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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6일 16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6일 16시 41분 KST

'하면된다' 보다 더 필요한 것!

Maskot via Getty Images
huffpost

내 어릴적 좌우명은 ‘하면 된다’였다.

학구열 높으신 부모님의 영향도 있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핑계삼기엔 공부도 운동도 음악도 먹는것에까지도 미치는 내 욕심은 아주 많이 과한 편이었다.

전자오락게임도 끝판왕을 볼때까지 해야 하고, 구슬치기도 동네친구들 구슬이 바닥이 나는 걸 볼 때까지 해야만 했던 내 욕심은 근성있고 끈질기다는 소리를 듣는 긍정적인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쓸데 없는 데 목숨건다는 비난을 받는 표적이되기도 했다.

영어학원에 미술학원에 서예학원까지 동네 새로 생기는 학원이란 학원은 다 가고 싶어하던 욕심 많은 아들녀석 덕분에 우리 어머니의 가계부에도 빨간숫자가 적히는 날이 적지 않았지만 그것들 중 지금도 내가 잘 하는 것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로 전학온지 얼마 안 되던 날 시골뜨기 소리가 듣기 싫어서 전과를 통째로 외우고, 구기대회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어릴적부터 다니던 종교 버리고 교회 조기축구회까지 갔던 걸 보면 지금 생각해도 난 좌우명에 아주 충실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 같기는하다.

물론 그런 것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밤샘암기도 조기축구도 오기나 욕심 이상으로 포장하기는 힘들다.

시간이 지나서 실명을 하고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를 다니면서 ‘하면 된다’ 라는 그 자신감 넘치던 좌우명은 내게 있어 조금씩 ‘하면 될까?’로 의심의 여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 말만 잘 듣고 먹으라는 약 잘 먹으면 금방 돌아온다던 내 시력은 나의 어떤 노력에도 ‘된다’라는 답을 보내주지 않았다.

몇 달을 밤새가면서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도록 읽어가던 점자도 다른 아이들 실력 엔 발 끝조차 따라가지를 못했고 어린이 합창단에서 탐내던 나의 음악성은 맹학교 아이들의 흔하디 흔한 절대음감 앞에서 얼른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하면된다’를 굳게 믿던 내 신념은 그때부터 크게 흔들렸던것 같다.

그 때쯤부터는 다 잘해야 하나라는 나름의 의구심 같은것도 생겼던 것 같다.

그래도 맹학교 내에서는 잘하든 못하든 이거나 저거나 부딪히고 겨뤄나 볼 수 있었던 내 자신감들은 다시금 만난 눈 보이는 친구들 앞에서 ‘하면된다‘도 아닌 ‘하면될까?‘도 아닌 ‘할수없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하면 된다’ 밖에 모르던 내 주변엔 온통 할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게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뭐든지 할 수 있을것만 같던 나의 거만함이 할 수 없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사춘기 시절의 혼란스러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천번의 번뇌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장애라는 이름이 붙은 시간들을 살면서 난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시각장애 1급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부정하면서 ‘난 볼 수 있어’ 라고 두 눈 부릅뜨고 노력이란 이름으로 투쟁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내 살엔 도전해야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남들보다 조금은 더 분명하게 나눠진다.

가톨릭 사제가 되고싶던 내 장래희망은 장애인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천주교의 현실 앞에서 믿음 강한 평신도라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했고,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는 대학들과 전공들 사이에서 내 진로도 여러번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연애상대에게 내 중심적으로 ‘너의  왜곡된 장애인식은 분명히 올바른 쪽으로 변화될 수 있는거야!’라고 언제나 설득하고 주장하기엔 내 에너지도 정해진 한계가 있었으므로 선택하고 포기하는 작업들을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해야만 했다.

직장을 구할 때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도전해야 하는 것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선택할 때 신속하게 판단했다.

요즘 사람들은 뭐든지 잘하고 싶어하고 모든 걸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좋은 집과 비싼 차는 기본이고, 돈도 잘 벌고 명문대학을 다녔으며, 그럴 듯한 직장에 외국어는 두 세 개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 수준의 짝도 만나고 싶어한다.

취미도 여가도 여행도 뭔가 좀 있어보이는 걸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어린시절 내 좌우명처럼 그럴듯 해 보이는 건 다 ‘하면 된다’를 외치고 다 할 수 있을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사실 그런 건 다 할 수도 없거니와 다 잘할 필요도 없다.

된다고 확신하다가 큰코 다칠 바에야 애초부터 안되는것을 쿨하게 인정하는게 나을 때가 많다.

가수처럼 노래를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얼른 정신차리고 노래방에서 즐겁게 노는 것에 만족하는것도 나쁘지 않다.

영화배우처럼 멋지고 예쁜 짝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바엔 영화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면 되지 않겠는가?

모든 게 다 ‘하면 된다’가 통하면 그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겠지만 당신도 이미 알고 있듯 세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것에 부딪혀서 슬퍼하기엔 당신은 이미 잘 할 수 있는게 생각보다 많다.

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할 수 없는 것을 기분 좋게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면 된다’가 필요한 곳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당신이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모한 도전들과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는것!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