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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8일 14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18일 14시 42분 KST

[허프 인터뷰] 젠더 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성 범죄 전담 형사가 들려주는 강해지는 방법

"여자는 원래 강합니다.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말들 속에 갇혀서 약하게 길러져 왔을 뿐이죠."

#1. 나이 6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안경을 쓴 남자가 다가가, 화장실로 데려간다. 남자는 의심 없이 따라간 아이의 하의를 벗기고, 자신의 성기를 비비기 시작했다. 비록 아이는 그 행동의 이름을 몰라도,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만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렸고,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는 힘껏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2. 그날의 기억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성장한 아이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처음 사귄 애인인 남성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폭력의 표면적인 발단은 사소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거나 비판하면 ‘넌 왜 그렇게 말하느냐’며 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상당히 왜소한 편이었음에도, 겨우 손목 하나 잡힌 것도 빼내지 못한 채 끌려가며 맞았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성폭력, 데이트폭력 피해자였던 이 사람의 이름은 이회림(필명). 이제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여성 범죄를 전담하는 형사가 되었다. 13년차 경찰인 그녀는 최근 자신의 피해 경험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언뜻 보면, ‘미친놈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은 각종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실용서로 보이지만, 거기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책임을 개개인들에게 떠넘기고 ‘알아서 각자 잘 살아남자‘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사는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사회적 노력과 별개로 ‘우리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에서 용기를 가지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이회림 경사의 ‘미투‘이자 다른 약자들에게 보내는 ‘위드유’에 대한 이야기다.

젠더 폭력의 피해자였으나, 이제는 경찰이 되어 여성 범죄 전담 수사를 해온 이회림 경사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용기에는 성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 경사는 약한 듯 보이는 여성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나 내면의 전사가 있으며, 그 전사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신체단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 경찰 업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얼굴과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젠더 폭력 피해자는 경찰이 되었다

 

- 성추행,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이 경찰이 되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 물론이죠. 대학생 때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제 주변의 친한 여성도 애인인 남성에게 맞은 적이 있고... 이게 참.. 생소한 일이 아니거든요. ‘가해자는 왜 가해를 하고, 왜 피해자는 피해를 보는가?’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았고, 경찰이 된 후에도 관련 연구를 많이 찾아보곤 했죠.

- 책에 ‘왜 그때 나는 (폭력을 행사하는 애인의) 손목을 뿌리치지 못했을까?’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왜 손목을 뿌리칠 수 없었을까요?

= 흠... 그때는 ‘나 왜 맞고 있지? 맞기 싫은데’라고 생각만 하고, 더 나아갈 수가 없었어요. 무서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왜 그랬을까요.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지만, 부모님한테조차도 말할 수 없었고, 내가 피해자라는 것도 싫었고..

계속 그렇게 회피하면서 살다 보니, 스무살이 되었지만 ‘피해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아이’처럼 행동했던 겁니다. 누가 날 피해자라고 손가락질하든 말든, 나 자신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다면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경찰이 된 후, 수많은 피해자를 만나면서 제 과거가 떠올랐어요. 자신을 혐오하고 부정하고, 피해 사실 자체를 직면하지 않으려고 했던 모습들 말이에요. 왜냐하면 저 역시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가 그런 시기를 겪어요. 답답하고 슬픈 일이죠.

- 맞아요. 그리고 정말 많은 이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앞에서 제대로 반항 한번 못하고 그냥 그대로 얼어버리거든요.

= 그걸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라고 부릅니다. 긴장이나 공포로 인해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꼼짝도 못 하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몸이 얼어붙은 순간을 깨고 나오는 게 중요해요. 계속 내 신체의 한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많이 훈련해온 사람은 얼어붙은 몸을 깨고 나오는 시간을 점점 더 단축할 수 있거든요. 용기란 ‘두려움이 아예 없다‘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육체가 행동하는 상태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여성 범죄 전담 형사’가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자원한 건가요?

