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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법이란 무엇인가

  • 박진
  • 입력 2018.08.28 10:22
ⓒBCFC via Getty Images
ⓒhuffpost

대학 1학년 때였다. 그 교수님은 10년째 “‘법학이란 무엇인가?’를 신입생들 첫 시험문제로 내왔다”고 선배들이 알려줬다. 답안을 달달 외워 시험장에 들어갔다. 당연히 ‘ㅂ’으로 시작되는 판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칠판에 쓴 초성이 ‘ㄷ’이었다.

교실은 술렁였다. 완성된 문장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시험문제를 알려준다며 으스대던 ‘선배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거나 ‘ㄷ’으로 시작하는 문제들을 재빠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문장은 이랬다. “도대체 법학이란 무엇인가?” 안도의 한숨과 어이없다는 탄식이 동시에 터졌다.

집시법 등을 어겨 재판을 받기도 했고, 민사소송의 원고가 되거나 고소·고발 사건의 고발인이 된 경우도 허다하다. 법안을 제안하거나 개정하고 폐지하자는 것이 주된 일 중 하나다. 다른 직업인으로 살았다면 법 없이 살 사람이라 자부하는데, 하는 일이 험하다 보니 법과 가깝다. 그래서 질문이 오랫동안 화두처럼 맴돌았다. “도대체 법이란 무엇인가?”

즐겨 보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거기서도 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온다. 주인공은 법을 기준으로 세상의 위아래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세상을 나누는 기준이다. 이 정도를 보통 수준이라고 치면, 법이 무섭다… 그럼 당신은 여기 밑에 있고 법이 우습다… 그럼 당신은 저기 위에 계시는 거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이야기와 같다.

대법원이 청와대와 재판 협의를 하고, 헌법재판소 기밀을 빼냈다는 믿기 힘든 사법농단이 알려졌다. 연루된 현직 판사들은 검찰에 출석해 최근 휴대전화를 교체했거나 분실했고 업무일지 또한 파쇄해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다. 7월27일 기각 사유에는 ‘법원행정처의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대목이 있다. 법원행정처가 알아서 자료를 제출할 텐데, 영장을 청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제 식구를 믿고 신뢰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법원이 다른 어떤 기관에 이처럼 관용적이었는지 알 수 없다. 자체 정화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보면 ‘현직 판사 13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지만 각종 ‘재판거래’ 의혹은 징계 회부 사유에서 제외했다.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징계 절차도 잠정 중단했다’는 보도를 만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의지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3권 분립이라는 공화국의 토대를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재판거래의 엄연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인데도 책임지는 자는 한명도 없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오늘도 법원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법 없이 살 만한 사람들도 법원에 왔을 것이다. 재판 결과로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살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 KTX 여성 승무원, 쌍용차 30번째 희생자가 그렇다. 재판거래의 대상이었던 전교조 조합원들과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오늘도 농성 중이다.

그러니 법원은 법을 다루는 곳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곳이다. 판결문 한장은 누군가의 운명의 궤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법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기 때문이다. 법관들은 지금, 세상의 어떤 기준 밑에서 법을 무서워하며 살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눈치채야 한다.

그 시절 어떤 답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법에 대한 경외심을 장황하게 썼을 것이다. 이제는 성경 말씀을 쓰고 나오지 않을까. “저주받으라, 법률가여. 너희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았다.”(누가복음 11장 52절)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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