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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1일 14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11일 17시 07분 KST

세계적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뮤즈'로 살아온 여성이 들려준 정반대의 진실 (인터뷰)

아라키는 그녀를 "내 여자" "뭐든지 다 하는 신비스러운 여자"라고 표현하고, 언론은 거장의 말을 믿고 그녀를 "아라키의 파트너"라고 보도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뮤즈는 작품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이 겪은 착취에 대해 공개했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 주의: 기사 일부분에 누드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에서 방송국 간부의 성폭행을 폭로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뒤를 이어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에 동참한 이는 모델 카오리(KaoRi)다. 카오리는 21살이던 2001년 세계적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77)를 처음 만나 모델로 활동하며 공식 행사에 동행하는 등 그의 ‘뮤즈‘로 살아왔으나, 2016년 부당한 대우에 대한 개선을 아라키 측에 요청했다가 돌연 ‘뮤즈’의 자리에서 해고됐다.

1940년생인 아라키 노부요시는 1971년 신혼여행 중 아내와의 친밀한 순간을 담은 사진 시리즈 ‘감상적 여행‘으로 유명해졌으며, 여성에 대한 성적으로 노골적인 사진들로 ‘천재’ ‘변태’ ‘괴짜’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세계적 명성의 사진가다. 그는 수십년간 사회적 규범에 대놓고 저항하고 때로는 비도덕적 섹슈얼리티를 담은 사진을 발표해 왔으며, 젊은 여성을 밧줄로 묶어 성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긴바쿠’(Kinbaku: 결박)로도 유명하다.(아라키 노부요시 공식 홈페이지 바로 가기)

Dave M. Benett via Getty Images
2013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라키 노부요시 전시회 
Dave M. Benett via Getty Images
2013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라키 노부요시 전시회
Patrick McMullan via Getty Images
201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아라키 노부요시 전시회
Patrick McMullan via Getty Images
201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아라키 노부요시 전시회
Patrick McMullan via Getty Images
201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아라키 노부요시 전시회

언론들은 카오리를 ‘아라키의 현재 파트너이자 뮤즈‘라고 보도한다. 하지만 카오리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전한 이야기는 그간 알려진 것과 꽤 다르다. 카오리는 올해 4월 자신의 블로그에 ‘미투’ 글을 올려 ”우리의 관계는 오직 사진작가와 모델이었을 뿐, 연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뮤즈로서 자신이 겪은 착취에 대해 공개했다. (블로그 글 원문, 한글 번역본, 영어 번역본 바로 가기

카오리는 ”사진을 찍히면서도 어떻게 사용될지는 일절 들은 바가 없고”, ”초반에 계약서에 대해 물었으나 ‘아라키는 그런 걸 하지 않는다’ ‘일본은 원래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한다.

카오리는 ‘아라키처럼 유명한 사람이 설마 나쁘게 대우하지는 않겠지‘라고 믿으며 그의 예술에 한 주체로서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함께 작업해왔으나 ”사전에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내 사진이 책과 DVD 등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팔리는걸” 보아야 했고,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책 ‘카오리 섹스 다이어리’를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Marc GANTIER via Getty Images
2005년 프랑스를 방문한 아라키 노부요시의 모습. 아라키의 옆에, 카오리가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카오리는 ”사진 촬영 후에는 용돈 수준의 돈만 받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아라키의 행사에 동행해야 했으나 돈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며 ”낯선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누드로 촬영할 것을 강요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아라키가 공개적으로 나를 ‘뭐든지 다 하는 신비스러운 여성’ ‘내 여자’ ‘매춘부’ ‘집을 사줄 만큼의 가치는 없는 여자’ 등등으로 표현함으로써 잘못된 이미지가 형성돼 스토커들에 시달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으로) 일상이 망가졌다”며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아라키는 ‘난 모른다’ ‘깜빡했다’ 등의 말로 대답을 회피하고, 나를 마치 물건처럼 취급했다”고 말한다.

