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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10대를 보냈다면 추억할 것들 7

다들 한번쯤 야자 시간에 PMP로 영화 봤잖아요?

ⓒhuffpost

우리에겐 모두 10대 시절이 있었다. 고스펙에도 취업 안 돼서 열정페이 강요받는다는 가엾은 지금의 20대 중·후반들도 한 때는 ‘요즘 애들은 매일 컴퓨터만 해서 아주 자기중심적으로 클 것 같아 걱정이야’라는 얘기를 듣던 10대였다.

나는 전 세계가 밀레니엄 설레발을 치던 2001년에 10대에 진입했다. 그렇게 격동적이던 2000년대에 질풍노도의 10대를 보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많은 것들이 급박하게 바뀌었다. 우리 20대들이 그나마 추억할 만한 것들은 조금씩 사라져갔고, 어떤 것들은 이미 그 기능을 다해 없어져 버렸다. 

딱 2000년대스러운 느낌으로 사라져버렷..!

그럼에도 우리의 추억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것들이 있다. 묻어두고 살고 싶지만 혼자 자려고 누워서 불 끄면 문득 생각나 이불을 차게 만드는 우리네 흑역사 같은 그런 추억들 7가지를 소환했다. 공감된다면 스크랩하고 퍼가요~♡

1. 싸이 미니미와 미니룸

ⓒcyworld

싸이월드에서 프로필과 BGM(주로 프리스타일-Y) 다음으로 내 개성을 보여줄 수 있던 것은 미니미가 살고 있는 미니룸이었다. 미니미의 패션 스타일이나 미니룸의 인테리어는 도토리 지출 여부에 따라 상당히 달라졌다. 종종 연인이나 친구와 ‘커플 미니미’를 하는 애들도 있었다. 이 기능은 특히 ‘페이스북 프로필에 연애 중 띄우기’의 원조격이라 볼 수 있다.

ⓒcyworld

일촌의 방명록에 글을 남길 때 미니미의 진가는 드러나곤 했다. 지금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는 프로필 사진이 글을 남길 때마다 딱딱 뜨곤 하지만, 그 당시 방명록에 글을 남기면 한껏 분위기 있는 척 하고 찍은 우리 셀카 대신 상큼한 미니미가 등장해 모두의 시력적 부담을 줄여주곤 했다.

2. 알 선물

꼭 중순쯤 되면 ”나 알 좀 주라” 하는 애들이 있었다. 지금의 ‘데이터 선물하기’ 선구자쯤 되는 기능으로, 청소년요금제끼리 ‘알’을 선물해 부족한 문자와 전화를 충당할 수 있었다. 친구한테 한 30알 받으면 또 쓸데없이 괜히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손 집어넣고 눈은 선생님 보면서 손가락 감각만으로 굳이 안 해도 되는 문자 또 보낸 경험도 다들 있을 터. ‘알’과 비슷한 개념으로 ‘팅’도 있었다.

3. 보아 메들리

2000년대에는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굵직한 아이돌들이 대거 데뷔하긴 했으나 그래도 소녀들끼리 노래방에 가면 원픽은 단연 보아였다. ‘발렌티‘, ‘마이 네임’ 같은 댄스뮤직부터 ‘에버레스팅‘, ‘메리크리’ 같은 쏘울풀한 발라드까지 갓-보아님 존함만 검색하면 모든 장르의 노래를 연달아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땐 ‘코인노래방’이 핫하지 않았기에, 교복 입은 소녀들은 한 시간에 6천~8천원쯤 하는 허름한 노래방을 찾아 긴 줄이 달린 마이크를 들고 ”불러 줄래 마이 네임 뜨르른 뜨뜬 뜨뜬”을 연호하며 골반춤을 열심히 추곤 했다.

