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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이 법원을 향해 “왜 안희정에게는 묻지 않았느냐?”며 던진 질문 (사진)

“(폭로 직후)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했는데, 왜 말을 바꿨는지 묻지도 않았나?”

ⓒ한겨레

폭염이 한풀 꺾였지만 기온이 30도를 웃돌던 18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안희정은 유죄다, 사법부도 유죄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성범죄자 비호하는 사법부도 공범이다” “피해자 옆에 우리가 있다” 구호가 퍼졌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더위에 맞선 여성들은 집회 시작 전인 오후 4시30분께부터 모이기 시작해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를 채웠다. 집회 참가자들은 점점 늘어 주최쪽 추산 약 7000명이 모였다. 애초 1차선에 앉았던 참가자들은 오후 5시반께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대문역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중 3차선을 가득 메웠다. 앞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2주기였던 지난 5월 열렸던 4차 끝장집회에선 2000명이 모였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가 무대에 올라 “재판정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우리의 자리는 여기밖에 없다”며 “우리는 조각나서 구석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참가자들 경찰의 폴리스 라인을 3차로로 스스로 밀고 열었다.

ⓒ한겨레

지난 14일 법원이 정무비서 김지은(33)씨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여성들의 분도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말하기인 ‘#미투’ 이후 네차례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열었던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18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원래 한주 뒤인 25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 이후 앞당겨졌다.

김씨는 이날 집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편지로 보냈다. 김씨는 “살아 내겠다고 했지만 건강이 온전치 못하다. 8월14일(선고일) 이후에는 여러차례 슬픔과 분노에 휩쓸렸다”며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안 전 지사의 재판부를 향해 “저는 경찰과 법원의 집요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했다. 그런데 안희정에게는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지 묻지 않았나,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면서 제 이야기는 듣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어 김씨는 계속 투쟁할 뜻을 보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씨는 “여러분이 권력자와 상사에게 받는 그 위력과 폭력은 제가 당한 것과 같다”며 “제발 함께 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씨의 입장문은 김씨를 변호하고 있는 정혜선 변호사가 대독했다.

ⓒ뉴스1

안 전지사의 무죄 판결은 여러모로 여성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7살짜리 딸과 함께 집회장소를 찾은 김민지(39)씨는 “딸도 우리가 성인으로서 겪었던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될까봐 걱정돼서 집회에 참석했다”며 “사법부가 안 전지사가 위력이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부분에서 많은 불만을 느낀다. 여성인권은 무시되는 것 같아 딸과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뉴스1

50대인 엄마가 함께 집회에 가자고 권유해서 엄마와 친구와 함께 온 엄아무개(22)씨는 “합의한 관계는 잘못이라고 밝힌 안 전지사가 무죄가 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엄씨와 함께 집회 장소를 찾은 이아무개(22)씨는 “양예원씨가 공포 때문에 사진 촬영에 응했다는 건 여성들은 이해할 것”이라며 “김지은씨가 안 전지사의 위력에 눌렸다는 걸 왜 사법부는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미투 집회에 처음 참석한 장아무개(22)씨는 “소극적인 성격인데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돼 그동안 여성 관련 집회에 참가하지 못했다”며 “안 전 지사의 무죄선고를 계기로 더이상 남 눈치 안보고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학교에서도 선배, 또는 남자인 친구를 통해 완곡한 어조로 말하는 강요로 성폭력을 강요당한 경험이 있다. 김지은씨를 이해한다”며 “강요로 인한 김지은씨의 대처를 사법부가 동의로 해석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혜화역 시위 등 여성 인권 집회에 계속 참여할 뜻을 밝혔다. 

ⓒ뉴스1

친구들과 함께 온 성아무개(28)씨도 “여성집회에 참여한 적이 없었지만 무죄 선고에 분노를 느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판결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지지하고 있다고, 연대하고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이야기 했다가 되레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한 최영미 시인은 두번째로 무대에 올라 “이 판결을 지지할 수 없다”며 “김지은씨는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희정은 비서실을 통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했다 이후 합의에 의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했다. 또 소송이 시작되니까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말했다. 두번이나 진술을 번복한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최 시인은 8살에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던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의 시 ‘그래도 일어서리라’를 읽었다.

집회참가자들은 오후 6시 광화문을 거쳐 경복궁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낸 뒤 다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돌아와 2차 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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