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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 관계하지 않는 관계들

'서치'는 관계의 허상을 헤매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huffpost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스마트폰은 인간의 생활 습성 자체를 온전히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게끔 길들여버렸고, SNS는 스마트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 계의 그물망을 제공했다. 일종의 공생 관계나 다름없다. 관계돼 있지만 그 누구도 관계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 영화 <서치>는 그러한 관계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의 공포와 통증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서치>는 사라진 딸을 추적하는 한 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데이비드(존 조)는 집안의 가장이다. 아내 파멜라(사라 손)가 암 투병 끝에 사망해 혼자서 고등학 생 딸 마고(미셸 라)를 돌본다. 그런 어느 날 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전 7시 1분에 보낸 메시지는 오후 3시까지 미확인 상태였다. 딸은 묵묵부답이었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오후 3시쯤 딸이 피아노 레슨을 받을 테니 피아노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딸을 바꿔달라 할 참이었다. 하지만 딸은 거기 없었다. 그날만 없는 게 아니었다. 6개월 전부터 이미 피아노 레슨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당혹스러웠다.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던 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매주 딸에게 준 레슨비의 행방도 알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빨리 딸의 행방을 찾아야만 했다. 

딸의 행방을 찾는 데이비드가 마주하는 건 의외로 자신이 딸을 전혀 모르는 아빠였다는 진실이다. 딸의 SNS 계정에 접속해 우여곡절 끝에 비공개로 된 SNS들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그가 마주치는 건 자신의 딸이 생각보다 외롭고 우울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친구가 별로 없고, 학교에서도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아버지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웹상에서 만난 알 수 없는 이에게 손쉽게 털어낸다는 사실이었다. 데이비드는 막연히 마고가 밝고 모범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기만 할 뿐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고민을 물어보는 법을 몰랐다. 심지어 마고의 친구들을 전혀 몰랐던 그는 오래전에 죽은 아내 계정으로 로그인된 모니터 속에서 마고의 친구들에 관한 정보를 자세하게 정리해놓은 파일을 발견했다. 데이비드는 이를 통해 세심했던 엄마의 상실감을 채워주지 못한 자신의 무심함을 깨닫게 된다.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시작된 과정이 오히려 아빠로서의 무심한 세월을 되짚게 되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딸을 찾는 아빠의 이야기라고 하면 단순히 <테이큰> 같은 영화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서치>는 실험적인 발상으로 장르적 관성을 완벽하게 뛰어넘은 작품이면서도, 생소한 형식성을 통해 장르적 흥미는 고스란히 거머쥔 작품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 희박하다. 관객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스크린에 미러링된 듯한 맥북 모니터를 보고 있어야 한다.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니터 화면으로 구성된 스릴러물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와 형식적으로는 유사하다. 실제로 두 작품은 <원티드>의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의 제작사인 ‘바젤레브스 프로덕션(Bazelevs Production)’에서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언프렌디드: 친구삭제>가 장르적 서스펜스를 강화하기 위해 과장된 연출을 동원한 것과 달리 <서치>는 보다 실제적인 풍경과 이미지를 나열함으로써 관객의 현실 감각을 건드리는 데 집중한다. 스크린이 누군가의 맥북 모니터를 중계하고 있고, 어쩌다 보니 그것이 딸을 찾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 모니터를 중계하는 듯한 스크린을 통해 관객이 대면하게 되는 건 어느 한 가족의 역사와 일상, 그리고 관계의 진실과 세계의 이면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의 진실이란 딸의 실종과 연계된 외형적 사건의 진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딸의 행방을 쫓는 아버지가 뒤늦게 깨닫게 되는 내면적 진실이기도 하다. 딸이 남긴 디지털 흔적을 수집하고 파헤치며 딸을 추적해나가는 아버지는 의외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한편 <서치>의 독특한 형식성은 수많은 이들과 간편하게 연결될 수 있지만 그래서 되레 누구와도 깊게 닿을 수 없는, SNS 시대의 친구 맺기가 부추기는 허무한 확장성을 환기시키는 현실의 반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데이비드는 마고의 SNS 계정을 추적하며 딸의 친구로 등록돼 있는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근황을 묻지만 그 누구도 마고의 친구라 여길 수 없다는 공허한 결론만이 거듭될 뿐이다. <서치>의 영화적 형식성이 흥미로운 건 바로 그런 단편적이고 얕은 관계들이 맥북 모니터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딸의 실종 사건과 연관이 있는 관계를 하나씩 추적해나갈수록 되레 제대로 된 관계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예감을 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딸의 삶에 깊게 관여할수록 딸의 행적이 아니라 치부를 노출하게 된다는 난처함에 봉착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성장해버린 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치>는 타인의 동경을 받고 싶어서, 타인을 동경하게 돼서, 덧없는 불행에 시달리는 SNS 시대의 관음증을 영화적 형식성으로 반영하는 데 성공한 작품처럼 보인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중계되는 영화의 모든 순간은 결국 필터링된 세상을 전시하고, 보다 행복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타인의 선망을 받으라 부추기는 SNS의 욕망을 형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구체화시킨 결과물처럼 보인다. 실제 인물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관찰하듯 촬영한 것이 아니라 웹캠을 통해 포착한 인물의 행동과 일상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노출함으로써 이 모든 극적인 상황이 실제 상황의 기록처럼 여겨지게끔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SNS 같은 윈도 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위장된 자아들의 세계관이 마치 자연스러운 현실로 인식되는 것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니까 실제처럼 위장한 허구의 리얼리즘으로 점철된 현실 세계를 체감하게 만드는 영화적 체험인 셈이다. 

