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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가격 좀 올려주세요"라고 빌고 싶은 식당이 있다

손님이 주인장을 걱정하는 식당

  • 박세회
  • 입력 2018.08.30 15:46
  • 수정 2018.08.30 17:24
ⓒHuffPost/Sehoi Park

갈 때마다 번번이 실패하는 식당이 있다. 다섯 번을 찾아가면 한두 번 먹는 데 성공하다. 해당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 그릇에 3000원 하는 국숫집이다. 면발이 생명인데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생 반죽을 반죽기에 넣고 여러 번 돌려 압축해 면을 뽑는다. 눈으로만 봐도 그 식감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보통 강화제를 많이 쓴 면발은 자기처럼 빛난다. 배달 중국집의 간짜장 면을 보면 알 수 있다. 겉면에 윤기가 좌르륵 흐른다. 이 집의 면은 자기처럼 빛나지 않고 도기처럼 은은하다. 금방 삶아낸 면은 쫄깃하다기보단 찰지고, 고소하고 감칠맛이 돈다.

육수도 어마어마하다. 멸치 베이스인 건 분명한데, 어떻게 우렸는지 방법을 잘 모르겠다. 수많은 멸치국수를 먹어봤지만, 비교할 수 없다. 끝 맛이 약간 씁쓸한 것을 보면 멸치 내장을 빼지 않고 우렸겠구나! 정도를 짐작할 뿐이다. 육수 준비도 꽤 오래 걸린다. 가끔 그날 처음에 준비한 분량이 다 팔려서 영업 도중에 육수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별수 없이 오돌뼈를 안주로 시켜서 한두 시간 육수가 끓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9시에 영업 시작인데, 그나마도 여는 날보다는 안 여는 날이 많고, 가끔 여는 날이면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이 가게의 주인 할머님은 수년 전부터 몸이 안 좋으셨다. 몇년 전부터 ‘손이 아파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지난 가을부터 겨울에는 한두달 정도 문연 것을 못 봤다. 최근에 다녀와보니 아들과 딸이 각각 대를 이어 가까운 곳에 작은 점포를 열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가격은 아직도 3000원이다.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가훈이라도 있는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일하는 사람을 두지 않고 요리부터 서빙까지 모든 걸 책임지고 있어 눈코 들 새 없이 바쁘다. 친절을 기대하진 않지만, 가끔은 ”치울 때까지 앉지 마세요”, ”밖에서 기다리세요”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도 국수 한그릇을 먹을 수만 있다면 이정도야 참는 게 당연하다. 소주는 내가 꺼내온다. 그럴때마다 소리치고 싶다. ”제발 가격을 좀 화끈하게 올리세요”라고. 

나는 가끔 이 가게에서 국수를 눈앞에 두고 마음속으로 설문조사를 할 때가 있다. Q : ” 당신의 앞에 놓인 우동 국수를 먹는 데 지불할 수 있는 최고 비용은 얼마인가요?” A : ”기다리는 시간이 20분 이하라면, 1만원까지 지불할 생각이 있습니다”. 이게 정말 솔직한 심정이다. 3000원에서 갑자기 1만원은 심하다고 해도, 3000원짜리 국수를 5000원까지, 8000원짜리 오돌뼈를 1만원까지만 올려도 가게에 서버 한 명 씩 두고 두 남매는 각자의 가게에서 요리에만 신경 쓸 수 있지 않을까? 회전율이 높아지면 기다리는 시간도 짧아지고, 손님도 많아져 돈도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백종원 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29일 ‘일본 돈가스의 비극’이라는 기사를 쓰며 이 식당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사는 일본에서 1만5000원은 받아야 할 것 같은 돈가스 정식을 6000~8000원에 팔던 노포들이 인수자를 찾거나 대를 잇지 못하고 망해나간다는 내용이었다. 6000~8000원은 낡았지만 감가상각이 끝난 설비, 대출을 다 갚은 자기 점포, 노인들이 받는 연금이라는 보조 장치가 있었기에 맞출 수 있는 가격이다. 다행히 내가 사랑하는 국숫집은 대를 이었다. 그러나 아직 가격은 3000원이다. 이러다 혹시 힘에 부치면 어쩔 텐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이 고작 이건가 싶어 그만두면 나는 이제 어디서 국수를 먹나? 아들과 딸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글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1만원까지 지불할 생각이 있습니다. 대기 시간이 20분 이하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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