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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4일 13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4일 13시 55분 KST

'반동성애 입학 서약,' 생명 죽임의 정치

huffpost

1. 2018년 8월 7일 한 장로 교단 재판국에 의하여 명성교회 세습이 ‘합법화‘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후에 다양한 항의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신학대학 교수들은 교회세습을 합법화한 재판이 신사참배결의에 버금가는 것이라며, ‘한국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우노라!’라는 비장한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또한 신학대학생들은 물론 교단 목회자들도 반대 성명문을 발표하는 항의를 하였다. 그뿐인가. 어느 강남의 대형교회의 담임자가 발표한 ‘서간문’이 일반 뉴스에도 소개되면서, 곳곳에서 이러한 교회 세습 사건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돌연한 집단적 문제 제기 장면들을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착잡함과 아쉬움이 더욱 크다.

2. 바로 얼마 전 한국의 ‘장자 교단‘이라고 자칭하는 이 교단은 ‘동성애 지지’ 학생들은 목사 안수는 물론 입학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을 했다. 그리고 5월 17일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 채플이 끝난 뒤 강단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던 소위 ‘무지개 깃발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6월 26일 징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7월 4일, 이 신학대학의 총장은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반동성애 입학 서약”을 하겠다는 공식적 발표를 했다. 

3. 신학대학은 이 세계에 치열하게 개입하면서 시대정신이 반영하고자 하는 ‘인간 권리의 확장‘의 문제를 신학화/철학화하는 지식이 생산되고, 그 지식과 실천을 가르치는 과제를 지닌 공간이다. 신학 대학과 교회가 지속적인 긴장관계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고등교육(higher education)기관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신학대학‘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우선적 초점은 ‘이미의 세계 (world of already)’ 이다. 그러나 대학은 ‘이미의 세계‘와 ‘아직 아닌 세계 (world of not-yet)‘라는 두 축을 생각하며 다양한 작업을 해야 하는 과제를 지닌 곳이다. 교회와 대학은 그 존재의미와 방향성이 다르다. 신학대학이 교회에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이론과 실천, 앎과 행위는 언제나 나선형적 관계속에서 지속적인 긴장의 거리를 유지하며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통로의 의미를 지닌다. 교회의 우선적 관심이 이론/지식체계의 생산이 아닌 실천에 있다면, 대학은 그 실천의 내용과 방향성을 확장할 수 있는 이론/지식을 복합화하면서, 학생들이 이 세계에 개입하는 복합적인 지식을 배우도록 하는 것에 있다. 왜곡된 지식이 아닌, 이 땅과 세계에 굳건히 뿌리내린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교회와 같은 소위 ‘현장‘에서의 실천이 왜곡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을 현장과 상관없는 ‘상아탑’이라는 냉소주의적 이해는 매우 왜곡된, 위험한 반지성주의적 표현이다.

5. 그런데 신학대학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교회‘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성애나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시대를 거슬러서 거꾸로 가는 것을 교회들이 주도하고 있다. 대학이 그 교회들의 ‘반(反)인권적’ 요구에 밀려서, 학생들을 처벌하고, 동성애 ‘지지자‘를 ‘색출‘하여 목사안수는 물론 입학조차 못하게 한다는 결정을 한다. 이것으로도 교회의 요청에 흡족하지 않아서, 이제는 입학생들에게 ‘반동성애 서약’까지 하겠다고 한다. 교회의 대학지배―마치 유럽의 중세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현상이다.

6. ‘교회 세습‘과 신학대학의 ‘반동성애 정책‘의 문제의 심각성을 저울질해서 판가름해야 한다고 한다면, 나는 교단과 신학대학의 ‘반동성애 정책‘이라고 하겠다. 교회 세습도 물론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교단과 신학대학의 ‘반동성애 정책과 제도‘들은 타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생명 죽임의 가치‘를 교회와 사회에 확산하는 것으로서, 반(反)인권적 행위이다. 그 사건의 결과와 피해의 정도가 세습보다 훨씬 ‘생명파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반동성애 정책‘은 성소수자들에게 가하는 ‘사회적/종교적 죽임의 혐오정치’로 작동된다. 이 점에서, 신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성서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그 혐오정치의 폐해는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7.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이러한 성소수자 혐오의 정책과 가치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이러한 ‘생명죽임의 정책‘에 신학대학의 교수들, 학생들, 목회자들이 ”한국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우노라”하는 비장한 격문을 발표하게 되기를 바란다. 교회와 신학대학이 호명하는 그 ‘예수’가 자신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에게 향하는 차별과 혐오의 정책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에 대하여 비판적 성찰을 하는 대학과 교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6년에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이라는 소책자가 ”성소수자연구회”에 의해서 나왔다. 요청을 받아서 제12장, ”종교인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에 ”성소수자,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나의 글이 실도록 했다. 12가지의 질문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전체로 볼 수 있다. PDF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웹사이트도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다음의 링크를 보면 좋겠다.

1) PDF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링크: https://lgbtstudies.or.kr
2) 주제별로 볼 수 있는 링크:
https://www.huffingtonpost.kr/author/lgbtstudies-kr/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