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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하려면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huffpost

현대판 <콩쥐 팥쥐> 같은 일이 인천에서 구청과 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어느 민간 축제가 행사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하려고 지난달 10일에 인천 동구청에 신청서를 냈다.

축제를 기획한 이들은 인천이 광역시인데도 마치 서울의 작은 위성도시처럼 여겨지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역사적으로 인천이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이던 개방과 포용의 도시임을 부각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조직위원회가 축제의 상징으로 인천공항이 연상되도록 비행기 모양을 택한 것만 보아도 이들의 인천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관이나 기업의 후원이나 개입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 축제라는 점도 이 축제의 특징이다.

동인천역 북광장은 2012년 수억원의 돈을 들여서 새 단장을 했지만 그동안 민간에서 주도하는 행사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축제가 열린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엔 접수를 한 동구청은 갑자기 이틀 뒤 예정에 없는 추가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질서 유지를 책임질 자원활동가 300명의 명단과 주차장 100면을 확보했다는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하루의 시간만을 주면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축제는 경찰에 집회 신고까지 마친 상태였기에 구청이 300명이나 되는 안전요원을 추가로 요구할 이유가 없었다. 즉 불필요한 서류를 굳이 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놀랄 사실은 구청이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 그러니까 애당초 제출 불가능한 서류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세상의 어느 주차장이 굳이 사전 예약을 해주겠는가. 북광장 주변의 모든 주차장이 난색을 표했다. 심지어 동구청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에서도 주차장 사전 예약은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쯤 되면 뭔가 미심쩍지 않을 수 없다. 동구청은 주차장 확보 계약서를 못 가져올 것을 뻔히 알면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 것이 아닌지. 지금까지 동구에서 열리는 다른 어떤 행사에도 주차장을 미리 확보해야만 장소 사용을 허가한다는 조건을 동구청이 내세운 적이 없다고 한다. 마치 콩쥐에게 잔칫집에 놀러오고 싶으면 먼저 밑 빠진 장독에 물을 가득 채우고 오라고 한 팥쥐와 다를 바 없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를 ‘심술부린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이건 ‘괴롭힘’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힘없는 축제 조직위원회는 백방으로 뛰었다. 기적적으로 하루 만에 자원활동가 300명을 모집했다. 주차장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대신 축제 참가자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홍보를 더 많이 하겠다고 답했다. 광장 자체가 지하철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동구청은 마감 기한 내 서류를 다 제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행사 승인을 바로 취소했다. 이것이 8월14일의 일이었다.

그러니 콩쥐라고 해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조직위원회는 많은 시민들의 탄원서를 모아서 ‘광장 사용 신청 반려 취소’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탄원에 대한 동구청의 답이 9월4일 나왔다. 이번엔 ‘행사 개최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의 차량통행과 보행에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불승인했다. 어허! 이 역시 팥쥐나 댈 법한 핑계가 아닌가. 2000명 정도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축제를 교통 혼잡을 이유로 불허하다니! 불과 3개월 전에 무려 12만명이 참여한 ‘화도진 축제’가 바로 그 광장에서 구청의 주관으로 열렸는데도 말이다.

사실 구청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집회 신고가 되어 있기에 행사는 구청의 결정과 상관없이 그대로 열릴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구청은 행사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명분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차별 행위를 하면서까지 강행하는 것이다. 왜일까, 누구에게 그 명분이 왜 필요한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돌아오는 9월8일 토요일에 열리는 이 민간 축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이 축제의 이름은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다. 퀴어문화축제는 이미 서울, 대구, 전주에서 열렸고 인천을 시작으로 앞으로 제주, 부산, 광주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축제를 둘러싼 오해와 유언비어도 많다. 차별과 괴롭힘도 많다. 그래도 분노하고 화를 내는 대신, 꿋꿋하게 웃으면서 자긍심과 행복, 그리고 평등을 외치는 것이 퀴어문화축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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