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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 죽는다”…대인지뢰라는 괴물

어디에 얼마만큼 매설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경기도 파주의 지오피 철책선 순찰로 옆에 설치된 대인지뢰 경고판<br /></div><a h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58096.html?_fr=mt2#csidxc85f9d9a5bcacc68d1b3de0515e0bd0'></a>
경기도 파주의 지오피 철책선 순찰로 옆에 설치된 대인지뢰 경고판
 ⓒ서재철

“들어가면 죽는다.” 파주 비무장지대(DMZ) 근처 지오피(GOP·전방초소) 순찰로에서 본 대인지뢰 경고판의 문구다. 적나라한 표현이다. 하지만 대인지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고다. 대인지뢰는 비무장지대 내부와 지오피 철책선(비무장지대가 끝나는 남방한계선에 설치된 철책선) 근처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그래서 비무장지대와 민북지역(민간인출입통제선 이북 지역) 도로와 숲속 주변 곳곳에는 다양한 지뢰 경고판이 붙어 있다.

대인지뢰는 비무장지대에서 생활하거나 오가는 모든 이를 위협한다. 또 다른 ‘적’이다. 서부전선부터 동부전선까지 비무장지대와 민북지역에 들어가면 항상 대인지뢰를 의식한다. 지오피 철책선을 걷다가 불과 2~3m 옆에 지뢰가 널려 있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대인지뢰를 피하는 방법은 하나다. 숲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비무장지대 모든 군부대는 ‘길 아니면 가지 마라’를 신조로 받아들이며 생활하고 있다. 대인지뢰는 ‘적과 아’(적군과 아군)를 구분하지 않는다. 군인과 민간인도 구분하지 않는다. ‘밟느냐’ ‘안 밟느냐’만 있을 뿐이다.

 

적과 아, 구분 안 하는 무기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보고한 비무장지대 내부의 지뢰 수는 분명하지 않다. 정확한 현황은 아무도 모른다. 100만발가량의 대인지뢰가 매설 또는 방치돼 있다는 설도 있다. 비무장지대 내부는 물론이고 남방한계선 일대와 민북지역 곳곳에 대인지뢰와 전쟁 때 방치되었던 불발탄이 있다. 대인지뢰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군, 인민군, 미군, 중국군 할 것 없이 전선 곳곳에 매설하고 살포했다. 전쟁 이후에도 1980년대까지 심고 뿌렸다. 지뢰는 공격 목표에 따라 사람을 공격하는 대인지뢰와 탱크를 공격하는 대전차지뢰로 나뉜다. 대인지뢰가 더 위험하다. 일명 ‘발목지뢰’라고 불리는 M14대인지뢰는 밟으면 발목을 앗아간다. 비열함이 절정인 무기다. 크기가 작은 참치 통조림만하다.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 탐지도 쉽지 않다. 매설이나 살포도 간편해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이 퍼져나간 대인지뢰다. 무게가 4㎏가량인 M16대인지뢰는 밟은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여러 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서운 무기다.

북한의 관리지역인 군사분계선 이북지역도 이남지역 못지않게 상당수의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민군은 지뢰지대를 ‘지뢰원’이라고 부른다. 북방한계선 철책선인 고압전선 바로 남쪽으로 수십에서 수백미터의 폭으로 지뢰지대를 구축했다. 북한의 지뢰지대에는 목함지뢰, 플라스틱지뢰, 대전차지뢰, 말뚝지뢰 등이 심어져 있다. 소련과 중국 등이 주로 사용하던 지뢰들이다. ‘지뢰원’은 애초 전시 대비 방어 목적으로 설치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탈북자 저지선으로도 효과가 상당하다고 알려진다. 남한으로 귀순하려던 인민군 중에서 고압철책선까지는 무사히 통과했으나 지뢰지대에 걸려서 죽어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무장지대의 대인지뢰는 공격해 오는 적을 저지하는 목적만이 아니었다. 넘어가려는 아군을 저지하는 목적도 있었다.

 

미확인지뢰지대에서 제거 중인 M16대인지뢰의 뇌관
미확인지뢰지대에서 제거 중인 M16대인지뢰의 뇌관 ⓒ녹색연합
미확인지뢰지대에서 제거한 M14대인지뢰. 일명 ‘발목지뢰’로 불린다. 재질이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 탐지가 까다롭다.
미확인지뢰지대에서 제거한 M14대인지뢰. 일명 ‘발목지뢰’로 불린다. 재질이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 탐지가 까다롭다. ⓒ녹색연합

 

