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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답지 않다'며 진술 불신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추행 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지시를 따른 것은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다? 피해자는 간호사, 가해자는 병원 원장이었다.

ⓒ뉴스1

12일, 대법원(주심 김소영 대법관)이 간호사를 수차례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강모씨(63세·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강씨는 2015년 1월 자신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진료실 등으로 불러 3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다.

이번 판결이 주목받는 것은, 1심 재판부가 피해 간호사의 ‘피해자답지 않은 태도’를 근거로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져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으며 대법원에서도 이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1심 재판부는 △소리만 쳐도 들을 수 있는 간호사실 뒷방에서 반항을 누르고 강제키스를 했다는 진술은 믿기 어렵고 △추행을 당한 뒤 30분도 지나지 않아 가해자가 불 꺼진 진료실에서 부른다는 이유로 순순히 진료실에 들어간 것은 ‘통상의 피해자가 취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며 △추행 후 오히려 가해자 전담 변호사로 근무변경을 희망해 10개월 이상 함께 근무한 것은 ‘상식‘에 비춰 납득하기 어렵다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뒤늦게 병원을 그만두면서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경위도 석연치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사소한 사항에서의 진술에 다소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래는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가 상반된 판단을 내린 대목을 정리한 것이다.

* 강제추행이 벌어진 장소에 대한 판결

1심 재판부: ”방음이 되지 않아 소리만 쳐도 들을 수 있는 간호사실 뒷방에서 반항을 누르고 강제키스를 했다는 진술은 믿기 어렵다.”

2심 재판부: ”간호사실 뒷방도 소리가 들리거나 사람이 오가는 쪽이 아닌 반대쪽 벽에서 강제추행이 벌어진 데다 환자가 없는 야간에 벌어진 범행이어서 짧은 시간에 강제추행이 충분히 가능하다. 당시 그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사정은 아니다.”

* 추행 후에도 가해자의 지시를 따른 것에 대한 판결

1심 재판부: ”병원 약국에서 강제추행을 당한 뒤 30분도 지나지 않아 가해자가 불 꺼진 진료실에서 부른다는 이유로 순순히 진료실에 들어간 것은 ‘통상의 피해자가 취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2심 재판부: ”원장 강씨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더 큰 위해가 올까 두려운 마음에 강씨가 주겠다는 물건만 빨리 받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간 것이라는 피해자의 진술이 납득된다. 피해자가 스스로 피고인이 있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

* 추행 후에도 가해자와 함께 근무한 것에 대한 판결

1심 재판부: ”강제추행 후 오히려 가해자 전담 변호사로 근무변경을 희망해 10개월 이상 함께 근무한 것은 ‘상식’에 비춰 납득하기 어렵다.”

2심 재판부: ”피해자가 추행 직후 병원을 그만뒀다가 3~4개월 뒤 병원 요청과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복직했으나, 병원장의 전담 간호사가 아닌 외래 담당 간호사로 근무한 것이다. 그것도 피해자의 희망이 아니라 병원 쪽의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 뒤늦게 고소한 것에 대한 판결

1심 재판부: ”(뒤늦게 병원을 그만두면서야 고소한 경위가) 석연치 않다.”

2심 재판부: ”처음에는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괴로워서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는 고소 경위에 석연찮은 점은 없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은 2016년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공동 기획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에서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의심과 비난의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상담소는 ”우리가 모두 조금씩 다른 사람이듯 성폭력 피해자들도 한가지 대응만을 택하지 않는다”며 ”극렬한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위협이나 가해자의 지위 등으로 얼어붙기도 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판단에서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글 전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김태경 우석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역시 한샘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후 가해자와 카톡을 하는 등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하는 시선에 대해 ”(피해자가) 거부했느냐에 대해서만 우리 사회가 너무 집중해서 바라본다”며 아래와 같은 지적을 남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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