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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1일 17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21일 17시 47분 KST

가톨릭 신부는 소녀를 강간하고, 임신시킨 후, 낙태를 직접 주선했다 (보고서)

신부는 곧바로 처벌되었을까? 아니다. 주교는 오히려 신부에게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다.

수십년간 가톨릭 성직자들이 아동에게 끔찍한 성적 학대를 저질렀음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검찰총장이 2016년 소집한 대배심은 주내 6개 가톨릭 교구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를 2년간 조사했으며, 1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301명의 성직자가 1000명 넘는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밝혔다.

884쪽에 이르는 보고서는 1940년대부터 70년에 걸쳐 가톨릭 내부 자료를 검토하고, 관련 인물을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동들은 포르노물의 희생자가 되었고, 성직자와 함께 자위해야 했으며, 강간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전 주교를 비롯해 가톨릭의 리더들은 가톨릭의 공적 명예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가해자들을 보호하고, 피해자들의 신고는 묵살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성직자들 대부분은 이미 사망하거나 공소시효 만료로 법의 처벌을 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가해자와 그들의 주교 이름을 공개하고, 상세한 범죄 내역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아래는 이번 보고서에 나온 가해 성직자들의 범죄 사례 10건을 정리한 것이다. 

GREGORYDEAN VIA GETTY IMAGES

1. 신부는 소녀를 강간하고, 임신시킨 후, 낙태를 주선했다  

 

대배심 보고서에 따르면 스크랜튼 교구의 신부 토마스 스코텍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소녀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강간하고 임신시킨 후 낙태도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교회 내 문건에 의하면 이 교구의 주교는 1986년 스코텍의 행동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스코텍은 사임했고, 가톨릭 성직자 치료 센터로 보내졌다.

그러나, 대배심이 입수한 1986년 서한에 의하면 스크랜튼의 주교는 이 신부에 대한 위로를 표했다.

“지금은 당신의 삶에서 아주 힘든 때이며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안다. 나 역시 당신의 비통함을 함께 한다. 이런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필요할 때 늘 가까이 계신 신의 도움으로, 이 역시 지나갈 것이며 모두 삶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팀린 전 주교가 스코텍에게 보낸 편지다.

1년 뒤인 1987년, 스코텍은 펜실베이니아주의 다른 교회에 배정되었다.

1989년, 피해 여성은 합의금을 받는 대신 비밀 합의서에 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해에 팀린 전 주교는 바티칸에 서신을 보내 스코텍이 낙태를 주선했음을 밝혔다. 가톨릭 교회법은 완료된 낙태에 협력한 사람은 ‘통상적이지 않다’(irregular)고 보며, 사제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팀린 전 주교는 스코텍에 대한 교회법 적용을 면제해 달라고 로마에 요청했다.

“팀린의 서신은 스코텍이 아이를 임신시켰다는 사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낙태 주선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었음을 발견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스코텍은 2002년까지 사제직을 수행했다.

현재 명예 주교인 91세의 팀린은 변호사를 통해 대배심 보고서에 응답했다. 교구 내의 아동 성폭력에 대한 반응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으나, 팀린은 당시의 의학적 기준에 따라 최선의 판단을 내려 행동했다고 말했다. 1993년에는 교구에 내부 검토 위원회를 설치해 아동 성폭력 사건들을 검토하게 했다고 팀린은 말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스크랜튼 교구는 성폭력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 대처하는 여러 종교 단체들의 선봉에 서 있었다.” 팀린의 성명이다.

 

2. 황금 십자가로 피해자들을 그루밍한 약탈적 사제들의 집단

 

대배심은 피츠버그 교구에서 활동한 ‘약탈적 사제들의 집단’을 적발했다. 교구 건물에서 아동 포르노를 제작했으며 “채찍, 폭력, 사디즘”을 사용해 피해자들을 강간했다고 한다. 이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으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피해자들을 교환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남성은 신부들이 자신을 초대해 셔츠, 바지, 속옷을 벗으라고 했다고 대배심에 증언했다. 신부들은 “십자가 위의 예수 이미지와 비슷한 것”이고 종교적 조각상을 만들 때 사용할 목적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신부들이 선물을 주어 피해자들을 그루밍(Grooming: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가장 아끼는 소년들”에게 황금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십자가는] ‘아이가 성적 학대에 둔감해졌으며, 계속 피해자로 삼기에 적절하다’고 다른 약탈자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대배심 보고서다.

