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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왜 '약값' 이야기를 꺼냈을까?

중진국 약가정책의 딜레마

  • 한설
  • 입력 2018.08.17 15:58
ⓒhuffpost

최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간담회에서 ‘약값 자율화’ 얘기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삼성 측에서는 바이오시밀러가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고, 정부에서는 이를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접한 분들이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제조사가 물건 값을 바꾸는데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좀 이상한 소리 같이 느껴지는 것이죠. 엄밀하게 말하면, 여기서의 ‘약값’은 실제로 약의 가격이라기 보단 건강보험공단에서 약에 대해 지불해주는 최대 보험료, 다시 말해 ‘보험약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험약가는 대체 뭐고, 이재용 부회장은 그걸 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란 걸까요?

 한국과 같은 국영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당연지정제’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SK텔레콤 고객들이 통신사 포인트를 사용하려면, SKT와 제휴된 가게에서만 이용이 가능하겠죠? KT 고객이 SKT 제휴 매장에 가서 KT 포인트로 결제를 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민간보험들이 각자 병원과 계약을 맺어서 운영하는 것이 미국의 건강보험 방식입니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는 건강보험 하나만 가입하면 전국의 어느 병원에 가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건강보험은 전국의 모든 병원과 약국에 강제적으로 ‘제휴’가 되어있거든요. 법적으로 이런 것을 강제하는 제도가 바로 ‘당연지정제’입니다.

이제 당연지정제 덕분에 전국의 어느 병원에 가든 건강보험이 적용이 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병원을 가건 병원비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셨나요? 감기로 동네의원을 갔으면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3,500원 정도를 내고 처방전을 받아오셨을 겁니다. 이는 통신사 포인트 제휴와는 다르게, 건보공단의 상위기관인 보건복지부에서 의사협회, 약사회 등과 협상을 통해 의료 행위의 가격을 미리 정해놓기 때문입니다. 이 가격을 흔히들 ‘의료수가’ 혹은 더 줄여서 ‘수가’라고들 표현을 합니다. 의료는 가격을 시장에만 맡겨두면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도 아픈 환자 입장에선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국종 교수로 인해 유명해진 응급외상센터 같은 곳처럼 의료수가가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신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예: 성형수술, 피부과 시술 등)의 경우는 보험 적용이 안 되니, 가격도 병원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의료행위가 그렇다면, 의약품의 경우는 어떨까요?

의약품의 경우는 앞서 말한 ‘당연지정제’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론적으로는 건강보험 공단이 제시하는 보험약가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국내에 공급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의약품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왜냐구요? 신약의 경우는 특허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양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뻗대는 것보단 낮은 가격에라도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이득이고,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경우엔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하는 후발주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다들 보험 적용을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 비보험 의약품을 제외하곤 다들 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서 보험약가 협상을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건강보험 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거든요.

처음에 신약을 보험목록에 등재할 때는 건보공단도 어느 정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약회사도 특허기간이라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건보공단 입장에서도 부담이 있습니다. 만약 보험약가 협상이 결렬되어 해당 의약품이 국내에 공급이 되지 않으면, 그 신약을 이용하여야 하는 환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C형 간염 치료제 공급 논란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특허가 만료된 상태라면, 건강보험 공단 입장에서는 그리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대체제인 제네릭이 많이 출시가 된다면, 처음의 신약 가격만큼을 보험재정에서 헐어줘야 할 필요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시장에 제네릭 의약품이 새로 진입하는 즉시, 기존 신약의 보험약가 대비 53.55%로 약 가격을 확 낮춰버립니다. 독점적인 신약에 1,000원을 주던걸, 대체품이 나오면 536원으로 깎아버리는 것이죠. 바이오의약품의 경우는 기존 신약의 보험약가 대비 70%로 인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ayo888 via Getty Images

 

다시 이재용 부회장의 얘기로 돌아가봅시다. 현재 삼성그룹은 바이오의약품을 차세대 반도체로 육성하고자 이런저런 투자들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의약품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고가인 경우가 많고, 이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이 경우는 바이오시밀러라고 합니다)을 출시하는 경우에도 약값을 꽤나 후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걸, 앞서 설명했던 제도가 발목을 잡습니다. 주사 한 방에 100만 원 받던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 가격은 바이오시밀러가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즉시 70만 원이 되고, 이를 복제한 바이오시밀러도 똑같이 70만 원으로 가격이 내려갑니다. 100만 원도 한국 전체에서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글로벌 가격에 비해서는 많이 낮춘 가격인데, 70만 원까지 내려가면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나 제약업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거죠. 게다가 오리지널 약과 가격이 동일하면 후발주자 입장에선 경쟁도 어렵습니다.

