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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판사를 대상으로 한 영장을 왜 자꾸 기각할까?

납득이 안된다

원래 판사들은 인신구속이 아니라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 영장’은 잘 발부한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 통계가 그렇다. 지난해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2017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은 총 18만 8538건, 이중 법원이 발부한 영장은 16만8268건으로 발부율로 따지만 89.2%다. 열 중 아홉은 발부된단 소리다.

그런데 이 압수수색의 대상이 ‘판사’ 내지는 ‘법원’이 되면 이 수치가 바뀐다. 2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검사 신봉수), 특별수사3부(부장검사 양석조)가 이날까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과정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208건 중 약 11%인 23건만 발부됐다. 법원행정처에 대한 영장 청구는 거의 철옹성과 같다.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대해 청구한 50건의 압수수색영장은 1건도 발부되지 않고 모두 기각됐다.

이 때문에 ‘사법 농단‘을 수사하는 검찰과 법원 영장파산 사이에서 갈등이 계속 이어지는 모양새다. 그 여파로 서울중앙지검은 ‘영장 기각 사유’를 공개했다. 그런데 그 사유를 보면 검찰의 불만대로 쉽게 납득되지 않을만한 사유가 다수 있다.

 

ⓒwildpixel via Getty Images

 

사례 1 : 추측

2016년 당시 부산의 문아무개 판사가 건설업자 정아무개씨로부터 향응을 받고 재판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법원행정처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씨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허경호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15일 정씨 사건 1·2심 재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재판 관여 계획을 담은) 행정처 문건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추측으로 영장 심사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기각 사유는 반복됐다. 하지만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은 불과 보름 뒤 검찰에서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재판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받고 해당 재판장에게 전했다”고 진술하면서, 허 판사의 판단은 근거 없는 ‘추측’이었다는 게 드러나게 됐다.

 

사례 2 : 예단

‘재판 거래는 없다’며 사실상 무죄 선고에 준하는 판사의 예단이 영장 기각 사유에 동원되고 있다. 이언학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1일 강제징용 사건 재판 거래 의혹 관련 행정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일개 심의관(판사)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이 외교부에서 압수한 회의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차한성·박병대 대법관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몰래 만나 징용 사건 재판 결과를 번복하는 방안을 논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 판사는 2일 “‘재판 거래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법원의 희망사항을 영장 기각 사유로 표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례 3 : 오류

추측과 예단이 반복되다 보니 사실 관계도 충분히 살피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언학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30일 행정처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상고심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대필해줬다는 의혹에도 “(관련 자료) 임의제출을 먼저 요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이미 자료 제출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해서 영장을 청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겨레 9월 3일

‘사법농단’ 영장 기각·기각·기각… 사유가 기가 막혀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 혐의 관련 자료가 압수수색 장소에 있을 가능성이 소명되고, 수사 관련성만 있으면 영장을 내준다”며 “각종 ‘곁가지’ 사유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사실상 압수수색에 필요한 요건은 이미 충족됐다는 뜻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검찰도 반발하긴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31일,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재판개입 정황을 수사하기 위한 고영한 전 대법관과 고용노동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또다시 기각되자 ”통상 압수수색 영장은 핵심 관계자 조사 이전에 청구되고 발부되지만, 이 사건에서는 핵심 관계자들 상당수를 조사하고 자료까지 확보한 상태”라며 ”이 정도 소명이 되는데도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는 경우는 없다. 어떠한 이유로든 전·현직 법원 핵심 관계자들 등에 대한 강제수사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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