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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0일 18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20일 18시 50분 KST

[화보] 이산가족 : 북한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9명의 사연

'그 며칠이 67년이 됐다'

Pool via Getty Images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이 진행됐다. 이금섬(92, 남측)씨가 아들 리상철(71, 북측)씨를 만났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 째날 일정이 20일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컴퓨터 무작위 추첨을 거쳐 상봉 대상자로 최종 선정된 남측 이산가족은 모두 89명이다. 통일부에 등록된 생존 이산가족(7월31일 기준)은 5만6862명에 달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던 사람들 중 7만5741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7월 한 달 동안에만 316명이 끝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정례 상봉과 생사확인, 서신 교환, 고향 방문 등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확대하는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존 이산가족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아래 사진들은 지난달 게티이미지가 소개한 이산가족 9명의 사연이다. 이들은 고이 간직한 옛 사진 등을 띄운 화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민동성(82)
    민동성(82)
    Woohae Cho via Getty Images
    인천 - 7월18일 : 민동성(82)씨가 인천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북한을 떠날 때부터 간직해왔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북한 황해도 금천군 출신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쟁을 피해 할머니, 고모와 함께 다른 이모가 살고 있던 인천으로 내려왔다. 원래는 인천에 며칠 동안 머물 계획이었지만 ‘그 며칠이 67년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그는 그 이후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중국인 브로커를 통해 여동생을 찾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브로커는 여동생, 민씨와 동갑으로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또다른 고모 사진을 가져다줬다. 그는 오래된 사진과 새로 구한 사진 속 얼굴들에서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고향과 개인사가 편지에 매우 상세하게 적혀있긴 했지만, 민씨는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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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일용(81)
    윤일용(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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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 7월12일 : 윤일용(81)씨가 서울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70년 전 북한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배경으로 앉아있다. 그의 가족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 북한 공산당이 시행한 38선 이북 토지개혁운동과 지주계급 자산 몰수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윤씨의 가족은 지주계급이었고,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해 산악지대로 옮겨가야 했다. 윤씨의 고향 장단군(현재 황해북도 장풍군)은 비무장지대(DMZ)에 있다. 휴전선이랑 무척 가까운 탓에 남쪽의 군사 전망대에서 언제든 고향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 군사지역으로 변하고 긴장이 고조되면서 고향이 기억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윤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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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옥순(93)
    박옥순(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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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 7월20일 : 북한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인 박옥순(93)씨가 자신의 서울 아파트 벽면에 비춰진 가족사진 앞에 앉아있다. 박씨가 남편을 따라 서울에 와서 살고 있었을 때, 그는 부친이 북한의 고향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장례식에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으나, 1948년 38선을 둘러싼 긴장이 갑급격히 고조되면서 3년 동안 서울로 돌아올 수 없었다. 1951년 중국군이 한국전쟁 당시 뛰어들자 박씨는 함경북도 사포리(동해) 항구에서 돛단배에 몸을 실었고, 운 좋게도 남쪽의 동해 묵호항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미군의 전차상륙함(LST)에 올라탈 수 있었다. 부산에서 사촌을 우연히 만난 박씨는 서울에서 남편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 당시 시련을 겪었음에도 자신은 매우 운이 좋았다며 북쪽에 남겨둔 이들이 그저 그곳에서 평탄한 삶을 살아왔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신께 감사할 것은 오직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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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연(84)
    백성연(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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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 7월18일 : 올해 84세인 백성연씨는 21번째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후보자로 선정됐던 250명 중 하나다.  백씨는 중국군이 북한을 도우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951년 남쪽으로 내려왔다. 원래는 자매와 함께 인근 마을에서 며칠 동안 피해있을 계획이었으나 멀리 대구까지 계속 내려가야만 했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자매가 숨지면서 그는 고아가 됐다. 1968년에 기적적으로 서울에서 할머니와 사촌을 찾았지만, 북쪽에 남아있는 가족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7월28일, 북한 정부는 남측이 조회를 의뢰한 250명 중 163명의 생사확인 결과를 통보해왔다. 백씨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백씨는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100명 안에 들어 조카들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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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구현(90)
    김구현(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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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 7월19일 : 북한 평안북도 구성군(현재는 구성시)이 고향인 김구현(90)씨가 의정부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고향 지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전까지 공산정권 하에서 애국주의자이자 종교 지도자였던 부친을 돕곤 했다. 부친과 반대파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는 걸 목격하자마자 그는 미군정이 통치하고 있던 남쪽으로 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47년 5월 고향을 떠나온 이후 2003년까지, 그는 고향의 가족 중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향수병을 앓던 김씨는 미국에서 위성사진을 구입해 고향을 재현한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2003년, 그는 고향에서 온 탈북자를 만나 가족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중국 브로커를 통해 가족들과 연락을 시도했고, 마침내 2015년 형제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형제는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김씨는 4000달러를 송금했다. 다음 번 통화에서도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씨에게는 보낼 돈이 없었고, 그 이후로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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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훈(82)
    백석훈(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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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 7월12일 : 백석훈(82)씨가 서울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고향 평안북도 박천군 지도를 그려보이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 공산당은 38선 이북에서 토지개혁과 지주계급 자산 몰수를 단행했다. 지주계급이었던 백씨의 가족 역시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의 가족은 1947년 '남쪽'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 중국군이 남쪽까지 치고들어오자 백씨의 가족은 부산까지 피난을 떠나야 했다. 거의 70년 동안,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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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학(83)
    이종학(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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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 7월12일 : 이종학(83)씨가 북한에서 있었던 여자 형제의 결혼식 사진을 배경으로 앉아있다.  그는 1951년 한국전쟁 때 형제, 여자 형제와 경기도 개풍군 출신인 그의 남편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다른 식구들은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피난을 떠난 건 그 네 명 뿐이었다. 그는 공군에 입대해 방첩부대원으로 참전해야 했다. 이씨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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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환(77)
    박성환(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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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 7월14일 : 박성환(77)씨가 북한에서 찍은 가족사진 앞에 앉아있다.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 발발 전 서울의 한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그의 가족들도 함께 이주했다. 그의 부친과 삼촌은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전쟁 이후로는 북한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의 부친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형제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불운하게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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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기열(89)
    배기열(89)
    Woohae Cho via Getty Images
    일산 - 7월19일 : 황해도 안악군 출신인 배기열(89)씨가 일산의 아파트 벽에 비춰진 수학여행 기념사진 앞에 앉아있다. 배씨는 1949년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그는 1951년 중국군 개입 당시 다른 피난민들과 마찬가지로 걸어서 부산까지 피난길을 떠나야 했으며, 피난 도중 결혼을 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그는 서울로 돌아와 가족들을 찾기 시작했다. 3년 전까지는 연락이 닿은 5학년 학급 친구들과 매년 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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