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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야만의 다른 이름

ⓒDONGSEON_KIM via Getty Images
ⓒhuffpost

문재인 정부에 ‘교육혁명’을 기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교체된다지만 교육에 대한 어떠한 위기의식도, 개혁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문제를 오로지 입시문제로 접근하는 천박한 인식에 절망감을 느낀다. 잘못된 교육정책이 한국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한국인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으며, 한국인의 심성을 얼마나 왜곡하고, 이 땅의 학생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이 정부만 모른단 말인가.

지금은 교육을 뿌리부터 혁신해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 교육의 영혼이자 원리인 경쟁 이데올로기를 폐기하는 것이다.

경쟁 이데올로기는 교육 영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지배해온 이념이다. 한국 사회는 경쟁을 당연시하고, 심지어 긍정적으로 여기는 이상한 사회이다. 절차의 공정성만 담보된다면 모든 경쟁은 선이라는 인식이 한국인의 뇌리에 뿌리내려 있다. 경쟁 자체가 ‘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 중세 시대에는 경쟁이 죄악이었고 때로는 살인에 처해지는 중범죄였다는 인식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실로 경쟁지상주의 사회인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헬조선으로 전락한 중요한 요인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가지로 짚는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이다.(<죽음의 스펙터클>)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경쟁이 다른 부정적 특성들의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사활적 경쟁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극심해졌고, 일상은 사막이 되었으며, 생활리듬은 살인적인 속도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독일교육의 초석을 놓은 1970년대 교육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경쟁에서 야만의 징후를 본다. “경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교육에 반하는 원리”로서 “인간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결코 경쟁 본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는 경쟁을 통한 발전이란 “우리 교육체제가 물들어 있는 신화들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경쟁을 “의심의 여지 없는 야만”이라고 힐난한다.

경쟁에 반대하는 아도르노의 교육이념이 실현됨에 따라 독일 학교에서 경쟁은 야만 행위로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우열을 가리는 석차는 사라졌다. 학생은 서로 다른 취향과 재능을 지닌 개성적 존재이지, 우열을 나누어 일렬로 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에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독일인들의 높은 자존감이었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 모두가 당당한 것이 신기했다. 많은 독일인을 만났지만 열등감을 가진 이를 본 적이 없다.

반면에 한국에선 열등감이 없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판검사, 의사, 교수도 예외가 아니다. 끝없는 경쟁의 수직적 위계 속에서 언제나 누군가가 ‘내 위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김우창)는 바로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교육혁명은 경쟁교육의 폐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소양과 재능을 발견하고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다. 모든 인간을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줄 세우고, 수직적 위계질서에 배치하는 것이 교육일 수 없다. 열등감으로 조직된 사회는 행복할 수도, 정의로울 수도 없다.

지구상 어디에도 우리처럼 가혹한 경쟁이 어린 학생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곳은 없다. 경쟁교육이라는 야만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경쟁교육에서 연대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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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교육혁명 #경쟁이데올로기 #죽음의 스펙터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