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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검찰은 '현직 대통령' 트럼프를 기소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운명은?

  • 허완
  • 입력 2018.08.23 18:11
  • 수정 2018.08.23 18:15
2016년 9월21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와 그의 개인 변호인 마이클 코언의 모습. 
2016년 9월21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와 그의 개인 변호인 마이클 코언의 모습.  ⓒJonathan Ernst / Reuters

한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이 죄를 저질렀다고 실토했으며 스스로 관련 혐의를 인정했다고 검사에게 말할 경우, 그 의뢰인에 대한 기소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제 그 일반적 원칙에 예외가 있는지 곧 확인하게 될 예정이다. 그 의뢰인이 바로 미국 대통령인 경우라면 말이다. (뉴욕타임스 8월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인을 지내는 동안 ‘집사’ 역할을 했던 마이클 코언이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자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소 가능성을 검토하며 이렇게 적었다. 

코언은 트럼프 당시 후보의 지시에 따라 2016년 대선 직전, 트럼프와의 과거 불륜 관계를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입막음 돈’을 자신이 대신 지불했다고 시인했다. 불륜 스캔들이 폭로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주요 미국 언론들은 취임 2년째인 트럼프 대통령이 최악의 궁지에 몰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코언이 검찰과 양형거래(플리 바기닝)를 맺고 진술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 역시 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고 NYT는 전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회가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도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스테파니 클리포드(예명 스토미 대니얼스)와 도널드 트럼프.
스테파니 클리포드(예명 스토미 대니얼스)와 도널드 트럼프. ⓒREUTERS FILE PHOTO / Reuters

 

트럼프의 불륜

우선 본격적으로 법적 논쟁에 휩싸인 ‘입막음 돈’에 대해 살펴보자. 

모든 건 트럼프가 훗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2006년의 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멜라니아 트럼프가 아들을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해 7월, 트럼프는 타호 호수에서 열린 ‘아메리칸 센츄리 챔피언십’ 골프 대회에서 스토미 대니얼스(본명 스테파니 클리포드)를 만났다.

당시 대니얼스는 포르노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였고, 트럼프는 유명 TV쇼 ‘어프렌티스’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데이트를 했고, 성관계도 가졌다. 그보다 한 달 전인 2006년 6월, 트럼프는 ‘어프렌티스’ 촬영장에서 만난 당시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과도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10년이 흐른 2016년 가을, 트럼프는 괴짜 같은 리얼리티쇼 진행자가 아니라 미국 공화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대니얼스는 과거 불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판매’하기로 결심했다. 유명 인사의 성추문에 대한 스토리를 특정 매체에 독점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버는 건 미국에서 꽤 흔한 일이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다. 미국 최대의 타블로이드 매체들을 소유한 아메리칸 미디어(American Media Inc.; AMI)의 회장이자 자신의 오랜 친구 데이비드 페커다. NYT는 법원에 제출된 코언의 양형거래 관련 문건을 인용해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입막음 돈’ 지불 과정의 구체적 과정을 소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코언은 AMI 회장 페커와 2015년 8월부터 연락을 주고 받았다. 페커는 ”(트럼프의) 여자 관계”에 대해 트럼프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들에 대응하는 걸 돕겠다”고 합의했다. 어떻게? ”(트럼프의) 선거캠프가 그런 이야기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돕고, 그것들을 구입해 출판되지 않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메리칸 미디어(AMI) 회장 데이비드 페커(가운데)가 '플레이보이 50주년 파티'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아메리칸 미디어(AMI) 회장 데이비드 페커(가운데)가 '플레이보이 50주년 파티'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Joe Kohen via Getty Images

 

검찰은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후보로 확정되어가던 2016년 6월경 맥도걸이 트럼프와의 불륜 관계를 판매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파악했다. 맥도걸은 다른 전직 플레이보이 모델이 트위터에 자신과 트럼프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흘린 것을 보고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야기가 퍼질 것을 우려했다.

