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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5일 10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05일 10시 32분 KST

‘포용국가’와 영월의 청년 바리스타

석향 트레인스테이
huffpost

시원한 바람이 들기 시작한 강원도 영월 석항역 앞에는 기차를 개조한 아름다운 카페가 서 있었다. 세련된 푸른색 외관과 탁 트인 테라스가 눈길을 끌었다. 카페는 최신 보드게임과 멋들어진 식탁들로 들어차 있었다. 뉴욕 소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카페인 듯 이국적이었다. 하룻밤 바쁜 휴가를 간 아이는 그곳이 ‘인스타그램 친화적’이라며 좋아했다.

‘석항 트레인스테이’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가 영월군의 위탁을 받아 운영 중인 시설이다. 빈 기차역 앞에서 기차 몇량을 펜션과 카페와 식당으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카페 부엌에는 청년 바리스타 한명이 우뚝 서 있었다. 커피를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물음표를 하나 떠올렸다. 그는 잘 버틸 수 있을까?

청년은 지역에서는 보석과도 같다. 영월군은 지난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네명 중 한명이 65살 이상이다. 고령화율이 전국 평균의 두배에 육박한다. 그 인구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년이다. 그야말로 국보급이다.

그 보석들은 기회만 되면 지역을 떠난다. 그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사지 멀쩡한 청년’은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데, 지역에는 그를 성장시킬 법한 일자리가 없다. 창업하고 창직할 수도 있지만,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가 없으니 시작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모든 의사결정은 앞선 세대의 몫이니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주인이 될 수 없는 곳에서 인재는 머물지 않는다.

그나마 그가 지금 카페에 설 수 있게 만든 것은, 실험과 안전망이다. 이윤 고려 없이 지역 주민을 고용해 지역 살리는 사업을 하겠다는 사회적기업이 한몫을 했다. 그 덕에 인적이 끊긴 듯한 동네에서 기차가 끊긴 철도 역사와 열차를 활용하는 실험이 가능했다. 그런 일을 뒷받침하는 영월군의 결정이 안전망이 됐다. 그런 실험을 품어주는 지역 어르신들의 넉넉함도 안전망이 됐다. 이런 토대 위에, 그는 지역에서 일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주위를 돌아보면, 지금 이 나라에서는 그중 어느 것도 튼튼하지 않다. 실험은 검증되지 않았다며 쉽사리 배척당한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들은 살아남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포용해줄 안전망이 부실하다.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 어르신들은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도시에 보내 뒷받침해줬다. 그때 그 청년들은 공장과 무역 현장과 대학과 시민사회를 누비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꽃피웠다. 보호하되 간섭하지 않으며 ‘네 뜻을 펼치라’고 말해주었던 결과다.

정부가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그 포용의 핵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당연히 실험과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옛 어르신들의 바통을 국가가 넘겨받을 차례다.

국가가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떠받쳐야 한다. 지난 세대 어르신들이 소 팔고 논 팔아 불확실한 자식에게 투자했듯이 말이다. 실패해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에 대한 포용이 그 핵심이다. 포용국가와 혁신성장은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된다.

2030년쯤이면 전국 노령인구 비율이 지금의 영월군 수준으로 오른다. 우리 모두는 이제 영월에 살게 된다. 지금 구조를 그대로 굳혀서는 희망이 없다. 혁신과 역동성이 남아 있는 나라에 살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굳어져 버릴 것인가.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안전망과 혁신의 선순환이 가능하게 만드는 과감한 정책실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영월의 기차 없는 기차역에서 빈 기차를 지키고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우리 사회의 미래에 겹쳐졌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