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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7일 14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07일 14시 41분 KST

러시아 스파이 '부녀 음독 사건'의 자세한 동선과 전말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인가?

Handout . / Reuters

러시아의 장교들이 러시아와 영국 간의 이중간첩으로 활동하던 아버지와 그의 딸을 ”노비촉”이라는 독성 물질로 암살을 시도한 사건의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영국과 러시아는 물론 주변국들이 모두 한마디씩 보태며 유럽이 시끄럽다.

노비초크 음독 사건은 어떻게 벌어진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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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스크리팔과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 

지난 3월 4일 오후 4시 15분께 세르게이 스크리팔(66)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33)이 런던 근교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영국 수사당국이 밝힌 바로는 이들이 중독된 물질은 러시아가 군사용으로 개발한 신경작용제 ‘노비초크’다. 

세르게이 스크리팔은 러시아 군 정보총국(GRU, 우리로 따지자면 기무사령부)과 영국  비밀정보국(’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MI6)의 이중간첩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이번 발표를 보면 영국 수사 당국은 사건 발생 후 6개월 동안 1만1000시간 분량의  CCTV 영상과 1400명의 목격자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부녀가 쓰러지기 이틀 전 영국에 들어왔다가 범행 당일 영국을 떠난 러시아 GRU 소속의 두 장교다. 

Handout . / Reuters
알렉산더 페트로프와 루슬란 보쉬로프가 범행 당일인 3월 4일 솔즈베리 역에 도착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알렉산더 페트로프(39)와 루슬란 보쉬로프(40)가 러시아의 국적기인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개트윅 공항(런던 권에서 히드로 다음으로 큰 공항) 에 도착한 것은  지난 3월 2일 금요일 오후 3시(현지시간). 이들은 런던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오전에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고 솔즈베리로 향했다가 2시간여 동네를 둘러보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둘은 범행 추정 당일인 4일 오전 11시 48분 솔즈베리역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들이 음독 당한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거주하는 집에서 멀지 않은 지역을 배회하는 장면이 CCTV 카메라에 잡혔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은 오후 1시 50분께. 수사 당국은 이들이 그 사이에 스크리팔의 자택 손잡이에 노비초크를 분사했다고 보고 있다.

영국 수사당국은 이들이 묵었던 호텔 방과 스크리팔 부녀의 동선에서 노비초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수사당국의 발표를 보면 이들의 동선은 율리아 스크리팔의 런던 방문과 딱 맞아떨어진다. 3일 러시아에서 런던권 히스로 공항을 통해 입국한 율리아는 다음날 세르게이와 함께 1시 40분경 집을 나서 인근 상업 지구에 있는 선술집과 레스토랑에 들렀는데, 이 두 곳 모두에서 신경작용제 노비초크의 흔적이 발견됐다.

 

Handout . / Reuters
알렉산더 페트로프와 루슬란 보쉬로프가 범행 당일 솔즈베리의 피셔튼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CCTV 에 잡혔다. 

스크리팔 부녀가 ”매우 위험한 상태로 벤치에 앉아 있다”는 첫 보고가 들어온 시각은 오후 4시 15분이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맞는다면 용의자들은 노비초크를 살포한 후 부녀가 쓰러지기 전에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22시 30분 히드로 공항을 통해 아에로플로트 항공편을 타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개트윅 공항 입국, 히스로 공항 출국까지 걸린 시간은 채 60시간이 되지 않고, 그동안 이들은 두 차례나 솔즈베리를 방문했다.

용의자의 동선을 파악해 이들이 런던에서 묵었던 호텔 방을 조사한 결과 노비초크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 당국이 이 방을 검사한 것은 5월 4일. 당국은 ”방에서 찾은 노비초크의 샘플은 장단기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간 이 방에 묵었던 손님 중에 이상 증세를 호소한 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5일 경찰은 두 러시아인 용의자를 살인공모·살인미수·화학무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영국 하원 의회에 출석한 테리사 메이 총리는 음독사건이 ”독자적인 작전이 아니었다”며 “정부 고위급에서 승인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은 지난 6월 30일 영국 남서부 윌트셔주 에임즈베리 한 주택에서 던 스터지스(44)와 연인 찰리 롤리(45)가 함께 쓰러진 사건을 공식적으로 솔즈베리 사건과 묶어 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남자 친구인 롤리는 집 앞 자선 기부함에서 발견한 ‘니나 리치’ 향수를 스터지스에게 줬고, 스터지스는 이 향수를 팔목에 뿌린 것으로 보도됐다. 특수 제작한 노즐이 달린 가짜 향수병 속에는 ‘노비초크’ 성분이 들어 있었다. 직접 접촉한 스터지스는 8일 만에 사망했으며 롤리는 실명했다. 

만약 솔즈베리 사건의 범인들이 사용하고 버린 향수병이 자선기부함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라면 이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희생자인 셈이다. 

러시아 정부는 용의자 소환을 거부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의 이러한 수사 결과 발표를 두고 ”거짓말”이라며 이 의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