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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1일 1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11일 17시 23분 KST

법원이 '지금'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검찰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법역사상 초유의 수사가 펼쳐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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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저지른 여러 일에 대해 오랫동안 수사가 진행돼왔다. 갈래도 많고, 의미도 복잡하지만 대체로 ‘예전 법원이 한 일‘에 대한 수사였다. 그런데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금 법원’이 무언가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검찰이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폭제는 바로 이 사건이다.

 

9월 5일

검찰이 지난 5일 한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차관급(고법 부장)인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한 뒤 지난 2월 퇴직한 유해운 변호사의 사무실이었다.

당초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박채윤씨의 특허소송 등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여러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대신 박채윤씨 특허소송 관련 대법원 재판자료를 청와대에 건넨 의혹을 받는 유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영장만 일부 발부했다.

이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의외의 소득을 올렸다. 유 변호사가 대법원에서 재판기록을 무더기로 들고 나온 정황을 포착했다. 압수수색 영장 범위 밖의 자료였기 때문에 검찰은 다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유 변호사에게서 ‘유출 문건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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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관들이 11일 서울 서초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날 검찰은 대법원 기밀 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9월 6~10일

6일 법원은 이 영장을 기각했다. 7일 밤(금요일)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했다. 사흘 뒤인 10일(월요일)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문건 유출은) 대법원에 부적절한 행위이지만 죄는 안된다”며 대부분의 영장을 기각했다.

재청구된 영장이 검토 중이던 주말에 유 변호사는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문건을 작성해 현직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겨레에 따르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 이메일에는 검찰이 적용한 주요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 압수수색 과정의 문제점, 검사 면담 내용 등 수사 진행상황, 형사소송법 규정 등이 담겨 있었다. 이메일은 현직 판사들에게도 전달됐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박범석 판사의 기각 논리는 유 변호사 이메일 속 논리와 비슷했다. 박 부장판사는 2014년 유 변호사가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던 시기 함께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다.

 

문건 파쇄

일이 더 심각해진 건 그 다음부터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10일 법원행정처는 “유 전 연구관이 행정처와의 통화에서 ‘검찰의 두 번째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된 뒤 대법원에서 반출한 문건 파일 출력물 등은 파쇄했고 하드디스크는 분해해 버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겨레에 따르면 유 변호사의 행위는 자기 증거를 없앤 것이다. ‘증거인멸죄’로 처벌이 어렵다. 히지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과 관련한 구속영장 청구 사유로는 충분하다. 판사 경력 25년의 베테랑 법률가가 이 점을 몰랐을 리 없다. ‘얼마나 위험한 자료이길래 구속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파쇄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겼다.

‘죄가 안된다’며 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한 법원은 난감해졌다. 유 변호사의 행동에 비춰보면, 해당 자료엔 범죄 단서가 있다는 검찰 의심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유 변호사가 파기한 문건을 확인하기 위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을 압수수색하겠다고 하면 막을 명분이 약해졌다. 

이들 문건은 수만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강제징용 사건 △전교조 관련 소송 △박채윤씨 특허소송 등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어쩌면 재판거래 의혹을 가릴 핵심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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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수사

유 변호사가 문건을 파쇄한 사실이 알려진 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섰다. 그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가 ‘파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제출하고도 하드디스크 등을 파기한 데에는 법원의 묵인 또는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는 듯하다. 

검찰은 이미 전직 영장전담 판사를 수사기록을 복사해 유출한 혐의로 수사 중이다.

‘지위고하’가 현직 영장전담 판사를 포함한 법원 수뇌부를 뜻하는 것이라면 사법 역사상 초유의 수사가 펼쳐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