= 네. 2007년에 성범죄 전담 여형사를 뽑는다는 공고에 자원해서, 그때부터 성범죄 전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건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행정 내근직이 아닌 현장 여성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성범죄 사건과 떨어질 수가 없기도 해요. 제가 경제팀에 소속돼 있을 때도, 근무 시간에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경제팀 업무에 우선해서 성범죄 피해자 조사 업무를 하기도 했거든요.

Inkyung Yoon/Huffpostkorea

현직 여성 경찰은 성범죄가 특정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 여성 대상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에게 공통적인 특성 같은 걸 발견하지는 않았나요? 무수한 범죄를 수사하면서, 경험 끝에 알게 되신 것들이 궁금합니다.

= 흠.. 저는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겉보기에 순해 보이고, 표현을 강하게 하지 않는.. 여자, 아이, 할머니 같은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물색하죠.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제어할 수 있다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강간하고, 추행했다는 것이 ‘자랑’이 되기도 하고요.

휴대폰에 자신이 가해했던 여성들의 이름을 싹 정리해놓고, 이 여자는 얼마만큼 만졌고, 신체적 특징이 어떻고 등등 쫙 정리해놓은 가해자가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어보니, ‘이게 남자들 사이에서는 자랑이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자기 주변의 남자들에게 자랑했었다고 하고.

자랑했을 때 ‘에이, 이 미친 X아’라는 소리를 듣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나이 어린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대해서. 그 가해자는 직업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면 계속 습관처럼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성범죄는 ”악랄한 범죄자가 뒷골목에서 칼과 흉기로 협박하면서 저지르는 것이다”라는 편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수사를 해보시면 어떤가요?

= 아니에요. 성범죄는 지인들 사이에서 많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처럼 믿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편견과 달리) 정말 그냥 ‘보통의 사람‘이 저질러요. 그리고 이 가해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너무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피해자에게 했던 말, 범죄 후에 하는 변명 등등. 직장에서든 모텔에서든 클럽에서든 성범죄가 벌어지는 장소는 다양하지만 마치 가해자가 단 한명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저 여자가 날 ~~하게 만들었다’ ‘저 여자가 잘못한 거다‘라면서 스스로에 대한 변명도 엄청나죠. ‘확실한, 객관적 증거 있냐’면서.

성범죄 전담 수사를 맡으면서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던 것은, 수많은 범죄인데 결국은 ‘하나의 범죄‘처럼 보인다는 거였어요. 도대체 왜 그럴까? 왜 거의 모든 성범죄자가 비슷한 패턴을 보이지? 왜? 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 나가다 보니,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비록 불법이지만 돈으로 여성을 살 수 있는 문화가 만연하니까. 인터넷 창만 켜도, 여자를 음란하게 바라보는 영상과 이미지가 넘쳐나잖아요. 성매매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자를 옆에 앉혀놓고 술을 마실 수 있고. 그걸 ‘밤 문화’라고 부를 정도이고. 정말 문화라고 부르기 싫지만, 문화로써 사회가 용인하고 있는 거죠. 성범죄를 특정 개인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Inkyung Yoon/Huffpostkorea

- 길에서 갑자기 성기를 보여준다거나, 자위행위 하는 남자들도 정말 많거든요. 성장 과정에서 공연음란의 피해를 겪어보지 않은 여성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 저도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웃음) 공연음란 행위 범죄자는 자신의 성기를 보고 놀라는 여성들의 반응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거든요. 30대 초반의 가해자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버스정류장에 여고생이 있길래 보여주고 싶어서 보여줬다’ ‘나는 여고생을 놀라게 하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 범죄자를 마주치면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휴대폰으로 찍어서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실제로 2년 전 서울 시내 모 여고생들이 50대 상습 공연음란 범죄자의 행위를 핸드폰으로 찍어 112에 곧바로 신고해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례가 있었어요.

- 잠깐 사회 현안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미투 운동 이후, 경찰 내부적인 분위기는 좀 어떤가요?

