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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기려 들지 않아도 되는 행복

2위면 어떻고 3위면 또 어떻고

ⓒhuffpost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점부터 되짚어 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시안 게임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이었다.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숫자로 최초로 일본을 제친 이후 한일 양국 간의 가장 치열한 종합순위 경쟁이 벌어졌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J.D. Cuban via Getty Images

 

당시 언론에서는 연일 메달 숫자를 보도하며 우리나라가 ‘종합 2위’를 수성해야 한다고 외쳤고, 주요 일간지 1면에 매일같이 종합 메달 순위가 게재되곤 했다. 대회 막바지에는 우리나라가 우세한 종목을 따져서 ‘종합 2위 경우의 수’를 따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어려서 잘 몰랐지만.

아마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본을 이겨야 한다’ 는 감정은 역대 최고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80년대 3저 호황과 일본의 장기 불황이 겹치며, 그저 과거에 우리나라를 못살게 굴었고 지금도 우리보다 잘 사는 저 나라와 이제는 한 번 해볼 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독도 영유권 관련 양국간 사이가 험악해지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 등의 언행도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 치열했던 94년 히로시마에서의 여름은 결국 최종적으로는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대회 종료 시점까지는 우리나라가 근소한 종합 2위를 유지했으나, 종료 이후 중국 선수들이 대거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되며 실격당했고, 은메달이 많았던 일본이 금메달을 다수 승계하며 최종 종합 2위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24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일본을 이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제 두 나라 모두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점을 감안하여, 오히려 일본의 이러저러한 선진적인 면모를 드러내 놓고 배우려고 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청년층은 일본의 문화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매니아층도 크게 넓어졌다. 나만 해도 일본 여행을 즐긴다.

 

ⓒChina News Service via Getty Images

 

그리고 2018년 아시안 게임이 열렸다. 현재 대회 일정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일본은 금메달 개수에서 우리나라를 13개 차이로 크게 앞서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나라가 20년 만에 종합 2위를 빼앗기게 생겼다며 난리 치지 않는다. 일본에게 형편없이 지고 있다며 분개하지도 않는다. 금메달 숫자가 적다고 열심히 노력한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94년 히로시마의 기억은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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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일본 #아시안게임 #한국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