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공화국 기사가 된 한국의 미술사학자

[인터뷰]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마르코 델라 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에게 수훈을 축하받는 김영나 명예교수.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마르코 델라 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에게 수훈을 축하받는 김영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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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김영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이탈리아의 국가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지난 2011년 제정된 ‘오르디네 델라 스텔라 디탈리아Ordine della Stella d’Italia’는 사회, 과학, 군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장르를 통틀어 이탈리아의 대내외 위상을 높이는데 특별히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매년 국가별로 해당 국가의 시민이나, 그 곳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을 통틀어 단 1명에게 영예를 돌리는데, 올해 주인공으로 김영나 명예교수가 선정되면서 이탈리아 공화국의 기사인 까발리에레Cavaliere 칭호를 받게 되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Sergio Mattarella 이탈리아 대통령을 대신해 마르코 델라 세타Marco della Seta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직접 훈장을 전달하는 수훈식은 지난 8월 24일 바르토메우 마리Bartomeu Mari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들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저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마르코 델라 세타 대사는 김영나 명예교수의 기사 훈장 수훈 이유로 한국의 서양미술사 연구 1세대인 명망 높은 학자로서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이탈리아 예술을 한국에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으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 시 기획한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을 통해 20만 명이 넘는 한국인에게 이탈리아의 뿌리가 되는 고대 로마 문명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을 전달한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김영나 명예교수는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25년간 재직한 고(故) 김재원 박사를 부친으로 둔 국내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권위자다. 국내 불교미술사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김리나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명예교수가 친언니로,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를 개척한 학자 가문의 일원이기도 하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부친이 초빙 교수로 있던 미국 뮬렌버그대학교Muhlenberg College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미술사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만 29세 나이에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교수 직을 맡았다. 1995년부터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며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냈다. 도쿄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특히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양미술사 전공자로는 이례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며 국내 박물관 역사에서 최초의 ‘부녀父女 관장’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김영나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Q.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수훈을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있을 때 추진했던 이탈리아와의 국제 교류 덕분인 것 같은데, 함께 일했던 국립중앙박물관 직원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Q. 이번 수훈의 주인공으로 ‘김영나’라는 인물이 선정된 사실에 어떤 의의가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미술사학자나 박물관장, 미술관장이 이탈리아 공화국의 기사 훈장을 받은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이탈리아가 국가 간에 진행하는 문화 교류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세계 각국은 열성적으로 제 문화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는 국가 간의 외교에도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Q. 주요 수훈 이유로 꼽힌 특정 전시회의 성공적인 개최가 다소 이채로운데.

지난 2014년 12월부터 2015년 4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시는 자체 역량으로 꾸린 기획전이었다. 당시 6개월 전에 폼페이를 다룬 또 다른 기획전이 바로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서 열렸었는데, 전시 내용과 디스플레이 측면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아 뿌듯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전시 교류는 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단지 그 소속된 나라에만 국한하지 않고,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는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을 명확히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5년 동안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일변도였던 국제 교류 전시를 고대 로마 문화, 이슬람, 중남미 마야 문명, 체코와 폴란드 등의 동구권 예술, 인도 등 전 지구적으로 확장시킨 바 있다. 이는 내가 서양미술사를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시민으로서 우리 국민들도 세계의 다양한 문명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외국으로 손쉽게 나가 직접 현지 문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그런 여건을 마련하기 힘든 사람들도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국가공로훈장을 받았으니, 명실공히 이탈리아 통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탈리아에는 고대 로마, 고대 에트루리아, 유럽에서 가장 먼저 그 화려한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이 존재하고, 현대에 들어서도 베니스에서는 미술, 건축 비엔날레를 개최하며 밀라노는 패션의 중심지이자, 세계 오페라의 성지인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이 건재하는 등 소위 훌륭한 문화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다. 앞으로 더 깊은 문화 교류가 있길 희망한다.

Q. 서울대 고고미술학과를 정년 퇴임해 현재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혹 우리가 다시 주목할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이라는 교양서를 출판했다. 다들 나를 서양미술사에 대한 글을 쓰는 교수로 기억하는데, 지난 몇 십 년 동안 연구에 매진한 분야는 오히려 한국의 근현대미술사였다. 지금 1945년 이후의 한국 현대 미술사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예정대로 출판되면 작은 관심을 가져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