대인지뢰가 매설된 곳은 크게 두곳으로 분류된다. ‘계획지뢰지대’와 ‘미확인지뢰지대’다. 계획지뢰지대는 군부대가 적의 침투를 저지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특정 지역에 계획적으로 매설한 지뢰지대다. 비무장지대 전 지역에 걸쳐 주요 방어 지점에 만들어져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집중적으로 매설했다. 대전차지뢰부터 대인지뢰까지 지형적 특성에 따라 심는다. 매설방법은 전투교리에 의거해 다양한 형태로 구사한다. 지뢰의 수량, 매설방법, 매설 위치 정보 등을 해당 작전 군부대는 관리카드로 가지고 있다. 계획지뢰지대의 경우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면 지뢰 제거를 위한 탐지도 상대적으로 손쉽다. 관리카드를 바탕으로 절차에 따라 하나씩 뽑아내면 된다. 일부 계획지뢰지대는 매설지도가 없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미확인지뢰지대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과정에서, 또 냉전의 절정기인 1960년대 전후에 대량으로 지뢰가 살포, 매설됐다. 하지만 매설 당시의 위치와 방법 등에 관한 기록이 없어 지뢰의 종류부터 수량까지 알 수가 없다. 대인지뢰의 위험성은 미확인지뢰지대가 훨씬 높다. 계획지뢰지대도 위험하긴 하지만 군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 지뢰의 위험성은 ‘실태를 모르는 것’에서 증폭된다. 미확인지뢰지대의 문제는 ‘대인지뢰가 있거나,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확한 실태를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비무장지대와 민북지역 대인지뢰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미확인지뢰지대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전수 조사를 한 적은 없다. 계획지뢰지대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 군부대와 관련 군 당국의 실무부서에서 관리를 한다. 하지만 미확인지뢰지대는 실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유엔군사령부의 관할 아래 국군이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암묵적으로 군의 영역으로 통용된다. 그래서 비무장지대 내부의 모든 지뢰에 대한 대응은 군에서 하고 있다. 경계작전 차원에서 비무장지대 내부에 군사시설을 조성하거나 순찰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지뢰를 확인하고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적은 없다. 민북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경계선부터 지오피 철책선 사이의 민북지역도 대부분 미확인지뢰지대로 분류된다.

전방 사단에서 대대장, 연대장, 참모장 등을 지낸 복수의 고위 장교들은 한결같이 “미확인지뢰지대에 대해서 조사하거나 파악하는 것을 해당 군부대에서 하긴 어렵다. 공병부대에서 지뢰 탐지와 제거를 하지만 일부 지역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전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려면 군에서 별도의 큰 조직을 만들거나 아니면 민간의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방법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강원도 연천군 중면의 군사시설에 설치된 대인지뢰 경고판
강원도 연천군 중면의 군사시설에 설치된 대인지뢰 경고판 ⓒ서재철
강원도 연천군 중면의 군사시설에 설치된 대인지뢰 경고판
강원도 연천군 중면의 군사시설에 설치된 대인지뢰 경고판 ⓒ서재철

 

 

 

민통선 지역이 더 위험

비무장지대 내부에는 각종 지뢰가 다량 매설돼 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 내부는 상대적으로 적절하게 관리가 되는 편이다. 일단 민간인은 전혀 접근을 할 수가 없다. 군장병들도 수색대대와 수색중대만이 경계작전을 수행한다. 이들은 전방의 여타 부대 중에서도 훈련 수준이 높고 군기가 더 강한 특수한 부대로 분류된다. 또 비무장지대 내부에서는 개척된 순찰로 외에는 이동이나 접근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더 위험한 곳은 민북지역이다. 서부전선의 파주와 연천 그리고 중부전선의 철원에는 민북지역에 농경지가 상당하다. 농번기에는 농민들이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출입을 하고 있다. 논이나 밭 바로 옆의 숲속이나 산림지역 대부분이 미확인지뢰지대다. 중동부전선과 동부전선의 광활한 산림지대도 대부분 미확인지뢰지대다.

대인지뢰 문제에 정부는 여전히 무대책이다. 정확한 실태부터 제거를 위한 노력까지 손을 놓고 있다. 지난달 11일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비무장지대 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가관광전략회의가 열렸다.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에서도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비무장지대와 민북지역을 포함한 접경지역의 관광 활성화가 논의됐다. 그러나 접경지역과 민북지역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대인지뢰가 널려 있는데 관광 활성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대인지뢰 문제를 국방부의 영역이라며 미뤄뒀다. 계획지뢰지대처럼 군사작전 목적으로 매설돼 관리되고 있는 곳은 국방부의 영역이다. 하지만 미확인지뢰지대처럼 군사작전 목적과 거리가 있는 곳은 국민안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의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심의위원회 조재국 위원장(연세대 교수)은 “남북관계 개선 시기에 맞추어 정부 차원의 대인지뢰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접경지역의 대인지뢰에 대해서는 행안부가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철원의 민통선 초소 앞에 전시된 실물 크기 지뢰 모형. 민북지역 영농인의 출입이 빈번한 곳은 이렇게 지뢰와 불발탄의 모형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철원의 민통선 초소 앞에 전시된 실물 크기 지뢰 모형. 민북지역 영농인의 출입이 빈번한 곳은 이렇게 지뢰와 불발탄의 모형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서재철
미확인지뢰지대를 둘러싸고 울타리와 지뢰 경고판이 설치돼 있다. 
미확인지뢰지대를 둘러싸고 울타리와 지뢰 경고판이 설치돼 있다.  ⓒ서재철

 

 

 

대인지뢰 문제는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평화 이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인지뢰의 금지와 제거가 추진됐다. 유럽은 2차 대전 이후 대인지뢰 제거에 나섰다. 냉전을 거치면서 아시아와 중동에서도 지뢰 제거는 큰 이슈였다. 인도차이나전쟁의 현장이었던 캄보디아를 비롯해 코소보, 앙골라 등 국제적 분쟁지역의 대인지뢰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에 상당한 지원과 기부가 이어졌다. 1999년에 오타와 협약이 발효되어 대인지뢰 전면 금지와 제거에 물꼬를 텄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군사강국들은 불참했다. 지구상에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일대를 제외하면 대규모의 대인지뢰가 방치된 곳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대인지뢰는 방치할 때 위험이 극대화된다. 국민안전 차원에서 접근하면 대책은 명확하다. 경계작전을 위한 계획지뢰지대 관리와 전시작전의 경우는 군대가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미확인지뢰지대처럼 방치된 곳은 국민안전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탐지하고 제거하면 된다. 국제사회에는 이미 오랜 경험과 기술이 있다. 총리실과 행안부가 주도하고 국방부와 국토교통부가 협조하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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