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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퀴어문화축제에 대한 폭력 사태를 기억하며

ⓒ뉴스1
ⓒhuffpost

충돌도 방해도 아니라 말 그대로 린치였다. 지난 9월8일 인천광역시 북광장에서 일부 개신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 그들의 모든 행동은, 묘사만으로도 비윤리적일 정도로 참혹했다. 여기 적은 그 어떠한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너네 트럭 이제 못 움직이게 되었다”며 트럭 타이어의 바람을 빼고, 기름을 훔쳐가고, 깃대를 부러트리고, 면전에서 지옥에 가라는 욕설을 하는 사람들 사이를, 수백명의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그 모욕을 견디며 지나가야 했다. 경찰은 방조를 넘어서 ‘가담’하는 수준이었는데, 행진을 방해하는 이들에게 경찰 소유의 확성기를 넘겨주어 그 확성기에서 “당신들은 죄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나, 집단에 대한 공격을 하도록 묵인하고 방조하는 일이 다름 아닌 2018년에 벌어진 것이다. 제주 4·3 당시의 서북청년단처럼 이들이 경찰을 대신해 사적 폭력을 휘둘렀던, 칠십여년 전 해방기의 한국에서 일어났던 그런 종류의 폭력 말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축제에 참가하려고 왔다는 십대들의 후기였다. 참고로 퀴어문화축제는 서울에서 이미 이십여년간 개최된 행사였고 대구는 올해가 십주년이다. 작년부터 부산, 전주, 제주에서도 열리고 있고, 올해 인천과 광주가 추가되었다. 왜 이렇게 전국에 퀴어축제가 생기는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다. 서울지역 외에 사는 십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축제라는 것이다.

십대 성소수자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은 전세계 공통이고, 한국 역시 더하면 더하지 조금도 덜하지 않을 터였다. 거기에다 비서울지역이라면 더욱 고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이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

올해 처음 개최된 인천퀴어문화축제에도 청소년들이 아침 일찍부터 와 있었다고 한다. 한 참가자의 후기에 따르면 부스와 좌판을 펼치지도 못하게 방해하던 세력들 사이에 경찰이 나타나자 당연히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경찰 힘내세요”를 외쳤던 십대들은, 마지막에 경찰이 욕설을 하는 사람들을 그냥 방치한 채로 그 사이를 한줄로 서서 걸어가라고 하자 많이 울었다고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엇도 과장이 아니다. 행진을 마친 후 경찰이 행사를 내내 방해했던 이들에게 “오늘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를 하는 장면은 수많은 참가자의 후기로 남겨졌다. ‘경찰 힘내세요’를 외쳤던 십대들에게 이날의 사건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인간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태의 인간이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는, 바로 사람에 대한 공포다. 내가 곤경에 처해 있는데 아무도 나를 돕지 않거나, 자격이 없다며 내가 속해 있던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뿌리가 뽑혀버리는 일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보았을 매우 구체적이고도 원초적인 악몽이다.

이들은 그날 점점 좁아지는 공간에 갇혔고, 화장실이나 편의점조차 이용하지 못한 채로 고립되었으며, 눈앞에서 존재를 부정당하고 배척되는 모욕을 견뎌야 했다. 지난 십여년간 성소수자는 법령에서 조례에서 계속 삭제되고 있다. 이날의 폭력은 그 삭제가 만들어낸 구체적인 결과다.

민주주의는 타인의 운명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근육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낯설 이 사건이 국가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인 이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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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천퀴어문화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