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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2일 19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22일 19시 32분 KST

남쪽 아버지와 북쪽 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낮술을 했다

91세 아버지가 소주를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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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북쪽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쪽 이기순(91) 할아버지가 북쪽 아들 리강선씨와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구순을 넘긴 이기순(91) 할아버지는 22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여행가방 깊숙이 쟁여둔 소주 한병을 꺼내들었다. 평생을 기다려온 ‘의식’을 치를 귀한 소주다. 아들과 낮술 한잔!

2박3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마지막날인 22일 오전 10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 작별상봉이 시작됐다. 몇시간 뒤면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이다. 이기순 할아버지가 준비해 온 소주를 물컵에 가득 따랐다. 한모금 들이켠 뒤, 말없이 아들한테 내밀었다. 칠순을 넘긴 북녘의 아들 리강선씨도 아무 말 없이 아버지가 내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머리칼이 하얘진 아버지와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대작이다. 이기순 할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이뤄지는 애달픈 순간이다.

“두살 때 헤어졌어, 두살 때….”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이기순씨는 1951년 이른바 ‘1·4 후퇴’ 무렵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고 형과 함께 월남했다. 잠깐이면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평생 소주를 들이켰다. 요즘도 하루에 반병은 마신다. 남들한테는 ‘술이 좋아서’라고 해왔다. 가슴 한편의 한을 달리 다스릴 길이 없었다.

이기순 할아버지는 금강산에 가기 전 동행하는 공동취재단의 ‘아들을 어떻게 알아보실 수 있겠냐’는 질문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내 아들이 맞는다면 여러 말 안 해도 하나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너도 술 좋아하냐?’라고 물어봐야지.” 70년 가까이 떨어져 지냈는데도 아들은 아버지를 빼닮았다. 생김새는 물론 안주 삼아 사과를 먹는 모습까지 닮았다. 아비가 챙겨 온 소주가 떨어지자, 아들은 테이블에 있던 들쭉술을 물컵에 따라 아버지께 권했다. 소주 다음은 들쭉술, 애주가 부자는 그렇게 서로를 가슴에 담았다. 사진보다 오래가는 심장에. 부자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래도 서먹하지 않다. 이기순 할아버지는 간혹 “허허허허” 웃을 뿐이다. 두살 때 손을 놓친 아들이 잘 살아준 게 고맙다. 70년 가까이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너무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술 한잔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 금강산의 만남이 끝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말했다. “나 가짜 아버지 아니야. 너 아버지 있어.” 아들이 답했다. “오래 사시라요. 그래야 또 만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