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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1일 17시 47분 KST

이제 나이키는 진보의 동맹인가?

나이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ANGELA WEISS via Getty Images

나이키는 ‘저스트 두 잇’ 캠페인의 30주년 기념 광고에 콜린 캐퍼닉을 등장시켰다.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해도 무언가를 믿어라’는 슬로건이 달렸다. 영상에서는 장애와 인종에 따른 불평등을 담았고, 이에 따라 미디어가 경찰의 폭력에 맞선 캐퍼닉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생겼다.

 반응은 다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보수적 인물들은 나이키를 규탄하거나 보이콧을 다짐했다. 나이키 제품을 파괴하기까지 한 사람들도 있었다(이미 돈을 내고 산 물건을 부숴서 뭘 보여주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이키를 칭찬하고 제품을 구매한 이들도 있어 온라인 매출이 31% 증가했다. 이들은 나이키를 블랙 라이브스 운동의 동맹 혹은 영웅으로 추어올리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공간에서는 이 광고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운동선수들의 액티비즘 물결에 기업이 올라탄 것뿐이며, 젊고 보다 다양한 고객을 상대로 마케팅해 돈을 벌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 캠페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의문은 “나이키는 4년 전엔 어디 있었나?”였다. 캐퍼닉이 나중에 항의했던 경찰의 폭력에 흑인들이 저항하며 최루 가스를 맞을 때 수십 억 달러짜리 기업 나이키는 어디 있었나? NFL 선수가 한쪽 무릎을 꿇기 전에 나이키는 미국에서 스포츠를 제외한 공간에서의 흑인 신체의 가치, 불평등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

심지어 캐퍼닉이 저항을 시작했던 2년 전에는? 캐퍼닉이 NFL 소속이라 그의 편을 드는 것에 위험이나 비용이 더 많이 따랐던 그때는?

나이키는 역사적으로 운동에서 주요 폭력이나 독설이 일어난 이후에 등장하곤 했던 여러 (백인) 진보주의자들과 아주 비슷하다. 그들은 최초의 위험이 사라진 다음 등장해 칭찬을 받거나 “깨어있다”는 말을 듣길 기대한다. 실제 대가는 치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동맹이라고 칭하고, 입만 살았으면서 그걸 대의명분을 위해 희생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체제적 억압에 반대하며 직업, 평판, 인간 관계를 잃을 것을 불사하는 것에 비하면 옷에 안전핀을 달거나 페이스북 배너에 포용적 메시지를 넣는 것은 훨씬 쉽다. 현대의 ‘액티비즘’의 상당 부분은 그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 진보적 행세일 뿐이다. 백인 진보주의자들과 나이키는 위험이 대부분 사라지고 훨씬 안전해졌을 때 나타나곤 한다.

나이키는 이 운동에 뒤늦게 동참했고 아마도 장점보다는 문제가 더 많은 기업일 것이다. 계속되는 노동 쟁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제품을 생산했던 역사 등이 그 예다. 그러나 기업으로서 미국인들에게 의미있는 한 발을 내디딘 것은 사실이다. 나이키가 얼굴을 내밀고 정의로운 대의명분에 자기 로고를 얹었다. 정의를 상품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운동을 정상화하는 맥락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로선 이런 작은 진보를 진보가 아닌 것으로 보고 이 발전을 인정하지 않기가 쉽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동적으로 반 인종차별주의자로 결정된다는 식의 근거없는 순수한 정의의 이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걸 다 깨우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사람(과 기업)은 성장하며 깨달아간다.

우리가 인정할 만한 작은 일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의의 대의명분에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드디어 옳은 일을 했다며 동맹들을 얼르는데 에너지를 써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우리는 의미있는 진보를 인식하고, 사람은 달라지고, 인종차별주의자 삼촌이 차별적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건 좋은 일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무언가를 한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분명 낫다.

상황의 불완전함을 보는 동시에 진보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음을 인식할 수 있을까? 진보란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믿기 쉽다. 사람이나 기업의 과거에 공모와 억압이 있다면 어떤 진전도 의미없다고 믿어버리기 쉽지만, 진보를 매도해서 성공한 운동은 거의 없다.

나이키는 문제가 있다. 백인 우월주의의 주요 도구인 자본주의를 이용해 이 운동에 참가했다. 값싼 노동력을 사용한다. 젠더 차별 소송도 걸려있다. 이 운동에 뒤늦게 뛰어들었고 한편 그로 인해 노골적으로 이득을 본다. 전부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키는 최소한 무언가를 하기는 했다. 트럼프 선본과 일했던 기업, 전미 총기 협회와 일했던 기업과는 달리 나이키는 소외된 이들과 우리의 경험을 중심에 놓았다. 나이키는 입장을 밝혔다.

나이키는 피부색이 밝고 아프로 머리를 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활동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그가 현지에서 하는 커뮤니티 개발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흑인들의 문제를 메이저 광고 캠페인 중심에서 다룸으로써 흑인들이 주목받고 우리의 이야기가 들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게 해주었다. 서로 다른 신체 능력과 인종의 사람들을 중심에 놓았고 여성인 세레나 윌리엄스를 현시대 최고의 운동선수로 극찬했다.

이제 나이키는 이 운동에 립 서비스만 할 게 아니라 캠페인대로 행동할 책임이 있다. 희생해야 하고, 경찰 폭력 및 흑인에 대한 폭력에 맞서 노력해야 한다. 모든 동맹들이 그렇듯 말은 쉽고 소셜 미디어 캠페인에는 한계가 있다. 나이키는 슬로건 대로 ‘저스트 두 잇’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동맹들에게 교훈이 된다. 일찍 등장하고, 자주 등장하라. 당신이 늦게 등장하게 된다면 당신이 영웅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보다 앞서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영웅들이 중요하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