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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시장을 처음 겪어보고 나는 공포를 느꼈다

처음엔 아무도 룰을 모른다

  • 박세회
  • 입력 2018.09.07 17:33
  • 수정 2018.09.07 23:07
ⓒBloomberg via Getty Images

장하성 실장이 지난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거주를 위한, 정말 국민들의 삶을 위한 주택은 시장이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그는 ”삶을 위한 주택”에 들어가지 않는 부동산의 대표 주자로 ”강남”의 고가 주택을 꼽았다. 그는 ”아주 부자들이 사는 고가 아파트랄지 그건 정부가 관여해야 될 이유가 없는 겁니다”라며 ”모든 국민들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고”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 ‘삶을 위한 주택’이 시장을 이길 수 있을까? 지나친 낙관은 아닐까? 지난 3월 아파트 시장을 둘러보러 다녔다가 영혼이 방전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동산 시장이 너무 무섭다. 

″여기는 5억 2천만원으로 하기로 했어요. 이 지역은 (부동산 업자들이) 그렇게 가격 조정이 끝났어요.”

서울 서남권의 25평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부동산 중개인로부터 들은 말이다. 이 업자는 우리에게 집을 보여주고 난 후 동네 부동산 중개사업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딱 정해져 있어요. 아파트는 거래 시세 변화도 국토부에 다 등록되어 있어서 동네가 어디냐 100세대 이상이냐 아니냐 계단식이냐 복도식이냐, 화장실이 1개냐 2개냐, 층수가 어떻게 되느냐, 베란다가 마주 보는 구조냐 아니냐 그런 걸로 가격이 딱 나오거든”이라며 ”이동네 대장주는 XX 아파트고 그 아파트 가격은 결국 서울 대장인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 폭 따라서 업자들이 조정하는 거죠. 여기는 강남이 한 5천만원 오르면 3천만원 정도 오르는 식이더라고요”라는 말이었다.

그 중개인이 10채의 아파트로 우리를 끌고 다니며 보여주는 동안 우리는 세뇌당했다. ”저 아파트는 내가 4년 전에 판 건데 돈 수억 챙겨서 다른 좋은 데로 이사갔지. 그때는 이렇게 뛸 줄 몰랐으니까”. ”저 아파트도 2년 전에 들어온 신혼 부부인데 이민 가려고 2억을 올려서 내놨더라고”. 회사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40분 거리. 이정도면 ‘삶을 위한 주택’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시세 차액을 잡지 않으면 바보라는 욕망으로 더럽혀지고 있었다. 

그 중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요새 진짜 매물이 없어. 나오면 잡아야 해.” 부동산 중개인의 차를 타고 10채를 돌아보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언감생심 한번 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던(돈도 없었으니까)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의 단맛을 볼 기대에 부풀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회사 대출은 없는지, 신용 대출로 빌릴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아직 우리가 국가와 금융권에서 인정하는 신혼부부인지. 지금 사기만 하면 노다지라는 가장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우리가 가진 돈으로 넘볼 수는 있는 아파트인지를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때 부동산 업자가 말했다. ”아유 그 아파트는 안 판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니까 집주인이 가격을 좀 더 올려도 되겠다고 생각했나봐. 매물을 거뒀어”라고. 

다른 지역에 집을 보러 갔을 때 이게 어떤 케이스인지 설명을 들었다. 서울 중심 지역의 한 중개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는 부동산에 아파트를 찔끔찔끔 내놓는 척 하더라고요”라며 ”주기적으로 부동산 돌아가며 내놓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도 자주 그래서 부동산 업자들도 싫어해요”라고. 

넋이 빠져나가는 심정이었달까?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우리 같은 호구는 그냥 승냥이 앞의 토끼구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다 호구가 아닌가? 갭투자를 하는 선수가 아니고서야 ”아유 집 거래는 질릴 만큼 해봤지”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불과 4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봤던 그 동네 그 대장주 아파트를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호가가 6억 5천만원이다. 그런데 진짜 6억 5천만원이냐, 하면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토부 사이트를 통해 검색하니 8월까지 5억 5천만원에 거래된 게 같은 크기 최고가지만 ”당신의 아파트는 5억 5천만원입니다”라고 말해봐야 이길 도리가 없다. 아무리 ”삶을 위한 아파트”라고 설득해도 이길 수가 없다. 대부분 이런 룰도 모른 채 노름판에 앉는다. 노름판에서 광을 파는 은행이 말한다. ”돈 더 필요하면 말씀 하세요”.

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알고 보니 아파트 가격을 꼭 부동산 업자가 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 북서쪽의 한 동네에 예약을 하고 주말에 아파트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도 끌려 다니며 12채 쯤 본 것 같다. ”이거 매물도 없는데 어렵게 집주인들이랑 약속 다 잡아 놓은 것”이라며 중개업자가 말했다. ”저기 새로 짓는 아XX크 보이시죠? 저기 매물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허위 매물로 신고를 해서 팔 수가 없어요. 그 아파트 가진 사람들이 포털 부동산에 올라온 가격이 마음에 안 들면 전화해서 허위매물이라고 신고를 하는 거예요”라고.

나는 그때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했다. 나중에 기사를 보고 알았다. 입주자 커뮤니티 등에서 집값을 인위적으로 올리기 위해 ‘호가 담합‘을 벌이고 있다는 걸. 얼마 전에도 뉴스가 났다. 8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총 2만1824건의 허위매물 신고가 접수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고 한다. 뉴스는 부동산 중개인들이 정상 가격의 매물을 게시해도 지역 주민과 입주자 커뮤니티 등이 ‘낮은 가격의 허위 매물’이라며 신고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앞서 언급한 아파트의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33평은 10억원 27평은 7억5천만원으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호가가 똑같다. 이게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무서워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거래 완료‘라는 딱지를 붙이고도 허위 가격을 전시하도록 놓아 둔 포털 사이트에도 책임이 있겠고, 담합을 일삼은 부동산 중개인들에게도 책임이 있겠고, ”우리 단지는 올해는 꼭 10억 가야 합니다”라고 외치는(오프라인에도 온라인에도 정말 많다) 단지 내 선동꾼들 몫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시간 아파트를 보고 시세 차익에 눈이 멀어 없는 돈까지 끌어다 쓸 뻔했던 내 욕심이 가장 위험했다. 이 기민하고 유기적인 탐욕의 세계에서 ‘삶을 위한 주택’이 패배하지 않으려면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수현 사회수석이 말했듯이 이 세계는 ‘하이에나가 우글거리는 정글’인데 하이에나는 삶을 위한 주택이 뭔지 아예 모르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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