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8월 27일 13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27일 14시 10분 KST

존 매케인의 '품격'을 보여준 유명한 연설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정치가 품격을 잃어가는 시대, 다시 봐도 좋은 명장면.

Youtube/CNN

이건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정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2008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연설집회에서 한 매케인 지지자는 경쟁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그는 ‘아랍인’이라고 주장했다.

매케인은 그가 말을 마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마이크를 빼앗았으며, 가장 최근에 치러진 대선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을 법한 행동을 했다. 정중하게 자신의 경쟁자를 변호한 것이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품위있고 가정적인 사람이자 (미국) 시민이고요, 단지 저는 어쩌다보니 그와 근본적 이슈들에 있어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또 그게 바로 이번 선거운동의 핵심입니다.” 매케인의 이 말은 미네소타에 모인 다른 청중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 짧은 대화는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던, 매케인의 빛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지지자가 거짓 주장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매케인은 잘못을 지적했고,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에 대해 품위를 지켰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히 나온 장면이 아니었다.

같은 집회에서 또다른 지지자는 오바마가 ”국내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한다”고 말하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인들은 공포에 떨 것이라고 말했다. 매케인은 오바마가 ”품위있는 사람”이라며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미국인들이 겁에 질릴 필요는 없다고 말해 지지자들의 야유를 받았다.

그날 매케인은 군 복무 시절과 정치 인생을 거치며 보여줬던 자신의 인격과 예의를 그대로 선보였다. 그날 연설에서 나온 장면은 매케인이 별세하기 전에도 주기적으로 다시 회자되곤 했다. 매케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다.

트럼프는 경쟁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지지자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으로 짧은 정치 경력에서 유명세를 얻었다. 트럼프는 매케인에 대해 ”(그는) 영웅이 아니다. 포로가 됐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연설 도중에는 고문 후유증으로 장애를 입은 매케인의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흉내내며 조롱하기도 했다.

25일 매케인이 별세하자 이 장면이 다시 공유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테파니 루흘 MSNBC 앵커 : 오늘 밤, 우리는 진정한 리더를 기억한다. 그의 품위, 용기, 휴머니티가 우리 모두의 지표가 될 것이다. 오늘 밤, 나는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쟁자를 변호한 한 대선후보를 기억한다. 위대한 미국인 존 매케인이 ‘오바마는 아랍인’ 질문을 반박하다

나는 존 매케인과 정치적으로는 정반대다.

그러나

그가 오바마는 무슬림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가 오바마케어를 지키기 위해 당론을 거스르며 표를 던졌을 때,

그가 자신의 당에 동조해 부패한 대통령을 지키기를 거부했을 때,

그는 당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게 바로 애국자다! 명복을 빈다.

정치적 부정과 비겁이 횡행하는 범인(凡人)들의 시대에, 존 매케인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원칙은 고문에서 석방되는 걸 거부했고, 오바마에 대한 끔찍한 거짓 주장을 공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그의 원칙은 대통령직에 대한 유혹 속에서도 지켜졌다.

 

그럼에도 그날 연설과 오바마를 겨냥한 비방이 등장하게 된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매케인 선거캠프와 그의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였던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 사라 페일린은 오바마를 겨냥한 ‘색깔론‘을 제기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국방부와 국회 등을 겨냥한 테러를 주도한 좌파 급진단체 ‘웨더언더그라운드(WUO)’의 윌리엄 에어스와 오마바의 친분을 과장해 부각시킨 것. 오바마에 반대하는 한 단체는 오바마와 에어스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에어스의 단체가 테러를 벌이던 그 시절 오바마는 어린이였다. 

Chip Somodevilla via Getty Images
2009년 6월2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여야 회동에서 만난 존 매케인(공화당, 애리조나) 상원의원과 대화하는 모습.

 

페일린은 연설에서 격렬한 분노를 조장하기도 했으며, 청중들 중 일부는 오바마가 언급될 때마다 ”그를 죽여라”, ”반역자”, ”테러리스트”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매케인-페일린 지지집회에서 발언에 나선 몇몇 사람들은 오바마의 미들네임 ”후세인”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는 오바마의 애국심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분명한 시도였으며, 그의 출생에 관한 음모론에 기름을 부은 행동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였던 프랭크 리치는 당시 집회 분위기를 전하며 매케인이 연설 도중 ”청중들에게 ‘진짜 버락 오바마는 누구인가?라고 묻자 누군가 ‘테러리스트’라고 소리를 지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적었다.

″악의적인 ‘오바마는 무슬림’이라는 이메일에 동조해 (청중들을) 교묘하게 속이는 이 말은 에이어의 베트남전 시절 (반전反戰) 테러를 오늘날의 급진 이슬람 테러와 같은 것으로 둔갑시켜 맹비난했다.”

이후 매케인 선거캠프는 미네소타 집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부적절한 레토릭”으로 규정하며 규탄했다.

훗날 매케인은 당시 ”독립적인 민주당원”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코네티컷 상원의원 조 리버만 대신 페일린을 러닝 메이트로 고른 걸 후회한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Rick Wilking / Reuters
2008년 11월4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이 패배 수락 연설을 하는 모습. 

 

2008년 대선에서 경쟁을 벌였음에도 이후 매케인과 오바마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선거 당일 밤 패배 수락 연설에서 매케인은 오바마를 향한 지지자들의 야유를 중단시키며 오바마가 ”많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는 점에 대해 그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매케인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오바마가 조사를 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케인 별세 이후 낸 성명에서 오바마는 매케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우리 중 존 매케인이 겪었던 것과 같은 고통에 처하거나 그가 보여준 것과 같은 용기를 보일 것을 요구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개인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했던 그의 용기를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이렇게 적었다. ”존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줬다.”

매케인은 2017년 CNN의 진행자 제이크 태퍼로부터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늘 그랬듯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항상 옳지도 않았고, 실수도 여러 번 했지만 국가에 명예롭게 이바지한 사람.”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The Real Story Behind John McCain’s Famous Campaign Rally Momen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