 

3. 신부는 오럴 섹스를 강요한 뒤 성수로 피해자의 입을 씻었다

 

앨런타운 교구의 신부가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어린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대배심 보고서는 밝혔다. 피해자는 2011년에 이 사실을 교구에 신고했으며, 교구는 지역 경찰에 알렸다.

피해자는 이 신부가 오럴 섹스를 강요하고, 강간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강간 후 신부는 “정화하기 위해” 병에 담긴 성수를 피해자의 입에 부었다.

공소 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이 신부에 대한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퇴할 때까지 성직에 종사한 이 신부는 혐의를 부인했다. 2009년에도 그는 플로리다의 지역 교구에 몸담고 있었다.

 

4. 신부는 성추행을 인정했으나 계속 성직에 종사했다

 

1982년에 앨런타운 교구는 마이클 S. 로렌스 신부가 12세 남아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항의를 피해자의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교회측이 신부를 추궁하자 그는 피해자 아버지의 말을 인정하며 “제발 나를 도와달라. 나는 어린 소년을 성적으로 추행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배심이 입수한 교회 기록에 의하면 로렌스는 가톨릭 성직자 치료 센터로 보내졌으며, 센터 의사는 “(소년에게) 이 경험이 꼭 끔찍한 트라우마가 되리라는 법은 없다”고 교회 측에 말했다.

2년 뒤 로렌스는 고등학교에 배치되어 종교 수업을 가르쳤다. 1987년까지 활발한 성직 활동을 계속했다. 교구 조사위원회 소속으로도 남아있었는데, 2002년 보스턴 글로브 언론인들로 인해 가톨릭 교회 안의 아동 학대 문제에 전국적 관심이 쏠렸다. 로렌스는 2002년에 은퇴했고 2015년 4월 사망했다.

 

5. 윗사람들이 아동 학대 신부의 뒤를 봐줬다

 

배심원단은 피츠버그 교구의 전직 교회 당국자들이 1990년에 아동 학대로 투옥된 리처드 줄라 목사를 옹호하고 새로 발령내기 위해 애를 썼다고 주장했다.

1987년에 교회 당국자 한 명은 15세 소녀가 줄라를 “뒤쫓았고” “문자 그대로 유혹하여” 사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줄라는 1988년에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자 피츠버그 교구에 줄라에 대한 추가 항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줄라가 선고를 기다리던 중, 1989년 교구에서 데려온 의사는 법정에 제출할 평가서에서 줄라가 “16세 소년과 함께 자위 및 펠라티오를 했다”고 인정했으나 “소년이 먼저 성적 행동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평가서에는 줄라가 “가벼운 가학-피가학적” 행동을 인정했지만 “정신병적 증상이나 사고 및 추론에 대한 방해를 보인 적은 없다”고 쓰여있다.

대배심은 줄라가 1992년 조기 석방되면서 피츠버그 교구에서 체불 임금으로 11000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후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에, 교구는 1996년에 줄라와 합의를 보았다. 줄라가 계속해서 급여를 제공 받되 앞으로 피츠버그 교구 내에 배치될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줄라는 작년에 사망했다.

보고서에 대해 피츠버그 교구는 모든 성직자들, 심지어 유죄로 인정된 성직자들이라 해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피츠버그 교구는 줄라에 대한 가벼운 형을 지지한 적도, 선고에서 줄라를 위해 정신과 보고서를 작성 혹은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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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부는 피해자에게 학대를 고해하라고 했다

 

대배심 수사로 인해 신부 두 명이 아동 성학대로 체포되었다. 데이비드 풀슨 목사는 성추행과 아동을 위험하게 빠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2002년에 최소 소년 2명을 학대했다고 한다.

풀슨은 소년 1명을 교회 건물 안에서 20번 이상 성적으로 공격했다. 풀슨은 이 소년에게 학대에 대한 사제의 면죄 선언을 받기 위해 자신에게 정식으로 고해하라고 했다.

