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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6일 17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6일 17시 21분 KST

'소성리' 에 대해 알고 있는 네댓 가지

별처럼 평화가 내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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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이야기

‘소성리‘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소성리 마을 이야기이다. 영화는 마을 풍경과 할머니들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작물을 심고, 운동을 하고, 풀을 베고, 간식을 먹고, 농작물을 다듬는 소성리 일상은 평화롭다. 영화는 무려 30분 간 소성리의 일상 풍경을 가만히 담고 있다. 일상을 일상적으로 담고 있는 낯선 영화가 바로 ‘소성리’이다. 그러나 사실상 영화 초반 담겨진 소성리의 평온함은 표면의 잔잔한 이면에 내재된 대풍랑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대풍랑을 겪어낸 이들이 품은 내공을 영화적으로 드러낸다고 할까? 일상이 영화가 되는 혹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 전쟁과 평화

‘소성리’의 평화로운 일상 위로 마을 할머니들의 말이 겹쳐진다. 소성리로 시집온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첫 아들이 죽었을 때, 남편이 죽기 전 나눈 말... 현재 일상적 풍경 위로 들려지는 그녀들의 말은 계속될수록 개인의 기억에 멈추지 않고 공간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소성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은 소성리 마을 그 자체인 것이다. 사람과 공간이 둘이 아니다.

이어 영화는 평화로운 소성리가 사실은 한반도 평화유지라는 명목으로 사드 배치를 확정한 장소임을 알려준다. 평화를 위해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는 논리는, 안전을 위해 총기소지를 합법화한 나라의 (비)논리와 닮아있다. 안전을 위한다는 그 총기로 오늘도 수많은 총기 살해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자명한 현실 앞에서, 평화를 위해 무기를 배치한다는 명목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무기가 진정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무기의 연결고리는 전쟁이지 평화가 아니다. 평화는 일상 그 자체가 평화인 것이다. 영화 ‘소성리’는 “평화” 그 자체를 품어 안으면서 평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3. 말과 풍경

‘소성리‘는 평화로운 마을 풍경과 속내 드러낸 할머니의 말이 주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마을 풍경과 할머니의 말은 이미지와 소리의 어긋남이 두드러진다. 시각과 청각의 어긋남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차를 자아낸다. 이로 인해, <소성리>는 공간의 두께를 만들어낸다. 풍경과 말의 어긋남과 시차는 과거와 현재를 포개면서 현재 속에 과거를 기입한다. 일명 ‘역사의 지층’을 만들어낸다고 할까?

그럼에도 ‘소성리‘는 할머니의 말들이 마을 풍경에 삼켜지거나 마을 역사를 설명하게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말을 통해 세월 자체를, 마을의 존재감을 체감하게 할 뿐이다. 여기에 ‘사람내음’을 일깨운다. 영화는 여느 공간 영화와 사뭇 다르게, 역사를 품은 무심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을 품은 정감어린 마을 풍경과 친밀함에 전제된 속내들로 소성리의 어제와 오늘을 풀어낸다. 그래서일까? 영화 <소성리>는 사드배치 반대투쟁 역시 마을 일상 속으로 녹여낸다. 농사일과 사드투쟁이 둘이 아닌 것이다.

 

4. 역사와 현장의 접경

영화는 한층 더 파고든다. 사드배치를 결사반대하는 할머니들의 기억 속에는 한국전쟁이 놓여있다. “6.25 때와 똑같다.” 사드투쟁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마주한 것이다. 말과 풍경의 불일치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어긋남 속에서, 현장 투쟁과 기억 틈새에서, 영화는 전쟁 생존자들의 트라우마와 소성리의 사드배치를 접속해낸다. 역사와 현장을 이어낸 것이다. 영화 ‘소성리‘는 미디어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의 오랜 내공 속에서 마주한 현장 감각과 역사 감각을 통해, 투쟁과 사람과 공간 나아가 역사를 한 궤로 이어낸다. 사드배치 현장 투쟁 과정에서 공식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전쟁 트라우마를 직감적으로 읽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성리’는 새로운 현장투쟁기이자 새로운 역사쓰기이다.

 

5. 오래된 미래의 “길”

‘소성리’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영화는 할머니들이 쉬어가는 길, 동네 오가는 길, 열매가 떨어져있는 평화로운 길에서 시작한다. 그 위에 시집 왔을 때 처음 들어선 낯선 마을길, 아버지 죽음 다음날 오른 피난길,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전쟁 길을 겹쳐낸다. 현재와 과거의 길을 겹쳐낸 영화는 다시 현실의 길을 위태롭게 담아내기 시작한다. 사드배치를 위해 탱크가 들어오는 길, 서북청년단이 들어와 사이에 두고 공박하는 집회 현장의 길이 꿈의 길과 맞물린다. 남편이 죽고 정신없이 일만하던 시절을 논하며 걷는 순분 할머니의 현재와 과거가 엮인 길, 숲 속을 정신없이 올라가는 꿈의 길과 사드 설치를 위해 공중을 오가는 비행기의 길이 엉켜 들어가면서 그녀들의 불안을 마주하게 한다.

길이 다니는 곳이고 이어진 곳이라면, ‘소성리‘의 다양한 길은 일상과 투쟁, 인물과 공간, 말과 풍경, 역사와 현장을 이어내고 있다. 삶의 터전이자 투쟁의 공간 그리고 역사의 공간으로서 “길”을 닦고 나가아고 있다. 실제로 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쉬는 길과 사드배치를 위해 트럭이 들어오는 길, 서북청년단과 대치하는 길과 꿈 속에서 찾아 헤매는 길을 이어내고 함께 걸어다닌다. ‘소성리’의 숙제이자 답이 어쩌면 이 길 속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