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두려움의 힘

ⓒhuffpost

“두려워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이 일의 실체는 강요가 아닙니다. 민관협력, 나쁘게 말하면 정경유착의 사례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강요죄 재판에서 구사한 변론이다.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의사결정을 강제하는 협박이 행사되어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 기업들에 거액의 돈을 요구했을 뿐, 거절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고인에게 사실상의 종신형을 안기면서 최악의 실패를 거둔 이 변론은 재평가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변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법원의 판단이 오락가락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넹?”, “자니”, “아니욤”, “올래?”, “주무시다 깨심요?”, “ㅇ”, “엥?”, “..담배”, “네. 담배.”, “..” 안희정 전 지사와 비서 김지은씨가 주고받은 메시지다. 김지은씨가 지시대로 담배를 가져갔을 때 안희정 전 지사는 동침을 요구했고, 김지은씨는 “아니요,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이후 성관계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법원, 피고인, 피해자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 문자메시지를 안희정 전 지사가 무죄인 근거로 삼았다. 이날 일어난 일을 성폭행이 아니라 남녀 동침, 나쁘게 말하면 간음의 사례로 본 것이다. 안희정 전 지사가 성관계를 요구하며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재판부의 생각이었다. 대체 어느 대목에서? “..”라는 표현에서. 단순히 담배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바로 담배를 가져오라고 말했어도 되는데, “..”을 여러 차례 보낸 것은 성관계를 원한다는 뜻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방에 담배를 들고 찾아간 이상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응했다는 것이다.

김지은씨는 “..”에서 안희정 전 지사의 불쾌한 심경을 파악하고 압박감을 느껴 방에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 침묵이 위력으로 작용했다고 항변한 셈이다. 똑같은 표현이 법원의 눈에는 성관계 의사의 확인으로 보였고, 반대로 위력의 성립을 부정하는 근거가 됐다.

마침점 두 개가 연달아 붙어 있을 뿐인데,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해석이 달려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마침점 두 개에 그렇게 복잡한 뜻이 담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보통의 남녀는 동침까지 이르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절차를 생략하고 “..”처럼 빠르고 확실한 의사소통을 선택하지 않는 걸까? 법원은 그 깊은 뜻을 어떻게 간파했을까?

법원이 위력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존재할 뿐 표현되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위력이 아니다”라고 판결한다 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침묵의 위력 위에 사법의 위력이 더해질 뿐. 위력은 스스로를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으로 표현된다. 표현해야 한다면 이 권능의 격은 크게 손상된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을 들어, 다칠 수도 있어”처럼? 그것은 중학생들이 주먹다툼 하기 전에나 주고받는 언어다. 힘을 갖지 못했다면 털이라도 부풀려야 한다.

반면 권력의 위협은 너무나 명백해서 가능성만으로도 작동한다. 천장에 실로 매달아놓은 식칼처럼. 눈 감고 귀 기울여보라. 소리로는 식별할 수 없다. 그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출연금을 내라는 ‘제안’이었고, 광주학살 직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대원들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고 친서로 써보낸 ‘조언’이었다. 하지만 위력(威力)이 문자 그대로 두려움(威)의 힘(力)이라면, 그 불편한 뉘앙스를 담아내는 최고 수준의 생략법은 이런 형태까지 도달함을 법원은 확인시켰다. “..”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법원 #위력 #문자메시지 #안희정 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