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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축구 세계화 :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 경기가 미국에서 열린다

라 리가 in América? '축구 세계화'와 그 불만

  • 허완
  • 입력 2018.08.17 20:42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 바르셀로나, 스페인. 2018년 5월6일.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 바르셀로나, 스페인. 2018년 5월6일. ⓒPower Sport Images via Getty Images

스페인 프로축구 1부리그 라 리가(La Liga)가 빠르면 이번 시즌부터 정규시즌 리그 경기 중 일부를 미국에서 치르기로 했다. 사상 처음으로, 스페인이 아닌 곳에서, 지역 서포터들이 아닌 해외 팬들이 들어찬 지구 반대편 낯선 경기장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1부리그 경기가 치러지게 되는 것이다. 

라 리가 사무국은 미국 스포츠엔터테인먼트그룹 렐러번트스포츠(Relevent Sports)와 15년짜리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고 16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양측은 50대 50으로 지분을 투자해 조인트벤처 ‘라 리가 노스 아메리카’를 설립하게 된다. 

렐러번트는 미국 프로풋볼(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구단주인 억만장자 스티븐 로스가 세운 글로벌 스포츠 기업이다. 여름 프리시즌(pre-season)에 개최되는 국제 ‘친선경기’ 토너먼트인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ICC)’을 주관하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ICC는 유럽의 명문팀들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유럽과 미국, 싱가포르에서 개최됐다.

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홈구장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2017'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FC 마드리드의 경기가 열렸다. 마이애미, 미국. 2017년 6월29일.
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홈구장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2017'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FC 마드리드의 경기가 열렸다. 마이애미, 미국. 2017년 6월29일. ⓒRobbie Jay Barratt - AMA via Getty Images

 

라 리가 in América

라 리가는 북아메리카 내 라 리가 독점 스폰서십과 미디어 관련 권리를 렐러번트에 보장하기로 했다. 유스 아카데미, 유스 지도자 육성, 마케팅, 시범경기 개최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라 리가 정규시즌 경기 중 일부를 미국에서 개최하는 방안이 계약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실현될 경우, 스페인 바깥에서 사상 최초의 라 리가 경기가 열리게 된다.  

협상에 참여한 고위 관계자는 어떤 팀의 경기를, 미국 어느 도시에서, 언제 개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밝혔다. 얼마나 많은 경기를 미국에서 치를 것인지도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하비에르 테바스 라 리가 회장은 FC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라이벌전인 ‘엘 클라시코’가 미국에서 열릴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유럽축구 최대 라이벌 관계 중 하나로 꼽히는 두 팀은 라 리가에서 가장 크고 인기있는 팀이기도 하다. 가장 매력적인 ‘상품’이 빠진다는 얘기다.

렐러번트의 CEO 대니 실만은 ”우리의 목표는 일단 한 경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며 ”그리고나서 이게 얼만큼 확장할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지역에서 라 리가의 인지도와 인기를 끌어올린 다음, 이를 바탕으로 향후 중계권료 협상이나 스폰서십 협상에서 더 큰 계약을 따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비에르 테바스 라 리가 회장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프로모션'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2016년 9월15일.
하비에르 테바스 라 리가 회장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프로모션'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2016년 9월15일. ⓒSAJJAD HUSSAIN via Getty Images

 

21세기의 ‘무적함대’

라 리가는 스페인 바깥으로 리그의 인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공략해왔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비하면 해외에서 라 리가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일례로 EPL은 2015년 미국 지상파 방송사 NBC와 10억달러(약 1조1250억원)에 달하는 6년짜리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빅 클럽들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EPL의 인기도 꾸준히 높아져왔다. (같은 영어권 국가라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라 리가가 카타르 기반 방송사 beIN스포츠와 체결한 미국 내 중계권 계약 금액은 2년간 1억2000만달러(약 1350억원)에 불과하다. 이 채널은 송출 범위가 미국 전체 가구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접근성도 낮다.

중계권료 수입 격차는 곧바로 각 리그에 속한 구단들의 ‘지불능력’ 격차로 이어진다. 딜로이트 자료에 따르면, 2016-17시즌 EPL 팀들의 매출 총액은 스페인 팀들의 두 배에 달한다. 구단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계권 수익도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EPL의 고만고만한 중위권 팀들은 막대한 중계권료에서 분배되는 돈을 바탕으로 ‘빅2’를 뺀 나머지 스페인 상위권 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을 선수 영입에 쓸 수 있다. 대개 돈이 있는 곳에 뛰어난 선수들이 따라간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라 리가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라 리가 전체로 봤을 때, 리그의 인지도와 인기를 높여 수익을 극대화할 필요는 있다. 이번 제휴가 성사된 상업적 배경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정규시즌 리그 경기를 해외에서 치른다는 계획 자체가 파격적인 건 사실이다. 

전조는 있었다. 지난해 테바스 회장은 중국에서 정규시즌 경기 일부를 치르는 구상을 언급한 적이 있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팀과 국왕컵 우승팀이 맞붙는 ‘스페인 슈퍼컵’은 최근 모로코 항구도시 탕헤르에서 열렸다. 스페인이 아닌 곳에서 슈퍼컵 경기가 치러진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테바스 회장은 ”우리는 축구에 대한 열정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획기적인 합의는 분명 미국과 캐나다에서 아름다운 경기의 인기를 크게 촉발시킬 것이다.”

