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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4일 15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4일 16시 51분 KST

안희정은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우리 법은 성범죄에 대해 너무 높은 수준의 폭력을 원한다

huffpost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 또는 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2006도5979)”

이는 한국에서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여기서의 ‘항거 불능‘은 강도죄에서의 강도범이 저지르는 위협과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실무에서의 경향은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인 경우에도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경우’라면 폭행, 협박이 있었다고 인정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항거불능은 강간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아주 강력한 전제조건이다.

위력에 대해서도 판례는 ‘승진이나 전출 등을 언급하며 10여 명의 부하 여직원을 추행하고 간음한 회사 사장’에 대해 징역 5년의 실형을 확정한 사례가 있으니 14일에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해 ”피해자가 안희정과 미투 운동 관련한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하고 왔다는 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하고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는 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볼 때 ”적어도 피고인이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피해자가 이에 제압당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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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가 성립하는 조건이 이렇다 보니 성폭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으로 처벌하지 못하고 주거침입이나 추행으로 처벌하는 아주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상급심으로 가면 나이 많은 판사들에 의해 유죄가 무죄로 바뀌기도 한다. 적용 법률에 따라 판결이 뒤바뀌기도 한다.

법과 사회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처벌하길 원한다. 그러면서 피해자에 대해서도 ‘보호가치 있는 피해자‘가 되길 주문한다. 그래야만 가해자를 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의 피해 사례가 중하지 않으면,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명확한 권력관계가 있지 않으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수반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의 반복은 특수한 흉악범에 해당되지 않는 성범죄자를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안희정이 피해자를 마치 ‘꽃뱀’인 양 이야기를 흘렸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안희정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재판부는 안희정에 대해 선고하며 ”이처럼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 행위라는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라는 의미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해져야 될 사회적 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 이런 책임들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고 실제로 그와 같은 사례가 다수 나타난 바 있다”며 ”성폭력 행위에 대한 기존의 처벌 규정이 (피고인의) 책임과 행위 사이에 불합리한 괴리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안희정은 무죄가 됐다. 이렇게 또 법의 사각지대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이것은 강간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결이 또 하나 추가 되었다. 이제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범죄에는 이르지 못한 행위’에 대하여 실수 내지는 낭만으로 인식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요청하는 흐름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잔인한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아니다. 일상에서의 위협, 성폭력에 대해 대처하라는 것이다. 불법촬영 범죄가 그것이고 김지은 씨로 대표될만한 직장 내 성폭력이 그것이다.

나는 성범죄가 강력범죄로만 이야기되는 흐름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행법은 더 다양한 폭력과 위력과 수단을 성폭력의 범죄 구성요건으로 정해야 한다. 성범죄가 어느 날 뉴스에 가끔 나오는 특별한 범죄가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또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범죄임을 고려해야 한다.

현행법이, 현행 재판부의 인식의 균열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검토해주길 바란다. 그건 피해자를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에게 적정한 자기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게 할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