그럴 바에는 이 이야기를 판매해 돈도 버는 게 좋지 않냐는 지인들의 말에 설득된 맥도걸은 타블로이드 매체를 접촉하기로 결정하고 로스앤젤레스의 셀럽 전문 변호사 키스 데이비드슨을 선임했다. 그는 의뢰인의 정보를 판매하거나 의뢰인의 정보가 출판되는 걸 막는 사건을 여러번 담당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맥도걸과 데이비드슨이 AMI에 접촉해오자 페커 회장과 편집 이사 딜런 하워드는 곧바로 이 사실을 코언에게 알렸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걸 막기 위해” 이 이야기를 구입해 은폐할 것을 코언이 AMI에 지시했다는 점이다. 

대니얼스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2016년 가을, 트럼프의 음담패설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된 직후 그는 트럼프와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판매하는 문제를 놓고 AMI와 접촉했다. 이 사실은 곧바로 코언에게 통보됐으며, 하워드와 페커는 코언을 대니얼스의 변호인과 연결시켜주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NYT는 수정헌법 1조에 따르면 언론사가 선거 후보자 및 캠프와 보도 방향 등을 협의하는 행위는 허용되지만 선거 캠프와 협의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돈을 지출하는 건 불법으로 간주된다고 전했다. 이는 정당한 편집권 행사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법의 경계를 넘게 된다는 설명이다. 

ⓒLeah Millis / Reuters

 

트럼프는 죄를 지었나

트럼프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죄를 지었는지 따지려면 코언이 어떤 자격으로, 어떤 목적으로 입막음 돈 지불에 개입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코언은 ”연방 공직 후보자와의 협의 및 지시에 따라” 자신이 두 여성에게 돈을 지불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코언이 트럼프 선거캠프를 대표해 이 모든 일에 개입했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사전에 알았는지도 중요하다. 트럼프는 입막음 돈이 지급되는 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게 코언의 설명이다. 지난달 코언의 변호인은 트럼프와 코언이 돈을 지급할 방법을 논의하는 대화가 담긴 녹취를 공개했다. ”현금으로 줘!” 녹취에 등장하는 트럼프의 말이었다. 

이 대화가 녹음된 시점은 대선을 두달 가량 앞둔 2016년 9월이었다. 두 여성은 대선 직전 입막음 돈을 받았고,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의 불륜은 폭로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22일 ”나중에”야 입막음 돈이 지급된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게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AMI는 추후에 변제해줄 것이라는 코언의 말에 따라 맥두걸에게 15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후 코언은 계획을 변경해 유령회사 ‘에센셜 컨설턴츠 LLC’를 설립해 AMI로부터 맥두걸의 이야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대니얼스에게 전달된 13만달러도 이 회사를 통해 이뤄졌다. 

코언은 트럼프그룹(Trump Organization)이 변제해주리라 믿고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받은 대출금으로 대니얼스에게 돈을 전달했다. 한편 AMI는 돈을 지급하기로 한 합의를 취소하면서 코언에게 관련 문서를 파기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코언은 문서를 파기하지 않았고, 이 문서들은 현재 검찰의 손에 있다고 NYT는 전했다.  

ⓒJonathan Ernst / Reuters

 

목적대로 ‘무사히’ 선거가 끝나자 코언은 트럼프그룹으로부터 돈을 변제 받기 시작했다. 검찰에 따르면, 코언은 6만달러의 보너스, 세금, ‘테크 서비스’ 비용 등을 합해 모두 42만달러(약 6억원)를 12개월에 걸쳐 매월 3만5000달러씩 나눠서 지급받기로 했다. 트럼프그룹 임원은 ‘법률 자문료’로 꾸민 이 거래명세서에 서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선거캠프가 합법적으로 모금한 선거자금으로 대니얼스에게 13만달러를 지급하고 이 내역을 공개했더라면, 정치적으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코언과 트럼프 측은 입막음 돈 지급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복잡한 거래 방식을 선택했다.