”예의 바르게 행동함으로써 나 자신을 너무 희생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는 카오리는 글을 쓴 이유에 대해 ”더 이상 모델이 ‘예술’이라는 가면 뒤에서 상처받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뮤즈라는 역할의 실체는 없다”고 밝혔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애초 의도와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카오리에게 큰 힘을 준 것은 ‘미투 운동’이다. 공개적으로 피해 경험을 밝힌 여성들로부터 용기를 얻은 카오리는 뮤즈에서 해고된 지 약 2년만인 올해 2월, 변호사를 통해 아라키에게 자신이 찍힌 사진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아라키는 ”너랑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만을 내놓았고, 현재 카오리의 미투 글에도 아무런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뮤즈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을 뜻하는 말로, 최근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대상이었던 뮤즈는 그동안 현실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해왔던 것일까. 작품 밖으로 걸어 나와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카오리를 8일 허프포스트가 만났다.

카오리는 한국 사진계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알리고 사진계 전반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열린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현재 카오리는 아라키의 모델을 그만둔 후 발레 교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미투 :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

 

-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고,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피해자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김기덕 감독에 대한 미투가 있었다고 들었고…’아 김기덕 감독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미국과는 달리 같은 아시아 국가다 보니까, 남존여비 사상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에 아무래도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 일본의 미투 운동과 한국의 미투 운동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일본의 미투 운동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최근 일본 스포츠 쪽에서는 윗사람이 권력을 이용해서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문제(편집자 주: 갑질)가 많이 불거지고 있어요. 그런데, 예술 문화계 쪽은 아무래도 작은 국가이고 (조직이 아닌) 개인적인 관계로 일이 많이 진행되다 보니...‘과연 말했을 때, 날 지켜주는 사람이 있을까’ 겁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2차 피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하게 받아들여졌지만, 그래도 조금씩 인식이 바뀌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윗사람들의 권력 남용에 대해 언론에서도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보도하고 있으니까요.

- 미투 글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랐어요. 일본 언론이 기사화하자,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불과 이틀 만에 영어/중국어/한국어 등으로 다 번역이 되어 퍼졌더라고요. 이메일을 많이 받았어요. ‘나도 그런 일을 당한 적 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당신의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글을 쓸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아라키가 누드로 유명한 작가다 보니까 ‘네가 누드모델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는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아서. 물론 ‘그런 식으로 하는 거 아니지 않나’는 말도 듣고, 2차 피해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잘 모르고 오해하는 거니까.. 그 분들까지 모두 다 이해시키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요? 차라리 (일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는 게, 아무 말 안 하고 참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Marc GANTIER via Getty Images
2005년의 아라키 노부요시 

- 일본 내에서는 보도가 많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다뤘다고 생각하나요?

= 흠. 저는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기를 원하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언론사를 통해서 제 이야기를 기사로 내보낼 생각이긴 했죠. 몇 개월간 전문가들과 상담하면서 기사로 내보내려고 했는데, 매체에서는 너무 ‘가십’이나 ‘충격적인 하나의 이야깃거리’로만 소비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기사가 나가기 전에 저에게 기사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아라키의 장난감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뽑으니까.. 이런 기사가 나오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접 이야기하는 걸 택했죠. 제가 원하는 것은 (일반 대중보다) 전 세계 예술 분야의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허프포스트 등 몇몇 매체만 선택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외에 일본 언론에서도 연락은 많이 왔으나 다 거절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신의 이야기에 대한 일본의 사진·예술 업계 반응은 어떤가요.

= 오히려 일본의 사진계, 예술계에서는 제 고백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라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아라키는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니까요. 아라키 본인도 자신을 ‘사진의 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 막강한 힘 때문에, 아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표면적으로 변화가 이뤄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되는 걸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거나 사회가 바뀌는 데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동안 미투 했던 사람 가운데 당신에게 가장 힘을 준 이는 누구인가요? 당신에게 힘을 주었던 문장이랄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지요.

=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한창 활발할 때 90살 정도 된 여성 배우가 울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과거에 배우 생활을 했었는데, 10대 때 일하는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아직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눈물 흘리는 걸 보았습니다. 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고백을 들으면서 깨달았어요.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아라키의 뮤즈로 살아온 지난날 : 실패 그리고 배움

 

- 당신이 아라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저는 아라키와 일했던 16년의 세월 내내 노예처럼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서 아라키가 잘못한 것이 명백하게 있었고, 그 부분이 바로잡혀지길 바랐을 뿐입니다.

아라키에게 ‘앞으로 제가 찍힌 작품을 사용할 때는 같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사전에 좀 알려주면 좋겠다’‘저의 허락 없이 제가 찍힌 사진으로 옷이나 가방 같은 상품을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도 한명의 표현하는 사람인데, 그냥 저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소비했다는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죠.

