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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오늘, 일본군 731부대 생체 실험 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731부대의 만행이 알려지기까지는 40여 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그마저도 일부만 밝혀졌다.

'한겨레' 1992년 4월 15일
'한겨레' 1992년 4월 15일 ⓒ한겨레

일본(관동)군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중국 전쟁 포로 등을 대상으로 인간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아울러 해당 지역 주민에게는 콜레라, 티푸스, 페스트 등 강력한 전염세균 폭탄 투하 실험도 벌였다.

당시 731부대가 잡아들인 전쟁 포로는 세균전용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731부대는 생체실험 대상자를 가리켜 이른바 ‘마루타’라고 불렀다. ‘마루타’는 일본말로 ‘껍질 벗긴 통나무’라는 뜻이다. 이 섬뜩한 단어는 이들에게 일종의 암호로 통했다.

일본은 만주지방에 특수세균전을 위한 731부대를 세웠다. 이때 전쟁포로 등을 대상으로 각종 생물무기 인체실험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은 만주지방에 특수세균전을 위한 731부대를 세웠다. 이때 전쟁포로 등을 대상으로 각종 생물무기 인체실험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731부대의 잔학한 만행은 194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희생된 ‘마루타’만 3000명. 이들 가운데 살아나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중에서 살포한 세균전으로 인한 피해자도 수만 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31부대의 만행이 알려지기까지는 4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마저도 일부만 밝혀졌다. 여기에는 731부대를 비롯한 일본군 관계자와 일본 정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들의 조직적인 증거 은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책임 회피는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회피할 수 없는 증거들

'경향신문' 1994년 8월 14일.
'경향신문' 1994년 8월 14일. ⓒ경향신문

‘731 부대원들이 페스트균을 사람 몸에 주입한 뒤 해부하고 있다.’

마침내 눈으로 확인한 전쟁 범죄의 만행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오늘로부터 24년 전인 1994년 8월14일, 일본군 731부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하얼빈에 남아 있는 옛 731부대 동력실 건물 잔해. '한겨레' 자료사진. 
중국 하얼빈에 남아 있는 옛 731부대 동력실 건물 잔해.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이 사진은 중국 하얼빈 옛 731부대 터에 자리 잡은 <죄증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일부다. 박물관 쪽의 협조를 얻어 국내에 반입됐다. 공개된 사진에는 하얀색 방호복을 갖춰 입은 731부대원들이 무리 지어 있다. 이들은 ‘마루타’를 수북이 쌓아놓고 페스트균과 콜레라균 등을 주입하거나 인체 장기를 해부하는 등 온갖 만행을 일삼은 장면도 담겼다. 특히 임신부와 아기를 해부하고 있는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는 그동안 야사처럼 떠돌던 ‘생체실험 전체의 과정이 일체의 마취 없이 이뤄졌다’던 일부 가해자의 증언과 폭로 수기 문서의 기록이 사실로 입증되었다는 걸 뜻한다.

731부대 이시이 시로 군의중장. '한겨레' 자료사진.
731부대 이시이 시로 군의중장.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공개된 사진에는 731부대를 시찰 나온 일본군 사령관의 모습과 함께 ‘731부대의 실험 대상으로 전쟁 포로들을 잡아들이라’는 공식 작전 명령서도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자료는 그동안 가해자들의 철저한 증거인멸 작업으로 구체적 물증이 공개된 적 없었던 731부대의 인체실험 실상을 밝혀줄 유력한 증거가 됐다. 아울러 국제 소송에서 일본의 전쟁 범죄 책임을 묻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731부대의 만행, 어떻게 알려졌나

'경향신문' 1981년 5월 26일치.
'경향신문' 1981년 5월 26일치. ⓒ경향신문

731부대의 만행이 처음 드러난 발단은 1981년 일본 교수가 쓴 논문이었다. 일본 국립 나가사키 장기대학의 쓰네이시 케이이치 조교수는 1981년 5월 <사라진 세균전 부대>란 제목의 연구서를 통해 731부대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밝혀냈다. 쓰네이시 교수는 “세균전 전문부대인 731부대가 유행성출혈열을 세균전에 이용하기 위해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까지 한 뒤 이들을 모두 독살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731부대의 인체실험 방법까지 상세히 기술했다. 보고서가 밝힌 실험 방법은 아래와 같다.

“건강한 인간에 병원체를 보유한 진드기를 빻아 넣어 만든 식염수유제를 주사해 , 유행성출혈열에 감염시킨다. 발병으로부터 5일 이내에 산사람으로부터 내장을 적출, (중략) 병원체가 남아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결국은 산 채로 해부한다. (중략) 패전 직전에는 증거인멸을 위해 이 실험에 이용한 포로들에게 밥에 청산가리를 타 죽이거나 권총으로 모두 사살했다.”