실만 CEO는 ”이 파트너십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가 되고자 하는 라 리가의 의지와 선견지명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탁월한 오랜 전통과 비교할 수 없는 국제적 명성”을 자랑하는 라 리가와의 계약이 북미 지역의 축구 열기는 물론, ”라 리가의 글로벌 브랜드”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시티의 유니폼을 입은 중국 팬들이 두 팀의 친선경기 직후 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 중국. 2016년 7월25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시티의 유니폼을 입은 중국 팬들이 두 팀의 친선경기 직후 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 중국. 2016년 7월25일. ⓒChina Stringer Network / Reuters

 

빅 마켓으로 향하는 빅 클럽들

유럽축구 ‘빅 리그(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에 속한 ‘빅 클럽’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북미 대륙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이 대표적인 타깃이었다. 야구나 농구와는 달리, 축구 팬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빅 클럽들이 거대한 ‘세계 시장’에 눈을 뜨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이제는 거의 모든 빅 클럽들이 새 시즌을 준비하는 여름 동안 미국이나 아시아 등지를 순회하며 친선경기를 벌인다. ‘현지 서포터’들을 위해 다양한 부대행사도 소화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비공개 전지훈련 캠프를 꾸려 차분히 프리시즌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해외에서 리그의 인기가 올라가면 국내외 TV 중계권료 수입을 비롯한 각종 수입도 크게 늘어난다. 주요 유럽축구리그의 중계권료는 계약 때마다 매번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으며, 그 덕분에 빅 리그 팀들은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TV 중계권료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유럽 명문팀들은 전 세계 축구 재능들을 끌어모은다. 선수 이적료와 주급도 치솟는다. 전 세계 억만장자들도 앞다투어 축구구단을 사들이고 있다. 언젠가는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균형이 유지되는 중이다. 

프로모션을 위해 자국 리그의 정규시즌 경기를 해외에서 치르는 건 ‘미국식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 NFL은 ‘인터내셔널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2007년부터 정규시즌 경기 중 일부를 영국 런던에서 치러왔고, 미국 프로농구(NBA)도 정규시즌 경기 중 일부를 런던과 멕시코시티에서 개최해왔다. 모두 ‘시장 확대’를 위한 선택이다.

스페인 프로축구 라 리가(La Liga) 레알 베티스의 서포터들이 비야레알과의 홈경기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세비야, 스페인. 2018년 2월3일.
스페인 프로축구 라 리가(La Liga) 레알 베티스의 서포터들이 비야레알과의 홈경기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세비야, 스페인. 2018년 2월3일. ⓒAitor Alcalde Colomer via Getty Images

 

‘축구 세계화’와 그 불만

지난 2008년, EPL 사무국은 정규시즌 경기를 한 경기 추가해 ’39라운드‘를 해외에서 치르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 계획은 구단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무산됐다. 감독, 선수, 팬, 언론들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돈 때문에 리그의 전통을 훼손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ESPN에서 바르셀로나를 담당하는 샘 마스든 기자는 ”근본적으로, 이건 스페인 리그”라며 ”해외 시장에 뛰어드는 건 권장되어야 하지만 리그 경기를 해외에서 치르는 건 위험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너무 나갔다’는 얘기다.

ESPN 마드리드 담당기자 로비 던은 ”스페인 빅 클럽들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10년 뒤 축구 팬덤이 어떤 모습일지, 축구의 성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스페인축구선수협회는 이번 제휴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협회는 선수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은 채 맺어진 계약 때문에 이제 시즌에 한 번씩 ”억지로” 미국까지 가서 경기를 치러야 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축구선수들은 오직 제3자에게만 이득인 그런 비즈니스에 활용되는 화폐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따지더라도, 장거리 원정경기는 리그 전체의 흐름을 해칠 위험이 높다. 라 리가 중하위권 팀들의 경기에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야후스포츠의 헨리 부쉬넬은 ‘미국식 모델’을 유럽축구 리그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짚었다. 리그 작동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

유럽 축구 고위 관계자들은 전례가 있다며 NFL이나 NBA 같은 미국 스포츠 리그를 지목했거나, 지목할 것이다. NBA는 매년 27경의 정규시즌 경기를 해외에서 치른다. NFL은 2007년 이후 매년 최소 한 경기 이상을 런던에서 치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불공평한 경기 스케쥴은 미국에서 보편적인 것이다. (정규시즌 경기가) 리그 챔피언이 되기 위한 유일한 결정 요인도 아니며, 가혹한 스케쥴에 시달린 팀이 하부리그로 굴러떨어지는 일도 없다.

반면 유럽축구에는 플레이오프가 없다. ”정규시즌”이 바로 시즌이다. 어쩌면 마드리드가 (스페인) 비야레알로 고된 원정길을 떠나는 대신 홈경기 같은 (미국) 마이애미 경기를 치러야 했던 덕분에 FC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보다 승점 1점 앞섰다면,  바르셀로나가 플레이오프 톱시드를 받는 게 아니다. 그대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순위표 반대편으로 내려가보자. 레반테가 강등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3월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대신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정작 자신들의 팬도 별로 없는 경기장에서 중요한 경기를 치른다고 상상해보라. 그건 옳지 않아보인다. (야후스포츠 8월16일)

19세기말~20세기 초 태동한 유럽 프로축구는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존재였다. 100여년이 흘렀고, 그 사이 세계가 변했으므로 지역 연고의 의미나 중요성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옛날로 돌아갈 수도, 그래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리그 안에서 팀 간 격차는 더 심해질 수도 있고, 대를 이어 고향팀을 응원해 온 서포터들은 점점 소외될지 모른다. 세계화의 과실이 꼭 모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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