(미투 글을 통해) 저는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예술은 모순도 많고, 그런 가운데 무엇을 표현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과잉된 상태였고.. 예술을 넘어서서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그걸 또 넘어서서 거짓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대체 예술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 글을 올린 이후 아라키 쪽으로부터 연락이 오지는 않았나요.

= 언론들이 입장을 요청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제가 전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하니까, 아라키는 ‘너의 말은 다 거짓말이다’ ‘네가 그랬을 리 없다’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 미투 글에서 “16년간 모델 활동을 했지만,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 오랫동안 뮤즈로 불려왔고, 더는 모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라키와 한번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불만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자)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시키고, 일절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하고, 아라키 회사 사람 중 누구도 저에게 연락하지 않는 걸 보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16년간 쌓아온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인생을 부정당한 느낌이었습니다. 

Jun Sato via Getty Images
2008년 도쿄 요요기 올림픽 플라자에서 열린 샤넬 '모바일 아트'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아라키 노부요시의 모습. 카오리의 상반신 누드 사진을 프린트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있다. 모자이크는 카오리의 이야기를 고려하여, 허프포스트가 원본 사진에 편집을 가한 것이다.

-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카오리 섹스 다이어리’라는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정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앞으로 내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아라키와의 법적 다툼은 하지 못하게 된 건가요.

= 그렇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전에 변호사 여러 명과 상담을 했고, 소송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16년간이나 사진을 찍혀왔기 때문에 분량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것을 하나하나 검증해야 하는 점, △전례가 없기 때문에 승소 여부가 불투명한 점, △시간과 돈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되는 점 등등을 고려하니 소송이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라키를) 용서하겠다고 한다면 너무 일방적인 느낌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매일매일 분노 가득한 삶을 살기보다는 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이건 저의 선택일 뿐이고, 저는 제 선택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아라키의 뮤즈였던 시간을 형용사나 명사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싶은가요?

= 실패, 그리고 배움. (웃음) 실패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 아라키의 뮤즈가 됨으로써, 다른 일거리가 많이 들어오게 됐다든지.. 경력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나요?

= 아뇨, 제 경력에 도움이 된 것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평소 아라키의 뮤즈임을 숨기고 살아왔습니다. 아라키는 자신의 모델에게 신비함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자신의 모델이 다른 사람과 일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누구를 유명해지게 하기 위해 모델로 선택하는 게 아니다. 내 세계관을 위해서, 모델을 동원하는 것이다’라고 평소 말하곤 했으니까요. 때문에, 자신의 모델이 다른 사람의 모델이 된다거나 하는 걸 저지하는 쪽이었어요.

해외에서 퍼포먼스를 했을 때, 저를 모델로 촬영하고 싶다고 한 작가들이 꽤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전해 들었어요.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모르니까 아라키 회사로 저에 대한 섭외를 요청했는데 그들이 다 거절해 버렸다고.. 한참 지난 후에야 스태프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슬펐습니다.

- 그럼 일상생활에서 당신이 아라키의 뮤즈임을 다른 사람은 전혀 몰랐나요?

= 친구들은 알고 있었고, 사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라키가 지급하는 돈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는데 그럴 때는 그 사실을 숨겼어요.

그런데 저는 몰라도, 상대방이 저를 알아보는 경우가 있더군요. 알바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저를 알아보고, 그 후 제 스토커가 되는 경우도 많았고요. 멋대로 우리 집에 침입하고, 제 휴지통을 뒤지고, 우체통에 ‘카오리 러브’라고 적힌 엽서를 넣어놓는 일이 일상적으로 아주 많았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날들입니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 혹시 아라키의 모델 중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다른 사람은 없는지요.

=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메일은 많이 받았어요. 다른 모델들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라키는 아마추어나 일반인도 많이 찍었기 때문에 ‘이야기해봤자 누가 내 말을 듣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 같고요. 아라키는 한번만 만나면 굉장히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장기간 같이 촬영해나간 모델 중에는 저와 같은 문제가 있던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사진 속에서 아라키가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아라키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만으로 21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라키의 사진을 꿰뚫어 볼 만한 힘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렸고,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자극을 원했으며,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를 댄서로서 촬영하겠다고 했고, 손을 가볍게 묶은 적은 있었지만 다른 사진처럼 밧줄로 매달든지 한 적은 없었어요.