731부대에서 이뤄진 생체실험. '한겨레' 자료사진
731부대에서 이뤄진 생체실험.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731부대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밝힌 쓰네이시 교수의 보고서는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 731부대는 ‘일본(관동)군 방역급수부’란 이름으로 창설돼 표면적으로는 전염병 예방이나 전쟁 중 음료수의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만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연구 보고서는 추후 731부대의 연구 결과가 미군의 세균전 연구에도 사용되었고, 여기에 731부대 생존 간부들이 협력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쓰네이시 교수의 연구 보고서에 이어 731부대의 실상을 폭로한 추리소설도 출간됐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1982년 <악마의 포식>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한다. 모리무라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약한 731부대 소속의 전직 요원 60여 명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데 애를 먹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 책은 출간한 지 4개월 만에 70만 부나 판매됐다.

ⓒ한겨레

이런 가운데 당시 731부대원들이 전쟁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기는커녕 일본 사회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하나씩 밝혀졌다. 731부대의 생체 실험책임자였던 의학자는 당시의 실험 결과를 일본의 의학지에 자랑스럽게 소개했음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문제의 의학자는 <국소내한성의 비교민족학적 연구>라는 제목의 731부대의 연구 결과 발표에서 8살~84살의 일본인, 중국인, 몽골인 등 500명을 대상으로 동상에 대한 업종별 저항성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 의학자는 “생후 3일된 신생아에 대해서도 한랭에 대한 피부혈관의 반응이 관찰됐다”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일본의 범죄와 미국의 은폐

일본에서 731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 관련자들의 폭로와 생체실험을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쏟아졌다. 옛 731부대 관계자 6명이 당시의 만행을 폭로한 책도 출간됐다. 이들 가운데 여러 건의 해부를 목격했다는 부대원은 “나는 수술용 칼로 생체의 가슴을 절개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부분의 절개 수술은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됐다”며 “실험 대상자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 비명은 곧 사라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한겨레

1992년 4월에는 일본군 731부대의 인체실험 자료가 공개됐고, 1993년 8월에는 731부대 세균전 자료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5년 7월에는 ’1940년 당시 일본군 731부대의 세균전은 육군참모본부의 지시와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승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문서도 발견됐다. 1998년에는 731부대의 생체실험에 이용된 사람들의 이름과 실험 시간, 장소, 체포 경위, 심문 내용, 생체실험 결과 및 인적사항이 기록된 문서와 이를 촬영한 사진 원본이 연이어 발견됐다.

하지만 731부대원 일부의 폭로와 계속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책임지지 않았다. 일본군부와 정부는 731부대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전쟁 범죄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731부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국제 재판에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군 731부대의 각종 생체실험 자료들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이들의 만행을 은폐해왔기 때문이다.

'한겨레' 2010년 3월 20일
'한겨레' 2010년 3월 20일 ⓒ한겨레

1945년 10월, 731부대장의 오른팔이었던 대령과 곤충학자인 소령, 전 육군참모 등 3명을 미 육군의 생물전연구 기관 캠프 데트릭의 샌더스 중령이 신문한 기록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전쟁범죄자의 적발과는 별개의 문제이니 안심하고 얘기해주기 바란다 . (중략 ) 대통령에 제출하는 비밀 보고 자료를 작성하기 때문에...”

샌더스 중령은 731부대의 신문 보고서를 1947년 12월 12일 미 국방부에 제출한다. 그가 제시한 최종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일본인 과학자들이 수백만 달러의 비용과 오랜 세월을 거쳐 얻은 자료다. 이런 정보를 우리 쪽 연구소에서는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체실험은 양심의 가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를 총액 25만엔 정도로 얻었다. 연구에 투입된 비용을 따져보면 이는 미미한 금액이 될 것이다. 스스로 이런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731부대, 생체실험의 비밀. '한겨레' 자료사진
731부대, 생체실험의 비밀.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불완전한 과거 청산은 또 다른 전쟁 범죄를 양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일왕과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처벌과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일본군 전쟁범죄 관련 ‘Interagency Working Group(IWG)’문서군 중 한국 관련 자료

<제 731 부대: 일본관동군 세균전부대> 송소석 

신동아 2005년 8월 호, <패전 60년, 다시 불거진 일왕 전쟁책임론> 이창위

<역사를 개작하는 우파세력의 최근 동향> 타와라 요시후미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아카하타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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