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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유지, 북미관계에 어떻게 작용할까

ⓒKCNA KCNA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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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경제 제재는 실패했다. 왜 2421년 전 아테네가 메가라에 부여한 무역금수 조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을까? 아테네는 메가라 법령을 ‘사소한 조치’라고 여겼지만, 메가라는 ‘적대의 의도’로 읽었다. 압력은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를 생산했다. 위협이 공포를 부르자, 제재가 전쟁으로 이어졌다. 현대 외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제재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재라는 수단은 얼마나 효과적일까?

미국은 비핵화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말하면서, 9월1일부로 북한에 대한 여행금지 조치를 다시 연장했다. 과연 제재 유지는 북-미 관계에 어떻게 작용할까? 우선적으로 제재는 6월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국이 합의한 ‘새로운 관계’와 어울리지 않는다. 제재는 힘으로 해결하는 과거의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재 유지는 ‘관계 정상화’ 합의와 충돌한다. 법률적으로 외교관계와 경제관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만약에 북한과 미국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하고, 우선적으로 연락사무소를 교환한다고 하자. 과연 적성국이며 테러 지원국과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수 있을까? 적으로 규정하는 법률을 유지하면서 관계를 정상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제재를 유지한다’는 말은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일부에서는 유리한 협상을 위해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제재는 북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2017년 하반기에 채택된 유엔의 대북제재가 포괄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심각할 것이다. 제재는 경제건설에 집중하려는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이 맞다. 그래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제재를 유지하면 잃는 것이 있다. 바로 신뢰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신뢰 구축으로 비핵화를 이루자’고 합의한 이유는 ‘힘으로 하는 과거의 접근법’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출발, 새로운 역사를 합의해놓고 왜 실패한 과거를 반복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제재를 유지하면 얻을 것은 과거의 실패고, 잃을 것은 역사의 기회다.

일반적으로 포괄적 제재를 장기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제재는 언제나 인도적 고통을 동반하고, 제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의도와 관계없이 제재 대상국의 정책결정자는 외부 위협을 명분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결집효과’다. 그래서 일반적인 국제정치에서 포괄적 제재는 대체로 ‘스마트 제재’로 전환하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만 거꾸로다. 포괄적 제재는 악화 시기의 산물인데 해결 국면에서도 그대로 유지하자는 주장이 과연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제재가 성공하려면 국제적 협력이 중요한데,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한 이유는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면서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관세보복에서 금융제재로 나아가 기술패권을 둘러싼 대결의 양상은 당분간 출구를 찾기 어렵다. 국제 협력을 부정하면서 제재 공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이 중국과 대결하면서 제재 협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이미 북-중 관계 복원에 따라 유엔 제재의 ‘엄격한 이행’에서 ‘정상적인 이행’으로 전환했다. 북한이 현재와 같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면, 중국은 유엔결의 내용 중 “북한의 행동에 따라 조치를 강화, 수정, 중단,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북한의 뒷문에 틈을 만들었다.
제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제재라는 수단에 집착해서 비핵화라는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교착상황에서 다시 비핵화 협상의 속도를 올리려면 안전보장의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종전선언을 비롯한 평화체제의 일정뿐만 아니라, 관계 정상화의 시간표를 제시해야 본격적인 비핵화의 문을 열 수 있다. 물론 관계 정상화에는 당연히 제재 완화의 시간표도 들어 있어야 한다.

과거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사람들은 자주 ‘시간은 누구 편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보면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선거를 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시간 개념을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시간은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사람의 편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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