‘아들’들이다. 애정 없는 법도와 공경 없는 형식만으로 지내는 제사라면 폐하는 것이 망자를 위해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사랑 없는 행위를 지속할수록 그 모습은 항상 과장되고 초라하다. 냉장고에 한달쯤 묵혔다 버릴 음식에 에너지를 쏟느니, 아내와의 관계를 챙기는 것이 더 현명한 노후 대책도 될 것 같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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