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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와 시골 개

ⓒYippa via Getty Images
ⓒhuffpost

한 지인네 부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 마을로 이사를 했다. 부부는 시베리아허스키를 키우고 있는데, 개의 입장에서 보면 시골 마을은 전혀 다른 외계 행성이라는 것이다.

부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개를 산책시켰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 마당이 훤히 보이는 집 그리고 마당 한구석에 놓인 개집과 누렁이들…. 예나 지금이나 시골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개의 눈으로 보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1m도 안 되는 짧은 목줄에 묶인 누렁이들이 앉아 꼬리를 흔들었다. 어떤 백구는 목이 끊어져라 달려들며 짖었다. 같은 개인데도 어떤 개는 귀족처럼 산책하고, 어떤 개는 평생 1m 반경을 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충격은 첫 여름이 다가오면서 찾아왔다. 목줄에 걸린 누렁이들이 하나둘씩 없어졌던 것이다. 초복 날 일주일 전에는 아침저녁으로 파란 포터 트럭이 좁은 마을 길을 다니면서, 쇳소리 같은 ‘개 파세요’ 녹음 방송을 틀었다. 부부의 개가 산책길에 만났던 누렁이들은 1년 단위로 사라졌다.

그의 설명인즉, 이러한 행위가 농촌 경제를 구성하는 일종의 하위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골 장터에서 1만원 주고 누렁이 새끼를 사 와서 일이년 기르면 30만원은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쏠쏠하게 용돈을 마련한다. 그는 개고기 금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여러 미시적 장애가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지난 10일 축산법에서 개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개를 가축으로 인정해 “정부가 식용견 사육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개고기 규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발표다. 그동안 정부는 외국의 비판적 여론과 민족주의적 반박으로 이어지는 논쟁 구조에서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사흘 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세계 각국이 개고기 식용을 안 하는데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받아들여야 하며, (그 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부터 개농장주의 모임인 육견단체와 동물보호단체는 이정미, 김현권 의원 등의 주선으로 관련 협의를 벌여왔다. 개농장 전업 지원과 이행 기간 등에 대해 꽤 구체적인 논의도 오갔다. 다른 편에선 동물단체가 개농장을 인수해 개들을 구조하는 흐름도 거세지고 있다. 문화적 압력과 수익의 감소 등으로 전업을 원하는 개농장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7월 동물자유연대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나온 개 식용 인식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조사의 결론인즉, 많은 사람이 개고기 금지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언행의 불일치는 무엇을 뜻할까? 논리와 감성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를 주도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감성이다. 우리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개고기는 아마 사라질 것이다. 살아남아도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잔재할 것이다. 하지만 단번에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적인 변화는 법에서보다는 문화에서 일어난다. 지난해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시골 개에게 긴 목줄 달아주기 운동을 벌였다. 여름엔 파란 트럭에 넘겨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던 어르신들도 1m짜리 목줄에서 긴 목줄로 바꾸어주었을 것이다. 지인이 사는 시골 마을에서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라도 산책하는 누렁이들이 생겼다고 한다. 세상은 그렇게 바뀐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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