선거법에 따르면 개인이 2700달러를 초과하는 기부금을 내는 건 불법이며, 코언이 지급한 돈은 ‘현물 기부’에 해당해 법에 저촉된다고 NYT는 지적했다. 법정 진술에서도 코언은 자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거래를 주선했으며, 당시에도 이러한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닉슨 스캔들을 수사한 특검의 고문을 맡았던 앨런 라코바라는 코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트럼프의 ”선거법 위반 공모”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대배심에서 ‘불기소된 공모자’로 적시된 후 탄핵 압박을 받고 사임한 닉슨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역시 ”엄밀히 말하면 불기소된 공모자”라고 덧붙였다.

ⓒLeah Millis / Reuters

 

검찰은 트럼프를 기소할 수 있을까

그러나 검찰이 현직 대통령 신분인 트럼프를 기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헌법에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가능한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법무부는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이에 따르자면 코언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트럼프는 검찰의 기소에서 자유롭다. NYT는 일부 법 전문가들은 검찰이 기소를 하되 이후의 절차는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으로 미루는 방안을 두 번째 옵션으로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 번째 옵션은 탄핵이다. 이 경우 검찰은 대통령 탄핵 절차를 관장하는 하원 법사위원회에 자신들이 수집한 증거를 전달할 수 있다. 현재는 공화당이 하원 의석의 과반을 넘는 다수당(235석)을 차지하고 있다. 11월 치러질 중간선거 결과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뽑게 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수사한 독립검사팀에 몸 담았던 브렛 캐버노는 1998년 쓴 글에서 ”헌법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를 허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적었다. 현재 그는 트럼프 정부 연방대법관 후보다. 그는 현직 대통령의 범죄를 다루는 방법으로 형사소추보다는 탄핵이 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닉슨 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냈던 로버트 보크는 1973년 사피로 애그뉴 부통령 관련 재판 당시 ”헌법의 구조적 특성”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거나 권력이 박탈됐을 때에만 기소할 수 있다는 것.

반면 닉슨에 해임된 아치볼드 콕스의 뒤를 이어 워터게이트 특검을 이끌었던 레온 자왈스키는 백악관 도청자료 수색 영장을 청구하며 ”현직 대통령이 기소 대상이 되는지는 상당한 논란이 있는 문제”라고 했다. 그가 받아낸 자료는 이후 닉슨이 사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현직 대통령이 기소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이번 사례와 유사하다고 꼽힌 건 존 에드워즈 전 민주당 상원의원 사건이다. 2008년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그는 영상제작자 리엘 헌터와 불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혼외정사로 자녀까지 낳은 것으로 알려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에드워즈의 지지자들은 에드워즈의 측근 앤드류 영에게 ‘헌터의 연인 행세를 해달라’며 100만달러를 모아 전달했다. 실제 이 돈은 양육비 명목으로, 영의 이름으로 헌터에게 전달됐다. 당시 검찰은 스캔들을 무마하려는 목적에 따라 지출된 이 돈이 불법 정치 기부금이라고 봤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경우, 훨씬 풍부한 증거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입막음 돈 전달을 주도한 코언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후보자의 지시에 따라 돈을 줬다고 증언하고 있다. 돈이 전달된 시점도 에드워즈 때와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에드워즈의 경우에는 경선 투표가 있기 몇 개월 전에 돈이 지급됐다.

반면 트럼프의 경우는 대선을 불과 몇주 앞두고 입막음 돈이 전달됐다고 시민단체 코먼코즈(Common Cause)의 폴 셰이머스 라이언은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만큼 혐의 입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코언이 혐의를 인정한 두 건의 선거자금법 위반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NYT는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그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는 어두운 기색으로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러시아) 공모 수사로 시작됐는데... 어떻게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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