아라키 작품에 여자를 경시하는 사진들이 많다고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잠시 생각에 잠김) 일본에는 SM 스나이퍼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간됐지만. 일본의 독특한 SM 문화인데, 그런 걸 촬영하고 싶다는 사람과 당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자원해서 찍는 거였죠. 그것에 대해 저는 ‘찍고 싶은 사람이 서로 만나서 찍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해외의 사람들에게 ‘일본은 그런 걸 해도 되냐’ ‘일본은 그런 게 OK냐’ 하는 의식을 준 게 아닌가..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 것 아닌가..나이 들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마음입니다.

-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신을 찍은 아라키의 사진을 다시 본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여전히 당신에게 그 사진들이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 전쟁 사진도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찍지만, 사진은 그런 순간을 담는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역시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당시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금은 좀 슬픈 이야기가 됐지만 말이에요. 저는 그 사진들을 굳이 찾아서 보진 않습니다.

 

저명한 천재 예술가 남성 VS 젊고 취약한 뮤즈 여성

 

- 주로 남성이 천재 예술가의 역할을, 젊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이 뮤즈의 역할을 맡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의 이런 풍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역사에서 계속 그래왔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랬지만 뮤즈인 모델에게는 전혀 발언권이 없죠. 대중들은 그걸 보면서 ‘예술은 저런 거구나’ ‘예술 세계는 원래 저렇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모델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미화됩니다. 이게 정말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만약 여성이 천재 예술가이고, 젊고 취약한 남성이 뮤즈라면 어떨까요. 생각해본 적 있나요.

= (소리 내 웃음) 아니요. 흠.. 여자도 유명해지고 권력을 손에 얻게 되면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만약 여성이 천재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젊고 취약한 남성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피카소가 ‘괴로워하는 여자는 아름답다’는 말을 남겼는데, 여자가 괴로워하는 남자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Inkyung Yoon/HuffPostKorea

- 60~80년대는 이른바 성혁명의 시대였습니다. 당대에는 아라키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꽤 많았는데, 당대 사진계의 분위기가 여성 모델들에게 끼친 말 못 할 강압 같은 것이 존재했었나요?

= 저도 그때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상상밖에 못하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는 여성이 어떠한 자유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누드가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것 같아요. 스스로 벗겠다고 말하는 여성도 많았죠.

사진에 대해서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색하는 시기였고, 그런 와중에 아라키의 방식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계속 그런 방식을 취해오면서 유명해지고 권력을 얻게 되었고, 결국에는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생각해요.

- 여성 누드모델을 촬영할 때,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본인이 예술이라고 말해도, 다른 사람이 예술로 평가해줬을 때 비로소 예술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미투 글을 올린 후) 한 여성에게서 이메일을 받았어요. 남자 사진가가 아라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건 예술이다’, 섹스하는 도중 사진을 찍는 게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해 그 말을 믿고 촬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림과 달리 사진은 한번 찍히면, 실물 그대로, 영원히 남잖아요. 아라키의 작품에 영향받아 ‘나는 남자니까 저런 사진을 찍어도 되는구나’ ‘이건 예술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에 관해 말했을 때, 아라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가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인 거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진을 예술로 정당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아라키가 다시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에 참여한 저도 일부분 나쁜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Inkyung Yoon/HuffPostKorea

- 여전히 세상에는 아라키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백만명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혹시 있는지요.

=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면 되죠. 누드 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좋은 작품도 있으니까… 다만, 그의 모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보다는.. 큐레이터나 언론이 좀 더 의식을 가지고, 신중하게 작품을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 당신의 미투 글은 “잘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힘든 시간을 겪어낸 사람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힘들었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나요.

=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혼자 끌어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이제 말해도 되겠구나’ 생각한 후 변호사도 만나고 저널리스트도 만나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참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항상 눈물이 나왔고.. 그렇게 4개월에서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제가 무엇에 대해 화가 났었는지 생각이 정리되어 갔어요. 미투 글을 쓴 것에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제 안의 분노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인지가 명확해지고, 그것을 납득함으로써 극복하게 되었어요. 정말 힘들지만, 스스로 마주 보고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힘든 거니까, 그럴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댄스 교사라 매일 춤을 추니까, 그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 잘못된 선택만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정말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몇번이고 바닥을 쳤고, 벗어났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구렁텅이에 빠지고, 그렇게 몇년을 괴로워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몇번이나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숨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걸요.

 

사진 = 윤인경 에디터 

통역 = 박인선 한일 통번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