4. 샤기컷/울프컷

ⓒ뉴스1

‘Girls on Top’이라고, 지금 발매됐으면 좀 큰일날 것 같은 노래가 13년 전에 있었다. 역시 갓-보아님의 노래가 나왔던 그 당시는 유례 없는 샤기컷/울프컷 열풍이 불고 있던 때였다.

머리카락에 층을 내면서 숱을 쳐서 자르는 이 컷이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나 쎄고 잘나가 보였던 걸까? 특히 윗머리에 ‘뽕’이 많이 들어갈 수록 그 간지는 더해졌다. 이를 위해 습관적으로 옆머리에 손을 넣어 뽕을 띄워주는 건 필수였다.

5. 엄마아빠가 인강 보라고 사주신 PMP로 딴짓하기

ⓒcowon

우선 PMP라 함은 ‘음악 및 동영상 재생, 디지털카메라 기능까지 모두 갖춘 휴대용 멀티미디어 재생장치’이다. 한 반에 10여 명 정도는 이 PMP를 매일 갖고 다녔다. 인터넷이 되는 장비가 아니었기에 집에서 따로 인강(인터넷 강의)을 다운받아 와야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볼 수 있었는데 종종 의도적으로 인강만 안 다운받아 오는 애들이 있었다. 보통 그런 친구들의 PMP에는 인강만 빼고 모든 종류의 영상이 다 담겨 있었다.

‘런닝맨’ 전에 ‘패떳’이 있었고 이효리도 대성도 어렸다

그런 친구들은 야자 시간에 옆자리 친구를 꼬셔서 같이 ‘패밀리가 떴다’ 같은 거 보면서 숨죽여 웃고 그랬다. PMP 비슷한 걸로 전자사전이나 대형화면 MP3 등이 있었다.

6. 애니콜, 싸이언, 스카이 

ⓒanycall/cyon/sky

2010년, 갤럭시S1이 출시된 후 한국사회는 2년도 안 되는 사이 엄청나게 큰 변화를 겪었다. 홈버튼과 액정 크기 정도만 다르고, 다 똑같은 디자인의 스마트폰이 세상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핸드폰을 고르는 기준에서 ‘디자인’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다. 기능이라고는 전화, 문자 정도가 다라 고만고만했기에 디자인이라도 예뻐야 했던 것이다. 색깔도 다양했다. 삼성 용달블루나 아이폰 로즈골드 같은 거랑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어쩌다 반 친구 누가 구준표폰이라 불린 ‘햅틱팝‘으로 폰을 바꿨다거나, 싸이언 ‘초콜릿폰’을 샀다거나 하면 순식간에 모두가 몰려가 한 번씩 구경하고, 만져보고, 셀카를 찍어보곤 했었다. ‘스타일보고서’ 같은 걸로 전화라도 받으면 전교생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받던 때였다.

7. 핸드폰 가운데 버튼

ⓒSTR via Getty Images

누르면 요금폭탄

핸드폰 자판 한가운데에는 ‘nate’나 ‘show’ ‘oz’ 이런 게 쓰여 있는 동그랗고 조그만 버튼이 있었다. 사실 이 버튼은 존재 가치가 없었는데, 모두가 누른 순간 바로 핸드폰을 덮어버리거나 급하게 그 아래에 있는 C/취소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는 행동을 반사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실수로 그 버튼을 눌렀다가 가만 내버려뒀을 때 무슨 큰일이 생기는 건지는 정확히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요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기에 조건반사적으로 그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인터넷 없는 핸드폰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 특권층이었던 것이다.

불과 10년 사이 싸이 퍼가요~♡와 알 선물하기는 완전히 추억 속에 잠겨 버렸고, PMP와 각종 피처폰은 아직 세상에 있긴 하지만 굳이 찾아서 쓸 만한 물건들은 아니게 돼 버렸다. 모두 그 당시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많은 것들은 지금보다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10년 후에는 2010년대의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흑역사를 남겨줄 수 있을까? 부디 오늘 인스타에 올린 사진이 흑역사가 되어 돌아오지만은 않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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