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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5일 14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10일 13시 17분 KST

미래의 디자인과 건축이 직면할 몇 가지 증후들

수확 가속 시대의 창작자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Daft 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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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가속의 법칙The Law of Accelerating Returns’이란 말이 있다. 구글에서 인공지능AI 개발에 여생을 쏟아붓고 있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주창한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는 기술 발전이 선형에서 기하급수적인 양상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수확 가속 법칙에 따르면 기술, 특히 인공 지능의 지적 능력이 인간 지능의 총합을 뛰어넘는 시점이 도래해 더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지는데 이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한다. 특이점이 과연 도래할련지, 대체 언제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보급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디자인과 건축에 어떤 파급을 불러올 것인가. 그리고 근미래의 창작자가 놓일 상황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기술의 발전은 창작 도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대중에게 알려진 미래 기술 중 3D 프린팅은 가장 친근한 예일 것이다. 인조물의 발생 양식이 지금껏 외부에서 내부로 수렴하는 관점을 보인 반면, 안에서 밖으로 적층하며 물리적 형태를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은 모자, 옷, 액세서리 등 소품부터 의자 같은 작은 형태의 창작물을 넘어 휴먼 스케일을 벗어난 건축-장소의 제약을 넘은 경제적 효율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실험-에까지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유기적 요소를 재료 삼아 만드는 음식과 인공 장기 등에 관심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찾아보길 권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내적 변화는 바로 알고리즘의 활용이다. 컴퓨터 연산의 비약적인 발달과 기술 공학의 진보로 인해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원하는 형상-복잡한 연산을 거쳐 각종 변수가 적용된 3D 그래픽 작업-을 모니터에서 시각적으로 정확히 확인하는 작업이 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초기의 러프한 아이디어와 물리적 공간에 만들어지는 최종 작업의 간격은 극적으로 좁혀지고 있다.

건축에서는 이미 대중화되기 시작한 ‘빌딩 정보 모델링BIM’을 비롯해 ‘파라메트릭 디자인parametric design’이 대표적이다. 보통 ‘비정형 건축’으로 인식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원형의 아이디어-단순하게 심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초기 스케치가 아니라, 건물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고유의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 한 것-를 상정하고, 건물과 관련한 수많은 데이터를 변수로 만들어 알고리즘과 유기적으로 연결한 후 무한히 증식하는 대안을 기반으로 최적의 결과물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나 중국 하얼빈의 오페라 하우스를 만든 MAD 건축사무소의 마얀송Ma Yansong을 구글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BIM이나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가상의 세계에 디지털 정보로 구현한 건축물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는 곧 향후 정보처리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HMD를 끼고 디지털 건축을 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건축은 물리적 구현이 선행되는 업종의 필수불가결한 특성 때문에 경직된 제작 방식을 고수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 건축 세계에서는 실제 건물과 유사한 재료와 공간적 특징을 가진 가상의 장소를 마련한 후, 이에 맞는 날씨, 바람, 빛을 상정하고 동선을 따라 체험할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통합적인 피드백을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아직 짓지 않은 구조물을 가상의 완성본으로 미리 경험하는 기회는 건축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런 알고리즘을 활용한 ‘컴퓨테이션 디자인computation design’의 핵심은 바로 AI다. 높은 수준의 연산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뇌의 뉴런이 대응하는 방식을 학습해 지식을 축적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으로 날개를 단 AI는 이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자부하던 창작 분야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현재 AI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바흐의 음악을 분석해 바흐 풍의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며, 반 고흐의 화풍을 연습해 그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물을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딥 러닝을 기반으로 자가 학습하는 AI의 진화 과정은 과거 예술 분야에서 만연하던 도제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화가 지망생이 대가의 그림체와 붓 터치를 베끼고, 연습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화법을 도출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식을 AI의 행동 양식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히려 AI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자가 학습을 시도할 수 있어 반복적이거나 단순한 창작은 자동화 기능으로 순식간에 해결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딥 러닝으로 진보한 AI는 기존의 디자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요즘 화두가 되는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이 단적인 예다. 특정 회사나 기관의 홈페이지를 들어갈 때마다 매번 무작위적으로 달라지는 로고를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무수히 변화하는 로고는 기존 종이나 사이니지처럼 변하지 않는 확정적 디스플레이에 기반을 둔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문법을 깨부셨다. 게다가 이제 생성적 디자인은 디지털 디스플레이에서 계속 변하는 서체나 이미지 등 시각적 다양성을 표현하는 소극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디자인의 뼈대인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창작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AI를 활용한 웹 디자인 제작 사이트는 기본 디자인 요소(이미지, 텍스트)와 목적, 톤앤매너를 분석한 정보 구조를 기반으로 맞춤형 템플릿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있다. 산업 디자인 영역에서는 오토데스크가 7년 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프로그램인 ‘드림캐쳐Dreamcatcher’ 때문에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기본 골격을 잡은 후 변수를 입력하면 AI가 공학적 구조와 경제적 효율성, 두 가지 모두 만족시키는 중간 분석물을 내놓는다.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치 못한 디자인까지 제시함으로써 제작 원가를 낮추고 더 안전하면서도 심미적으로 이채로운 결과를 도출하는 상황이 이미 시작됐다.

