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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의 일등공신, 법원

ⓒhuffpost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신청, 일명 ‘손배가압류’를 막아보자며 만들어진 단체가 있다. 바로 ‘손잡고’다. 몇 년 간 ‘손잡고’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활동하며 가장 좋았던 건, 현장의 노동자들을 매달 만나는 것이었다.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KEC, 하이디스, 갑을오토텍, 기아차 비정규직, ... 전국 곳곳의 노동자들이 손잡고 현장 간담회에 참여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적게는 몇 억, 많게는 몇 백억 원의 손배소송의 피고라는 것. 재산에 가압류를 당한 사람도 있고, 이미 손해배상 판결이 확정되어 월급 중 상당액을 회사에 자동 납부 당하는 사람도 있다.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사측으로부터 54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당한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간담회에 참여했고, 해고와 피소로 수임료도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피고 대리를 맡았다.

간담회에 참여한 얼마간 내 고개는 저절로 땅으로 향했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금액의 손배가압류를 당한 사연을 온전히 들을 수 없었다. 현장 대신에 법정에 서야 하는 그들의 얼굴을 차마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소가’니, ‘조정’이니, ‘감정’이니... 현장에서 투쟁해야 할 이들의 입에서 법률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쩌다 이들은 소송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을까.

2017년 6월말 현재 양대 노총의 손배가압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 및 조합원 개인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약 1,867억원에 달한다. 쌍용자동차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과 점거를 이유로 174억원을, 정부는 파업 진압에 관한 손해로 30억원을 쌍용자동차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청구했다. KEC는 직장폐쇄 후 공장점거를 이유로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306억원,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한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현대자동차는 325억원을 청구했다, MBC는 공정방송을 요구한 파업에 대해 195억원, 한국철도공사는 수서발 KTX자회사 설립 반대 등을 요구한 파업에 대해 646억원의 손배청구를 했다.

손해를 입혔으니까 회사가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언컨대,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다. 삼성그룹의 2012년 노사전략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고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를 만든 뒤 노조해산 유도”라고 적혀 있다.

2011. 10월 유성기업이 만든 가입확대전력 문건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우리의 소송 구조에서는 돈이 있는 자는 소송을 하기가 참 쉽다. 손배소송의 소가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실제 손해액은 중요하지 않다.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이다. 피고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실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중 일부만 특정해서 피고로 세울 수 있다. 공교롭게도 불법행위에 따른 책임은 부진정연대책임(각자가 손해배상액의 전액을 책임지는 구조)이라는 것이 판례와 통설이기 때문에 피고가 된 각자가 청구액 전액에 대한 배상 부담을 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위축시키고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구체적인 실행 과정을 보자. 노조가 파업, 기타 쟁의행위를 하면 회사는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일단 거액의 손배청구를 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재산을 가압류한다. 가압류는 가압류를 당하게 되는 사람 모르게 신청인과 법원의 판단만으로 결정이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재산이 없는 사람에게 가압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피소되는 건, 그 자체로 두렵고 번거로운 일이다. 의사와 무관하게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수임료 등의 각종 지출이 생긴다. 가압류를 당하면 당장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통장에 가압류를 당하면 사실상 금융생활이 불가능하고, 전세권에 가압류를 당하면 이사하는 게 불가능하다. 회사는 불안감에 휩싸인 조합원들에게 접근해서 ‘소를 취하해 줄 테니 노조를 탈퇴하라’는 요구를 하고, 노조를 탈퇴하는 조건으로 피고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들이 많을수록 남은 피고들은 탈퇴한 이들의 몫까지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된다. 한 사업장의 경우 쟁의행위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100여 명이었는데, 이후 회사는 노조에 남은 30여 명만을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실행했고, 이후 7명의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자 그들에 대해서는 소를 취하하고 가압류를 해제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담보하는 재산이 많을수록 회사에 유리한 건데, 소 취하와 가압류 해제로 담보 재산을 줄인다니 이정도면 소권(訴權)남용 아닌가.

더 슬픈 건 판결 전의 불안함은 언젠가 꼭 실현된다는 것이다. 회사가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송 중 전부 기각된 경우는 1%도 안 된다. 백이면 백 법원은 회사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왜 회사 손을 들어주는 것일까? 겉으로는 법리에 따른 것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연 법원이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쟁의행위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노조법 제2조)이고, 우리 헌법은 이러한 업무 저해 행위를 기본권으로서 인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러한 기본권 행사를 불법행위로 예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취지는 단체행동권 행사의 당연한 결과로 발생하는 사용자의 손해, 업무 방해에 대해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조법 제3조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정하는 것도 헌법에 연유한다. 그런데 법원은 노조법 제3조의 “이 법에 의한 쟁의행위”를 정당한 쟁의행위로 축소 해석하고, 정리해고 반대 파업, 공정방송 확보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단정하고 이러한 파업에 대해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것이다. 정당한 쟁의행위, 그것도 법원이 자의적으로 정한 정당성 기준으로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좁히는 것은 문리적 해석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쟁의행위는 그 자체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다.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시민법상 법익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 대응한 관계를 위하여 불법행위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 노동3권, 노조법 제3조의 취지다. 쟁의행위로 인해 법익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물론 쟁의행위 도중 폭력행위나 손괴행위가 발생했다면,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에서 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예컨대 조합원들이 파업 도중 공장 벽에 “노동3권 보장해라”라고 페인트로 칠했다면 공장 벽을 원상복귀하는 데에 들어갈 비용을 손해로 인정하면 된다. 조합원들과 회사가 동원한 경비용역 간에 충돌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경비용역이 다쳤다면 그 치료비와 일실손해 상당액만 인정하면 된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런 경우 원고는 피해를 입은 경비용역이지 회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폭력, 파괴행위가 있다는 이유로 쟁의행위 전체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파업 기간 중 공장이 멈춘 데에 따른 전체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을 중단하는 소극적인 행위를 두고 업무방해로 구성하는 것도, 회사에 대해 보증인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일을 중단했다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법리에 맞지 않다. 노조 파괴의 일등공신은 법원이라고 감히 주장해 본다.

글 : 윤지영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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