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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 이틀째, 가족들은 객실에서 3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총 12시간 중 9시간이 흘러갔다.

ⓒPool via Getty Images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북녘에서 숨진 맏형의 두 딸이 남쪽 작은아버지를 바라보며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불렀다. 노래를 마친 최선옥(56)씨가 최기호(83)씨를 졸랐다. “함께 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조카와 함께 ‘찔레꽃’을 부르던 최기호씨의 눈가에 얼룩이 졌다. ‘반갑습니다’, ‘휘파람’ ‘고향의 봄’ 등 남과 북의 노래가 눈물 밴 웃음을 싣고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번졌다. 21일 오후,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틀째 단체상봉이 진행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 풍경이다.

 

남쪽 동생과 찍은 사진 잃어버릴까…손수건으로 사진을 고이고이

연회장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번쩍였다. 남쪽 김병오(88)씨 아들 김종석씨는 아버지의 북쪽 가족 사진을 찍어주려고 인터넷에서 필름카메라를 일부러 사왔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찍어서 헤어질 때 카메라째 드릴 거예요.” 사진이 기억보다 질겨서가 아니다. 남북을 이을 추억이 담긴 사진이어서다.

대한적십자사(한적) 사람들이 즉석사진을 찍어 건넸다.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다. 조혜도(86)씨의 북쪽 언니 조순도씨는 그렇게 얻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손수건에 고이고이 싸 손목에 묶었다.

 

함께 도시락 나눠 먹으며 ‘개별상봉’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개별상봉’은 3년 전인 20차 상봉 행사에 비해 ‘진화’했다. 남과 북의 피붙이 말고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호텔 객실에서 밀린 이야기를 오붓하게 나눌 시간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었다. 이전에는 호텔 객실 상봉 2시간 뒤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지만, 이번엔 점심도 도시락으로 호텔 객실에서 함께 먹도록 개선했다. ‘그깟 한시간’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어떤 이한테는 평생을 기다려 얻은 ‘한시간’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시간 동안 외금강호텔 1층부터 8층까지 객실마다 마주앉은 남과 북의 89가족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무래도 (개별상봉이 단체상봉보다) 자유로운게 훨씬 낫습디다.” 개별상봉을 마친 남쪽 이영부(76)씨가 말했다.

ⓒ- via Getty Images

 

“식사 왔습니다.” 한복 차림의 북쪽 접객원은 닭고기편구이, 낙지후추구이, 숭어완자튀기(튀김), 금강산송이버섯볶음 등이 담긴 도시락을 객실마다 일일이 배달했다. 취재진이 ‘생애 첫 남북 가족 도시락 점심’의 소감을 묻자 이영부씨가 환하게 웃었다. “얼마나 맛있어. 기분 좋고!” 이씨는 북쪽 조카들한테서 선물로 받은 백두산 들쭉술, 평양술, 대평곡주를 꺼내 보이며 자랑했다.

 

상봉 시간 4분의 3이 다 갔다

“상봉 마치기 10분 전입니다.” 개별상봉과 점심시간이 끝나간다는 야속한 안내 방송이다. 남쪽 가족 숙소인 외금강호텔에 찾아와 상봉을 마친 북쪽 가족들이 하나둘 방문을 열고 나왔다. 호텔 정문 앞까지 북쪽 가족과 손을 맞잡고 따라 나선 이들도 있다. “여기까지요. 이따 또 만나실 거예요.” 한적 관계자가 막았다. 남북이 합의한 ‘규칙’이란다. 북쪽 가족들이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호텔을 떠나려 하자 남쪽 가족들은 물기 어린 눈을 먼 산 쪽으로 돌린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가를 서성이는 이들이 숱하다.

“우리 아버지 뒤통수에 혹이 있었는데, 그걸 알고 계시더라.”(북쪽 조카 김학수(56)씨) “인민군으로 간 형님의 병과와 생년월일을 기억하는 게 딱 맞더라니까.”(남쪽 작은아버지 김종삼(79)씨)

남녘 삼촌과 북녘 조카는 서로 말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가족끼리만 공유하는 작은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북 이산가족이 2박3일간 만나는 12시간 중 9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남쪽 동생 배순희(82)씨는 북쪽 언니 배순복(87)씨와 쌀과자를 나눠 먹다 목이 멘 듯 한동안 숨을 골랐다.

“못다 한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요. 어제, 오늘 한 얘기도 또 하고 싶어요.” 반백년을 훌쩍 넘겨서야 두 손을 맞잡은 남북의 가족은 22일 작별상봉과 마지막 점심 식사를 끝으로 다시 기약없이 이별한다. 작별상봉 시간이 애초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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