큰 줄기에 속하는 소소한 작업은 스스로 처리하고, 창작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구조까지 알아서 제시하는 AI 창작의 시대에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올해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에서는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창의성의 산물인 광고 산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대담을 나눈 것이다. 결론은 AI가 아이디어와 콘셉트의 도출 속도를 높이고 창작자의 주체성과 스토리텔링 파워를 강화하면서 결과적으로 광고 제작 과정의 명료성을 크게 개선시킨다는 이야기가 골자였다.

미국의 유력 매체인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 앞으로 다가올 디자인은 한 마디로 ‘하이브리드 디자인hybrid design’이다. AI와 인간은 역동적인 상호 작용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낸다. 곧 ‘컴퓨터 창의력computational creativity’이 앞으로 펼쳐질 창작 과정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디자이너와 건축 뿐만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모든 창작 직군의 역할이 다층적인 변화를 겪는 일은 명약관화하다.

앞서 밝혔듯이 앞으로 알고리즘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창작물의 구조와 기능, 형태는 모두 알고리즘의 영향력 아래에서 탄생할 것이다. 하이브리드 디자인 시대가 도래하면 AI라는 비사물 지능의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관리하며, 더 나아가 교육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핵심 역할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크리에이터에서 큐레이터, 그리고 에듀케이터로 직무 역할이 확장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예시는 실체를 가진 대상이 마주할 변화상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실제 미래 사회에서는 디자인과 건축에 미칠 가상 현실의 영향력이 더욱 거대해질 것이다. 디지털 데이터로 구현된 가상 세계는 우주처럼 끝이 없다. 인간 감각의 중추를 건드리며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흐릿한 경계 속에서 인간의 의식은 신체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가상 현실이 주는 사용자 경험은 감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한계가 없다.

게다가 가상 현실이 물리적 장소와 결합한다면 그 층위는 훨씬 복잡해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가상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 현실의 실제성과 더불어 현실과 연결되는 관계성의 단단한 구축이다. 창작자에게 가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이 주어질 것이 자명한 이유다. 결국 미래의 디자인과 건축은 도시라는 물리적인 장소에서 필수불가결한 미적, 경험적 기능체이자 동시에 우주처럼 거대한 가상 세계 속 비물리적 경험의 발현체로서 인간의 삶에 미치는 지분율을 높일 것이다.

그런데 기술 발전으로 편리함이 증대하고, 자동화로 인해 여가 시간이 늘어나는 이상적인 미래가 도래했을 때 모든 사람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의미를 찾는 존재다. 다양한 개인적 신념을 기반으로 경험과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존재 이유를 찾길 원한다. 모든 것이 풍요로울 것만 같은 미래 사회가 꼭 절대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왜 사는지’에 대한 정신적인 고양감을 충족시킬 때 인간은 비로소 상대적이나마 만족감을 얻는다.

결국 AI 시대의 창작은 휴머니티humanity로 귀결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진리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국제 학술제, <슈퍼휴머니티: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디자인하는가>는 디자인과 건축의 관점에서 다뤄야 할 미래의 인간상을 과학자, 미학자, 건축가, 역사가의 입으로 듣는 기회였다. 3회 째를 맞은 <2016 이스탄불 디자인 비엔날레>의 주제는 ‘우리는 인간인가? 종의 디자인: 2초, 2일, 2년, 200년, 20만 년’이었다. 베아트리츠 콜로미나Beatriz Colomina와 마크 위글리Mark Wigley라는 저명한 건축 이론가가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는데 그들은 “디자인은 언제나 인간의 디자인이었으며 인간을 위한 서비스 형태로 존재해왔다”며 기술이 발전해도 디자인의 본령은 휴머니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래의 창작자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변화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창작자라는 본연의 역할 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층위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복합적으로 부응해야 할 것이다. 환영의 세계에서 현실의 아날로그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인간과 기계 사이에 인간의 특수성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 아래 휴머니티를 자극하고 대중이 인지할 수 있는 경험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는 실체로서의 건축과 공간, 혹은 사물로서의 디자인을 통해 답보될 수도 있으며, 엔터테인먼트의 껍질을 쓰고 디지털 세계에서 통용되는 환영적 교육의 일환으로 커뮤니티에 접근할 수도 있다. 혹은 즉각적인 피드백과 관계망의 확대를 통해 창작자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어 대중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넘실거리는 와중에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기술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이다.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소중한 부분을 되돌아보게 하는 행위다. 예술가는 이를 표현함으로써 우리 삶에 이바지한다. 새로운 표현의 문을 활짝 여는 기술의 발전에 맞춰 예술가 또한 새로운 기술을 포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센터 독일 ZKM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던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말은 수확 가속의 창작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한 창작자가 갖춰야 하는 미래적 태도에 대해 비범한 힌트를 준다.

또한 미국의 작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문학은 자유다>에서 웅변한 말을 적어본다. “작가의 일은 사람을 자유케하고 그들을 흔드는 것이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을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짧은 어구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창작자에게 제 미래를 준비하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 이 글은 미술 전문지 <PUBLIC ART> 8월호 특집에 기고한 버전을 디자인, 건축 중심으로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