이를 보고 ‘국민 건강을 담보로 기업 배를 불려주겠다는 거냐’고 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 사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국내 시장만 보면 굳이 저런 볼멘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이거든요.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들도 70만 원에 공급하고 있는 거고, 그 정도 받으면서 팔면 그리 손해를 볼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식의 비판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저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마도 ‘해외시장’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제약시장이 글로벌화되면서 특이한 현상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유사하게 자국의 보건정책을 책임지는 해외 기관들이 각국의 약가정책을 살펴보기 시작했거든요. 예컨대 한국의 약가 결정 담당자가 ‘콜드텅 캡슐’이라는 신약의 보험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약물경제성평가’라는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만, 그런 이론적 계산 외에도 담당자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콜드텅 캡슐’은 한국에서만 판매되는 약이 아니다 보니, 해외 정부기관들은 그 약에 어느 정도의 가격을 쳐줬는지를 찾아보는 겁니다.

ⓒIgeaHub

 

한국의 경우 해외 선진국 7개국(흔히 A7 국가라고 합니다)에서 ‘콜드텅 캡슐’이 얼마 정도의 가격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그 국가들의 최저가를 참고합니다. 그런데 한국이 다른 나라의 약가를 알 수 있다면, 해외 국가들도 한국의 약가를 보겠죠? 여기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딜레마가 생깁니다. 신약 특허를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적당히 ‘땡처리’를 하는 수준에 팔더라도 특허기간 내에 독점적으로 파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콜드텅 캡슐’을 100원에 팔아버리면, 이제 다른 나라들이 다 같은 소리를 해버리는 겁니다. 우리한테는 150원을 요구하면서 한국에는 왜 100원에 해주는 거냐, 우리만 왜 이렇게 비싸게 받냐고 항의를 하는 거죠.

그나마 신약은 좀 나은 편입니다. 특허기간 안에 팔아야 하는 기업과 국민들을 위해 새로운 약을 빨리 도입하고자 하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물리면서 어떻게든 타결이 이루어지기는 하는 편이니까요. 문제는 바이오시밀러와 같은 특허만료 이후에 나온 의약품들입니다. 삼성이 전자제품에 있어서는 국가적 인지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의약품 업계에서는 사실상 신생기업에 가깝습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2017년 매출이 4600억 원 정도 되는데, 2017년 제약업계 매출 1위를 차지한 화이자의 매출은 56조 원 정도 됩니다. 0.5조 대 56조. 조금 더 친숙한 단위로 바꿔보면 연 매출 5억 나오는 동네 편의점이랑, 연 매출 560억 나오는 대형마트 정도의 차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복제약을 내놓는데, 약가를 받은 곳이 상대적으로 약가가 매우 낮은 편인 한국뿐이라면 삼성 입장에선 해외 판매 시에도 높은 약가를 받기가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고작 20조 규모의 한국 시장에서 돈을 더 빨아먹겠다는 게 아니라요. 삼성전자 반도체를 국내에서 모두 소비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사실 한국의 이러한 약가 정책에도 이유는 있습니다. 비단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닌 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제약 산업을 특별히 기간산업으로 보지 않습니다. 신약개발을 통해 의약품을 수출하려면 기본적으로 고도화된 연구 역량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본력이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요건을 갖추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고, 그에 맞추어 약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글로벌 제약기업이 존재하는 국가들은 이런 규제를 최대한 풀어주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인데, 미국에서 약가규제를 강력하게 했으면 지금과 같은 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탄생하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성공적으로 탈출했고, 상위권 제약회사들도 역량 축적을 통해 조금씩 신약 개발을 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보니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아직 글로벌 제약사가 나올 수준은 아니라 고 약가 정책으로 인해 잃을 것이 더 많은데, 제약기업들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약가를 무작정 낮게만 유지할 수는 없는 상황인 거죠.

이번 정부에서 전면적으로 저약가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다만 삼성의 청사진에 공감을 한다면, 요청대로 바이오 의약품에 대한 약가정책은 변화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결정이 나올지 기다려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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