“풀슨이 저지른 최악의 배신이자 조종이었다. 그는 사제직을 사용해 학대를 범했다.”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주 법무장관이 올해 발표한 보도 자료다.

샤피로는 교구가 최소 2010년부터 풀슨의 학대 성향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대배심이 소환장을 낸 2016년까지 당국에 풀슨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교는 이를 부인한다.

대배심은 수사 과정에서 풀슨이 “선물, 현금, 저녁 식사, 알코올”을 제공했으며 어린 소년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적 선호에 대해 “농담”했다는 다른 남성 9명의 증언을 들었다.

 

7. 신부는 병원에서 아동을 강간했다

 

1991년에 해리스버그 교구는 한 소녀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신부에 의해 학대당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 여성은 자신이 7세 때 편도선 절제술을 받고 회복 중일 때 병실에서 신부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대배심이 발견한 교회 서류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이 십대일 때 이 신부에게 두 번 더 강간당했다고 해리스버그 교구에 밝혔다.

교구 기록에 따르면 이 신부는 이 피해자를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1991년에 고백했고 그 뒤 사제 임무를 맡지 못하게 되었다.

 

8. 신부는 십대를 임신시키고도 성직 생활을 계속했다

 

1950년대에 그린스버그 교구는 새로 임명된 신부 레이먼드 루칵이 17세 소녀와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부는 소녀와 함께 도망쳤고, 소녀가 18세가 되었을 때 결혼했다. 몇 달 뒤 가톨릭 성직자 치료 센터에 다녀온 그는 소녀와 이혼했다. 교회 서류에 따르면 이 여성은 루칵의 아이를 낳았다.

“미성년자와 섹스를 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결혼과 이혼을 했는데도 교구가 나서서 그를 받아줄 다른 주의 ‘자애로운 주교’를 찾아줌으로써 루칵은 성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배심 보고서다.

 

9. 신부는 어린이들을 그루밍해 오럴 섹스를 시켰다

 

1976년부터 2002년까지 그린스버그 교구에 있었던 신부가 수없이 많은 성적 학대 혐의를 받았다고 대배심은 주장한다. 배심원들은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1986년 신부가 종교 수업에서 자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교구에 밝혔음을 알아냈다. 신부는 아이들에게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다음 “탯줄을 물어끊고” 깨끗하게 해주려고 예수를 “핥아야” 했다고 말했다. 배심원들은 이것이 학생들에게 오럴 섹스를 시키기 위한 ‘그루밍’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1986년에 그린스버그 교구는 지역 경찰이 미성년자와의 성적 접촉 혐의로 이 신부를 수사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대배심은 수사의 결과 신부가 처벌받았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다.

이 신부는 치료 센터로 보내진 이후 여러 교구에 부임되다가 2002년에 성직을 떠나게 된다. 교구 내부 문건에 의하면 2002년 이전에 다른 피해자가 최소한 1명 나타나 학대에 대해 항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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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부는 한 가족의 다섯 자매를 학대했다

 

해리스버그 교구의 어거스틴 기엘라 신부는 1982년경부터 시작해 한 가족의 다섯 자매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이들의 소변, 음모, 생리혈 샘플을 모았다고 한다. 경찰 수색 결과 기엘라의 자택에서는 샘플과 아동 포르노가 발견되었다. 기엘라는 1992년에 체포되었고 범죄를 실토했다. 그는 재판을 기다리던 중 사망했다.

대배심은 해리스버그 교구가 1987년에 들어온 이 신부에 대한 항의에 대응했더라면 학대가 훨씬 더 일찍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버그 교구는 소속 성직자가 저지른 학대에 대해 사과했으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안전책을 이미 도입했다고 밝혔다.

다섯 자매는 학대가 그들의 삶에 초래한 “감정적, 심리적, 대인 관계에 대한” 피해를 2016년 대배심에 증언했다. 증언 후 몇 달 뒤 막내가 자살을 시도했다. 그녀는 회복 중 대배심에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병석에서 단 한 가지를 요청했다. 우리가 이 일을 끝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에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배심의 기록이다.

 

* 허프포스트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