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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 과잉 시대 ‘어떻게 먹을 것인가’

중국 후난성의 매운 고추를 넣어 만든 민물생선찜
중국 후난성의 매운 고추를 넣어 만든 민물생선찜
ⓒhuffpost

음식이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 지 오래다. 2018년 한국의 식탁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배신은 연인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 식탁에서 일어나는 거짓은 조금 과장하면 모사가 판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편의점이 부엌 찬장을 점령한 지 오래인 한국. 음식 콘텐츠를 오랫동안 생산해온 사람으로서 그저 “이 집이 맛있다”라며 해맑게 글을 써도 되나 싶은 시대다. 옛날 신문을 뒤져 한 그릇의 국밥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따져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유독 기록물이 적은 한국의 음식 분야에선 무시당하기 일쑤다.

맛에 쏟는 순수한 열정과 탐구가 한없이 그리운 시대다. 미식을 그저 사치라고 깎아내리거나 허세의 포장지로 여기는 풍토에선 교묘한 배신이 자리잡기 쉽다. 일본 문예평론가 후쿠다 가즈야는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미각은 문화적인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속초 중앙시장 닭강정 골목
강원도 속초 중앙시장 닭강정 골목

유명 블로거에게 생긴 일

유명한 맛집 블로거 배동렬(42)씨. 최근 그는 지인에게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보자마자 화가 치솟았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 일식당의 개업 사진이었다. 축하 화환 리본에 자신의 블로거 이름인 ‘비밀이야’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축하합니다, 비밀이야 올림”. 식도락가치고 ‘비밀이야’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2004년 배씨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사이트에 올린 전국 식당만도 수만 곳이다.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이 그의 블로그를 찾는다. 프랑스 레스토랑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도 거의 섭렵한 그다. 이미 관련 책이 두 권 출간됐고, 11월엔 ‘별점 레스토랑 탐방기’ 시리즈의 마지막인 프랑스 편이 출간될 예정이다.

5~6년 전부터 블로거들의 상업화가 심심치 않게 미디어에 오르내리면서 자비로 식당을 평가하는 그의 콘텐츠는 ‘신뢰’와 동일어가 됐다. 더구나 그와 비슷한 유명 블로거들이 하나둘 자신의 식당을 여는 등 외식업자로 변신하자 그의 이름값은 더 높아졌다.

그런 화환을 보낸 적이 없다는 배씨는 “너무 황당해서 웃음도 안 나왔다”며 이런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식당에 전화해 “나 ‘비밀이야’인데 (내가 운영하는) 홍보 서비스에 가입하면 (식당을) 추천해주겠다”며 그를 사칭한 이도 있었다. 거짓말로 출발한 식당이 과연 잘될까는 의문이다.

지난 7월 강원도 속초의 유명한 닭강정 전문점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점검에 위생 불량으로 적발됐다. 짧게는 30여 분, 길게는 1시간 넘게 줄을 서야만 그 집의 달짝지근한 닭강정을 겨우 몇 봉지 살 수 있다. 자신의 SNS에 즐거운 마음으로 닭강정 사진을 올렸던 이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먹방’의 부작용도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다. 최근 M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가 곱창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전파를 타자 장안엔 곱창 품귀 현상마저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대박 행진에 편승해 한우 곱창이라 속이고 냉동 수입 곱창을 판 곱창집이 적발되기도 했다.

곱창볶음
곱창볶음

식당은 전쟁터

‘식당 수집’에 집착하느라, 정작 맛 자체를 음미하고 식도락으로 소통하는 일은 뒷전인 이들. 그들의 허영에 기대 식재료의 진정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식당이 늘고 있다. 먹방은 ‘식당 채집’을 부추기고 게걸스러운 ‘푸디스트’(지나치게 음식에 집착하는 식도락가)를 양산한다. 이렇다 보니 우스운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서해안의 한 조개구이집은 아예 간판에 ‘방송 출연 안 하는 진짜 맛집’이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한편 식당 주인들은 노쇼(예약하고 나타나지 않는 일)에 골머리를 앓는다. 서울 강남의 한 고급 한식당은 예약하고 오지 않은 손님 10명 때문에 그날 준비한 식재료를 다 버렸다. 분통이 터졌지만 도리가 없었다. 레스토랑 ‘쵸이닷’을 운영하며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최현석 셰프는 자신의 SNS에 노쇼의 폐해를 알렸으나 달라지는 것은 그다지 없었다고 한다. 단지 돈을 낸다는 이유만으로 갑질을 해대는 손님은 요리사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건물주의 야비한 갑질은 말해 무엇 하랴!

요리사의 노동조건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다른 이의 식사 시간에 일해야 하는 주방 노동자들은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만성 위장병에 시달린다. 신선한 식재료를 다른 업장보다 빨리 많이 사야 하니 그들은 경매시장이 문 여는 새벽에 노동을 시작한다. 퇴근은 손님이 다 가고 설거지를 마친 밤 11시 이후나 가능하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엔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인류의 비밀이 숨어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크 쿨란스키는 생선 대구 한 마리가 세계지도를 바꿨다고 주장한다. 지금 중국을 만든 마오쩌둥은 고향 후난성의 매운 고추를 즐겨 먹었는데, 훗날 그는 “혁명은 매운 고추의 맛”이라고 했다.

제대로 먹는 법을 찾아서

전쟁터 같은 외식업계, 농산물과 환경, 오염된 바다, 주방 노동자들의 인권, 종자 독점 등 우리 식탁에는 따져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그래서 먹는 동네의 여러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려 한다. 내가 잡은 펜은 그저 창구요, 방향 지시등이다.

본래 좋은 것, 훌륭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 짧은 시간, 그런 것들을 얻었다면 가짜이거나 사기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식탁도 마찬가지다. 이 여정의 목적은 결국 ‘어떻게 먹을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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