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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3일 10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13일 10시 23분 KST

누가 이득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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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정치인의 이익을 위해 수를 늘리는 것은 국민 정서에 배치된다.”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의원 정수를 늘리자고 제안했을 때 당시 민주자유당 대변인이 한 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한나라당 한 의원은 “정치권이 국회의원 수의 감축이라든가 이렇게 뼈를 깎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고도 했다. 2009년 자유선진당 대표는 “의원 수를 대폭 줄여 의원 개개인의 권위를 높이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30% 정수 감축을 주장했고, 2012년 대선 직후에는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정수를 10% 수준까지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도 했다. ‘국민정서법’을 앞세우며 의원 정수 축소론을 앞장서서 주창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의원 수가 늘어나는 게 왜 ‘정치인의 이익’일까? 다음번 의원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들이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줄이는 건 또 왜 ‘뼈를 깎는 아픔’인 걸까? 다음번이야 어떻든 현역 의원은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가. 대체 의원 수를 10%, 30% 줄이자는 근거는 뭔가? 역대 국회의원들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이유가 있다. 국회를 ‘영구히 자기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거’니까 줄이면 ‘아픔’인 거고 늘리면 ‘이익’인 거고 몇 %를 줄이든 ‘내 마음’인 거다. 궁금하다. 누가 미래를 알 수 없는 4년 임기 계약직 공무원들에게 민주주의의 심장이라는 ‘국회’를 헌납했을까?

우리는 ‘양승태 대법원’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난무해도 사법부를 없애거나 법관 수를 줄이라고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비리를 저지른 법관에게는 책임을 지워야 하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국정지지도가 낮다고 해서 대통령직을 없애라고 요구받지는 않았다. 심지어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통령직에 다른 사람을 앉혔을 뿐 그 자리를 없애지는 않았다. 또한 당연하다. 국민들은 여전히 치안과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고 온갖 행정서비스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경을 없애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어했다. 책임을 물어 제대로 일하게 만들어야지, 해경 자체를 없애면 국민들은 어디서 해상 치안을 보장받으라는 건가?

국회도 마찬가지다. 잠시 계약직으로 거쳐 가는 그들 때문에 국회의원‘직’을 없애거나 줄여야 하나? 국회의원직은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바쁜 국민들을 대신해 꼭 필요한 법을 만들고, 수백조원에 이르는 세금을 행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는지, 수십만의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라고 만들어놓은 공직이다. 우리 사회 수많은 ‘을’들이 ‘갑’들의 횡포에 의해 고통받을 때 입법으로 ‘갑질’을 제어하라고 만들어놓은 국민들의 것이다.

1988년 18조였던 예산은 2018년 429조로 24배가 됐다. 13대 국회는 938건의 법률안을 접수했지만 19대 국회는 19배가 많은 1만7822건의 법률안을 접수했다. 1987년 48만이던 행정부 공무원은 2018년 64만으로 16만명이나 늘어났다.

그런데 1988년 299명이던 국회의원 수는 2018년 300명이다. 사회적 강자들의 ‘갑질’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해서 이득을 볼 자들은 대체 누구일까? 국회의원‘직’ 수는 늘어나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