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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사 프랭클린은 원조 팝 디바였다

“당신도 아레사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디바스 라이브’의 프로듀서 숀 머피가 내게 했던 말이다. 머피는 올해 올스타 VH1 콘서트 시리즈 20주년을 맞아 내가 이야기를 나눴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말대로 나는 아레사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팝의 오리지널 디바라는 프랭클린의 위치를 굳히는, 역사책에 들어갈 법한 이야기였다.

‘디바’라는 말은 ‘여신’이란 의미로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정의는 포스트모던 세계의 치환에 따라 가끔은 ‘나쁜 년’(bitch)가 되기도 한다. 더 나은 동의어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정복자, 연예인, 여성 원로, 아레사.

20세기를 거치며 음악은 점점 더 큰 스펙터클이 되어갔고, 성공한 여성 뮤지션들의 존재감도 커졌다. 그러나 8월 16일에 76세로 세상을 떠난 소울 시스터 아레사 프랭클린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떤 여성 뮤지션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랭클린은 처음에는 놀랍도록 격렬한 목소리로, 나중에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디바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98년에 프랭클린을 주인공으로 하여 시작된 ‘디바스 라이브’를 예로 들어보자. 프랭클린이 1985년 이래 탑 10 히트곡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당시 데뷔 4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던 프랭클린을 뛰어넘을 여성 가수는 없었다. 1998년 4월의 ‘디바스 라이브’에서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 글로리아 에스테판, 샤니아 트웨인, 캐롤 킹이 . 프랭클린의 성대가 불러오는 스타 파워의 작은 조각이라도 얻으려 경쟁하며 프랭클린에게 경의를 표했다.

ⓒKMazur via Getty Images

우리는 여성 팝 뮤지션에게서 재능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들이 통솔권을 쥐고 있기를 바라고, 그들이 성차별과 관음증에 맞서 싸우고 멀쩡한 상태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디바스 라이브’는 프랭클린에겐 궁극적인 시험의 장이었다.

‘아레사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다. 1998년에 프랭클린의 소속사는 프로듀서들에게 리허설 중 공연장의 에어컨을 끄라고 지시했다. 성대에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무대에 올라갔을 때 침묵을 요구했다. 환기구 근처에 손을 대보고는 실내에 바람이 불고 있음을 확인했다.

“프랭클린은 버럭 화를 내더니 백스테이지에서 나가 차를 타고 가버렸다.” 프로듀서 웨인 아이삭의 말이다.

혼돈이 뒤따랐다. 에어컨이 정말로 켜져 있었던가? 대체 왜? 머피에 의하면 비컨 씨어터는 그 날 우연히 통풍 테스트를 하던 중이었고, 에어컨이 켜져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로렌 잘라즈닉에 의하면 에어컨이 꺼져 있어 사우나 같은 환경에 “다른 퍼포머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미친 듯한 전화 통화가 오갔고, 프랭클린이 방송 전에 돌아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스탭들은 프랭클린이 호텔에 돌아가서 설탕 뿌린 도넛을 먹으며 무심한듯 드레스 피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스 프랭클린(다들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이 리허설 없이 생방송을 하러 오겠다는 뜻일까? ‘디바스 라이브’는 수백만 달러가 들어간 방송이었고, 가장 중요한 건 모두가 제때 등장하는 것이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내려오듯 상황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그녀가 돌아올지] 몰랐는데, 갑자기 구름이 갈라지고, 돌판이 나타났고, 우리는 갑자기 깨달았다. 나로선 그정도로 신비하고 놀랍게 느껴졌다.” 잘라즈닉의 말이다.

쇼는 무사히 진행된 정도가 아니라, 프랭클린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로린 힐과 함께 작업한 ‘A Rose Is Still a Rose’로 젊은 음악 팬들에게 새롭게 다가간지 불과 두 달 뒤였던 그때, 수많은 시청자는 프랭클린의 후계자들이 선배 디바인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공연의 대단원에서 여성 뮤지션들은 캐롤 킹이 작곡한 프랭클린의 대표곡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을 함께 불렀다. 아레사와 코러스 5명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법한 무대였다.

“우리는 실내 에어컨을 켜고 최대한 춥게 만들어 두었던 것 같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노래하러 나오기 전에 에어컨을 껐던 것 같다. 아마 피날레 때 다시 껐을 것이다. 아니면 끄겠다고 말만 하고 안 껐는지도 모른다.” 잘라즈닉의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프랭클린이 가진 권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강하게 느껴진다. 개인사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아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신경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유명인들의 연애사와 개인적 행동은 타블로이드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한다. 그러나 프랭클린의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음악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그녀는 최고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해, 신체 이미지라든가 두 번의 이혼(한 번은 가정 폭력이 관련되어 있었다) 때문에 느꼈을지도 모를 자기 회의를 가렸다.

21세기 들어 프랭클린이 무대에 서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자신의 뒤를 잇는 이들에 대해서는 더욱 솔직해졌다.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비욘세가 티나 터러를 ‘여왕’이라고 소개하자 프랭클린은 불쾌하게 여겨 자발적으로 성명을 내고 ‘비열한 말’이라며 비난했다. 2014년에는 아델과 알리샤 키스, 휘트니 휴스턴을 칭찬했지만, 니키 미나즈는 어떠냐는 물음에는 대답하기를 거절했고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서는 “드레스가 멋지다”고만 말했다. 2017년에는 AP에 팩스를 보내 자신이 휘트니 휴스턴의 할머니라는 디온 워윅의 말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했다.

프랭클린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지위였다. 아무도 그녀를 대변할 수 없고, 아무도 그녀의 주권에 도전할 수 없었다. ‘디바스 라이브’ 때의 에피소드가 터무니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나가버리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얼굴이 팽팽하고 라디오에 더 많이 나오는 가수들이 그녀의 왕좌를 위협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적어도 그때의 기분은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신성했던 밤, 프랭클린은 디바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를 택했다. MTV와 TMZ가 셀러브리티 문화를 우리 코앞에 가져다 주기 전부터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뿌렸던 선구자다웠다. 프랭클린은 정말로 크고 강렬하게, 너무나 아름답게 노래했다. 아무도 맞설 수 없었다.

프랭클린은 ‘Respect’를 끌어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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