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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사법농단 수사에서 특정 판사들의 영장만 발부해주는 듯하다

'영장 무풍지대'에 있는 판사들이 있다.

‘사법 농단’ 의혹을 받는 전·현직 법관의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선별적’으로 기각되면서, 영장 발부에 ‘법원 카스트’가 작동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말 시작된 검찰의 ‘사법 농단’ 수사에서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 대상을 분류해 보면 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영장 발부 대상은 △전직 법관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 대상 △일부 사법행정(비재판) 담당자 등으로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다.

첫 압수수색 대상이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 내부적으로 대법원 자체 조사 때 ‘사법 농단’ 실무자로 정리한데다, ‘전직’이라 영장 발부가 수월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영장이 발부된 김민수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판사),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판사)도 비교적 ‘손쉬운 발부’ 대상으로 꼽힌다. 현직이지만 대법원 조사 때 여러 차례 ‘문제 인물’로 지목됐고, 이미 재판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부산 법조비리 사건 은폐 의혹을 받는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영장을 기각하면서, 뇌물수수 의혹을 받는 문아무개 전 부산고법 판사(현 변호사)의 영장만 내준 것도 이런 기준이 적용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에서 재판 개입 지시를 재판부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 심경 전 사법지원총괄심의관(현 변호사)도 첫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 발부 대상이 됐다. 반면 가담 정도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현직 판사 30여명의 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한 판사는 “영장이 발부된 이들은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전력 때문에 법원에서도 ‘내놓은 식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법원이 면피용 영장을 내주면서 ‘안방’ 수색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이 비슷한 사안에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2016년 법원 집행관 비리 수사 내용을 행정처에 ‘직보’한 의혹을 받는 나아무개 전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현 판사)의 영장은 내주면서, 억대 금품을 수수한 김수천 부장판사의 수사 상황을 보고한 신광렬·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현 판사)의 영장은 기각했다.

또 다른 판사는 “수석부장은 영장판사들의 인사 평정이나 사건 배당 등 ‘위계’를 이용했을 수 있어 책임이 더 무거운데도, 이들은 제외하고 말단 사법행정 책임자의 영장만 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이나 주심 대법관실 등은 ‘영장 무풍지대’로 통한다. 연구관들은 대법원 재판의 사건 분석, 법리 검토, 판결문 작성 등 실무를 도맡는다. 행정처의 ‘부적절한’ 요구가 실제 대법관들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연구관실에 대한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게 검찰 입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 전교조 재판 등과 관련해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것”이라며 연구관실이나 대법관실의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한 판사는 “연구관실 가담이 드러나면 ‘행정처와 재판부가 분리돼 있다’는 대법원의 명분이 무너질 수 있어 최대한의 방어선을 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내심의 ‘신카스트’를 기준으로 영장을 선별하다 보니, 영장 기각 명분도 궁색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판연구관이 보고서 작성하거나 보고한 사실을 다투지 않을 것”이라며 수사 대상의 태도를 미뤄 짐작하거나,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 보고서에 따라 재판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재판거래는 없다’는 예단을 드러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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