<서치>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연출적 형식성을 주목할 만한 작품이지만 그러한 형식성이 보편적인 울림으로 와닿는 감정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높게 평가할 만하다. 장르적으로 스릴러물의 긴장감을 취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족 드라마의 정서를 바탕에 두고 있으며, 이러한 정서적 안정감이 바탕이 됨으로써 파격적인 형식성을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의 보편적 정서에 특이성을 더한 형식적 재미로 와 닿는다. 또한 겹겹이 쌓인 미스터리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함으로써 극에 대한 감상적 몰입을 이끌어낸 뒤 한 꺼풀씩 풀어내며 극적인 반전의 쾌감을 거듭해나가는 방식도 탁월하다. 다만 극 후반부의 반전은 지나치게 인위적인 결말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극의 전반적인 감상을 해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업>의 오프닝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몽타주 기법을 동원한 점프컷 형식의 오프닝 시퀀스 또한 인상적이다. 세 명의 가족이 암 투병 끝에 죽음을 맞이한 아내로 인해 두 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을 마우스 커서의 이동과 클릭 몇 차례로 구성해내는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리듬감을 주는 동시에 극적인 페이소스까지 더하며, 단편영화에 버금가는 기승전결의 재미가 뚜렷하면서도 끝내 아련하다. 이는 그 이후의 러닝타임에도 인물들의 상실과 결핍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 주요한 동력 노릇을 하는 노스탤지어로 각인된다. 

<서치>의 프로듀서를 맡은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2012년 스카이프 통화를 하고 난 뒤 상대가 컴퓨터 화면 실시간 공유 기능을 끄지 않은 덕분에 그가 인터넷을 통해 하는 모든 것을 보게 됐다. 인터넷 서핑, SNS 접속을 비롯해 메시지를 보낼 때 문장을 쓰고 지우는 모습까지. 이런 관찰을 통해 <서치>의 기본적인 형식을 구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생활 패턴을 구경한다는 흥미 외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태도를 선택하고 망설이는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함으로써 영화의 색다른 지향점을 확보했다. 그리고 구글 글라스를 이용해 단편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는 아니쉬 차간티를 통해 실험적인 형식성을 실현시킬 기회를 마련하고 감동을 새겨 넣을 틀을 마련했다. 또한 존 조를 비롯한 한국계 배우들로 구성된 주연배우들은 영화의 특이성을 더욱 특별하게 수식하는 인상이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로 둘러싸인 삶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서치>가 흥미로운 건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토대로 남다른 형식성과 보편적인 감수성을 함께 설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사적 흥미와 장르적 재미를 보장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형식적 시도를 꾀함으로써 독창적인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영화적 체험이다. 영리하고 탁월한 파격과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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