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임대주택등록제,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주고 있지는 않은가?

  • 이준구
  • 입력 2018.08.31 12:03
  • 수정 2018.08.31 12:04
ⓒ뉴스1
ⓒhuffpost

과거 주택가격 급등이 문제될 때마다 정부는 주로 투기억제책으로 이에 대응해 왔습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수요억제 대책만으로는 안 되고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택가격의 상승이 유난히 빠른 서울, 특히 강남지역에서는 신규주택 공급을 크게 늘린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기억제책은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하나의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투기억제책이라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면 지금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대 정부가 투기억제와 투기조장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이 더욱 커졌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주택가격 급등에 놀란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등 강력한 투기억제책을 연이어 도입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주택가격이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강력한 투기억제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아쉬운 것은 그때 정부가 당초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했어야 하는데 경기부양을 위해 역주행의 길로 나섰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도 내가 강하게 비판한 바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의 등뼈를 꺾는 데 그치지 않고 투기억제를 위한 장치를 하나씩 풀어갔습니다. 그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정도까지 갔습니다.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소위 ‘갭투자’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된 것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경기부양에 목을 맨)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부동산경기의 과열이 그리 싫지 않은 현상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부동산투기 조장정책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기껏 잠재웠던 투기심리가 되살아나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경기가 부양되는 것을 싫어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듯, 부동산 투기조장을 통한 경기부양은 우리 사회에 혹독한 대가를 가져온다는 점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이명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끊임없는 비판을 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여러분이 나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주택문제라고 들었습니다. 주택가격 급등은 이 젊은이들을 위시한 수많은 사람들의 내집 마련 꿈을 짓밟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서민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정부라면 경기부양을 위해 투기를 조장하는 얄팍한 수는 쓰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가격 급등을 막아 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계속 밀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하나씩 회복시켜 나가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부동산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상황이 그런 정책으로 대응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투기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여전히 강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요즈음 경기가 나쁘다고 울상이지만, 그것은 서민들의 이야기고 부자들은 여전히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최근에 소득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통계수치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거기서도 최상위 계층의 소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모은 돈을 어디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정기예금 이자가 2%를 넘지 못하고, 펀드투자를 하면 원금까지 날려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시장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시중에 넘쳐나는 부동자금이 이렇게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니까 투기수요가 계속 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자기실현적 예측’(self-fulfilling
prophecy)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데 투기수요가 몰리면 당연히 주택가격이 오를 것이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투기수요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는 상황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를 연상케 하는 절망감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손을 놓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솔직히 말해 나도 어떤 뾰족한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안다면 이렇게 백면서생으로 초야에 묻혀 살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부가 지금 채택하고 있는 정책 중 주택가격 안정의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것 하나가 눈에 띕니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한편으로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늘리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내는 하나의 정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임대주택등록제’라는 것인데, 이 때문에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은 구멍 뚫린 바가지로 물을 푸는 격이 되고 맙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정부가 다주택자로 하여금 임대주택업자로 등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세제상 혜택을 주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신문에서 임대주택업을 활성화시켜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주택자가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건 하지 않건 간에 임대주택의 공급량에는 별 변화가 생길 수 없습니다. 어차피 자신이 살지 않는 집은 남에게 임대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임대주택업자로 등록한 사람이 늘어난다 하더라고 임대주택의 공급량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임대주택으로 공급되는 주택의 양은 언제나 존재하는 주택의 총수에서 자가 거주자 수를 뺀 것과 같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택 총수가 1천만 개인데 자가 거주자 수가 8백만 명이라면 나머지 2백만 개의 주택이 임대주택으로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 2백만 개의 주택은 다주택 보유자들이 갖고 있는 집들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새로 주택이 건설되지 않는 한 임대주택 공급자에게 아무리 많은 세제상 혜택을 준다 해도 임대주택의 공급량은 늘어날 수가 없습니다. 임대주택등록제를 통해 세제상 혜택을 제공하면 임대주택의 공급량이 늘어난다는 주장에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한겨레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뒤늦게 역대 정부가 임대주택등록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임대업등록을 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소득이 노출되게 만든다는 이점이 있을 수 있겠지요. 더욱 중요한 것은 등록된 임대주택의 경우 연간 임대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되고 세입자의 계약갱신 청구권도 보장된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이점이 있다는 근거에서 정부는 임대사업 등록자에게 막대한 세제상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등록된 임대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 장기보유 특별공제 등 다양한 세제상 혜택이 제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재산세와 취득세가 50%에서 100% 감면되는 혜택까지 제공된다는군요.

그런데 이와 같은 특혜가 부동산 투기억제책의 예외조항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맞습니다. 이런 특혜는 다주택자로 하여금 정부의 투기억제책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빚을 수 있습니다. 투기억제책의 핵심은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 부담을 안기는 데 있는데, 그런 특혜로 인해 무력화되는 결과가 빚어지니까요.

앞에서 내가 구멍 뚫린 바가지로 물을 긷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유를 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가 일껏 보유세 중과니 뭐니 하는 투기억제책을 마련해도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이를 손쉽게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이 뚫린 셈이니까요. 임대가격의 안정을 위해 주택가격의 안정이라는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셈입니다.

살지도 않을 주택을 몇 채씩 사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몇 채씩 사재기를 해놓았다가 나중에 판매차익을 올리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집을 팔 때까지 빈 집을 그대로 놓아둘리 없고, 남에게 임대해 줘 수익을 올리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이게 바로 부동산 투기의 예정된 수순입니다.

임대주택등록제는 바로 이와 같은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투기에 따르는 조세 부담을 현저하게 덜어줌으로써 이로부터 얻는 수익률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엄청난 세제상 혜택에 비하면 소득이 노출되고 일정 기간 동안 되팔 수 없다는 제약은 사소한 부담일 뿐입니다. 임대주택등록제는 주택투기의 편리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고, 따라서 투기수요를 한층 더 부추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8년 동안 임대주택을 팔지 못한다는 제약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공급 물량을 현저하게 줄이는 효과까지 가져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임대주택등록제는 수요과 공급의 두 측면에서 모두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임대주택등록제는 임대가격 안정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겁니다. 그러나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또 다른 중차대한 목표에는 분명 걸림돌이 되는 제도입니다. 정부가 이 점을 인식한다면 임대주택 등록자에 대해 제공되는 과도한 세제상 혜택을 대폭 줄일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런 명백한 구멍을 막지 않고는 원하는 만큼의 물을 풀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 것은 주택가격의 안정입니다.
사실 주택가격이 안정되어야 임대가격도 안정될 수 있습니다. 두 가지가 따로 놀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 연동되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임대주택등록제와 관련된 특혜로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주는 것은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당면 목표의 달성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종합부동산세 #갭투자 #주택가격 #부동산 투기 #임대주택등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