= 그동안은 성범죄 피해자의 특수한 듯 보이나 사실상 보편적인 심리를 잘 이해 못 하는 경찰들이 많았어요. ‘억울한데 왜 죽어?’ ‘당당한데 왜 죽어?’ ‘왜 피해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어?’라고 반문해왔다면 이제는 긴장성 부동화가 생물학적인 자기 방어기제 중 하나라는 것도 알려지고, 미투 운동에 대해 각계각층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잖아요. 특히,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경찰들이 많이 놀라고,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1

- 남성 중심 조직인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준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거든요. 경찰이자 여성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도 대학생 때 데이트폭력 사건으로 경찰에 2번이나 신고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담당 형사가 ‘서로 화해하고, 둘이 헤어져라‘고 하는 거예요. 일 크게 안 만들려고 그렇게 하는 것 같았는데,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죠. 저는 맞아서 얼굴이 막 부어서 112신고를 했고 결국 형사과로 넘어가게 된 것인데 말입니다. 결국 두번 다 사건 처리도 못했고요. 그 당시 형사분들한테 들은 말들이 참으로 불합리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게 바로 2차 피해고요.

이렇듯 2차 피해를 준다는 지적은 남경들이 의도치 않게 피해자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부분들이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경뿐만 아니라 여경 또한 피해자 심리에 대해 세심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2차 피해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죠.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여성 경찰 비율이 3.8%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경과 남경이 협동해서 사건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라든가, 문화적인 차이 등 서로 맞춰나가야 하는 부분이 참 많았어요. 하지만 점점 그 넓었던 간극을 좁혀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면의 전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신체 단련이 중요하다

 

-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도 있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한숨)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이 나왔죠. 지금까지 직접 증거가 없더라도,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던 것은 판사들이 책임 있게 피해자들의 심리를 반영했기 때문이거든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을 때, 죽음으로써 억울함을 표현한 피해자들의 사례가 있었고요. 그런데 안희정 전 지사 같은 판결이 나오면, 앞으로 어떻게 하나요? 그렇게 해버리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죠?

Inkyung Yoon/Huffpostkorea

-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여자는 남자들보다 체력적으로 약하다‘는 게 상식처럼 퍼져있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여자는 원래 강하다’고 강조하시죠?(웃음)

= 용기에는 성별이 없어요. 원래 여자고 남자고 사람은 강해요. 위험 앞에서 자기 한몸을 지킬 수 있는 잠재력이 다들 있어요. 다만, 여자는 ‘여자답다’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말들 속에 갇혀서 약하게 길러져 왔을 뿐이죠.

저부터도 어릴 때 합기도 도장이 동네에 있어서 다니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여자애니까’라며 무용을 시켰어요. 여자들에게 더 필요한 세상인데, 오히려 막내 남동생만 다섯살 때부터 태권도 학원에 다니게 했죠.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전사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신체 단련을 하는 게 무엇보다 좋아요.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 운동 전도사가 되신 것 같아요.

= 맞아요.(웃음) 가장 좋은 것은 집이나 회사 등등 다니기 가까운 곳에서 태권도, 합기도, 유도, 주짓수 같은 무술을 꾸준히 배우는 거예요. 모든 종류의 무도는 기본적으로 방어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면, 요가도 좋고 필라테스도 좋고 등산도 좋고. 내 몸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운동은 뭐든지 평생 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 때 박차고 나올 수 있고.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여성들이 좀 더 운동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도장에 가기까지의 과정이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가보면 정말 즐겁거든요.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펴지고, 담이 커지는 기분이랄까요?

- 이 책 자체가 개인적인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 맞아요. 저도 처음 꺼내놓는 이야기들이에요. 부모님한테도 이야기한 적 없었던, 저의 #미투입니다. 저는 경찰관으로서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야 해서 제가 겪은 피해에 대해 따로 말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과거에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경찰이 되었고, 피해의 경험들은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극복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이 힘을 얻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