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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폼페이오의 '4차 북한 방문'을 취소했을까?

고도의 협상 전략?

  • 허완
  • 입력 2018.08.27 09:27
  • 수정 2018.08.27 09:29
ⓒLeah Millis / Reut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8월 말 방북을 갑작스레 취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일정이 다시 안갯속에 빠졌다. 그가 ‘북한의 비핵화 부족’과 ‘중국의 비협조’를 탓하며 평양행 비행기를 멈춰 세운 만큼, 특별한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정체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과 주변국들이 장기 교착의 들머리에서 재반전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23일(현지시각) 방북 계획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취소한 것은 ‘빈손 방북’ 우려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북-미가 핵무기·시설 신고와 종전선언을 낮은 수준에서라도 맞교환하는 합의를 이뤄낼지를 놓고 기대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비핵화 조처를 취했다고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을 못 들은 것으로 보인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핵 신고를 어떻게 할지를 놓고 세부 협의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의 소리>(VOA)에 “창피를 당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피하려는” 결정으로 본다고 말했다. ‘러시아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악재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까지 작용했을 수 있다. 

ⓒKevin Lamarque / Reuters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그는 “우리의 무역에 관한 훨씬 더 강경한 입장 때문에 중국이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지 않다”며 중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또 “폼페이오 장관은 가까운 미래에 북한에 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과의 무역 관계가 해결된 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반도 문제에 패권 경쟁 차원의 ‘중국 때리기’까지 결부시킨 것이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계획을 발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취소하기까지 하루 동안 어떤 ‘사정 변경’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핵심 참모들과의 논의 결과라고 밝혔다. 백악관의 댄 스커비노 소셜미디어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를 밝힌 24일 오후 트위터에 “대통령이 오늘 오후 오벌오피스에서 북한에 관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며 4장의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앞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장관,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앉은 모습이었다. 판문점 북-미 실무회담에 나섰던 성 김 주필리핀 대사와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도 참석했다. 해외 출장 중인 ‘매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스피커폰으로 동참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글을 올릴 때에도 폼페이오 장관이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미국 행정부 차원의 단단한 입장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POOL New / Reuters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끌어내고, 북-중 연대 고리를 약화시키고, 북한에 무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국내적으로 전달하는 ‘일석삼조’의 “고도의 협상술”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계획 발표가 이미 취소를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까지 있다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시켰다가 원상 복귀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을 갑자기 무기한 연기하는 식의 압박 전술을 꺼냈다는 얘기다.

폼페이오 장관의 ‘성공적 방북’을 전제로 외교가에서 전망해온 ‘9월 종전선언’ 시나리오는 힘이 빠지게 됐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부진의 책임을 중국에 돌렸다는 점에서 미-중 관계까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6일 “미국의 주장은 기본 사실에 위배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루캉 외교부 대변인)며 강하게 반발했다.

ⓒPOOL New / Reuters

 

남북관계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통일부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예정대로 이번주에 개소하겠다고 밝혔으나, 한국에 직간접적으로 ‘속도 조절’을 요구해온 미국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9월 3차 정상회담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북·미의 긍정적 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남북 정상회담 성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전의 희망이 없진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 곧 그를 만나기를 고대한다”며 북-미 대화를 살려갈 의지를 밝혔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과 북한이 대화의 판 자체를 깨려 한다는 신호는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분간 정체기 속에서도 뭍밑으로는 대화 재개 움직임이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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