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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만 존재하는 범죄는 없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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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주변 지인의 제보로 자신의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 A씨는 삭제해도 계속 다시 생성되는 자신의 동영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해 생을 마감한다. A씨의 친구는 죽고 난 다음에도 계속 친구의 동영상이 유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것에 분개, 업체와 경찰 등에 항의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다 탐사보도프로그램에 제보한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친구를 대신해 불법 동영상 문제를 추적하던 PD와 작가는 여기에 거대한 카르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 1131회에 담긴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사실과 많은 부분이 방송되었더군요. 이걸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읽을수록 이상한 비문(非文)이다. 방송에 보도된 것이 사실과 달랐다면 정정보도를 요청하면 될 터이다. 작성자는 정정보도 요청은 고사하고 이 방송으로 인해 생길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말해주지 않는다. 저 두 문장은 작성자의 문장 실력이 아니라 무의식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디언 슬립(Freudian Slip), 프로이트는 무심결에 속내를 드러내는 말실수는 의미불명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를 지칭한다고 했다. 아마 원래의 문장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많은 부분이 사실인 방송이었더군요. (웹하드 업체와 헤비업로더들이 더이상 장사를 못하게 되니) 이걸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실제로 작성자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알고 싶다> 웹하드편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시켜달라”였다. 정정보도도 고발도 아니라 적극적인 무관심을 요청한 것. 그래서 굳이 방송 내용을 다시 글로 쓴다. 방송에 따르면 웹하드 업체들은 유출영상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비업로더들과 결탁해 수익을 확보하고, 삭제지원을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삭제비용을 전가하고 있었으며, 헤비업로더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동영상은 환금성 높은 자산이 되고, 그 안에서 한명 한명의 구체적 개인의 삶은 누군가의 100원짜리 성욕 해소를 위해 파괴되고 있었다.

“내 삶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구호는 이 문제가 포르노그래피 내에서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이전 세대 페미니즘이 싸웠던 지점, 즉 포르노그래피가 만들어내는 재현의 구성적 힘(constituting power)을 문제시하는 차원을 훌쩍 넘어서 있다. 피해 여성들은 결코 피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이라는 점이 가장 절망스럽다고 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연인 사이에 일어난 데이트폭력은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범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낙태는 이제 다시 남성의 무기가 되었으며 유출영상을 돌려보며 “그러게 누가 떡치고 헤어지래?”(2018년 7월29일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에 올라온 글)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대체 성폭력이 아닌 섹스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

* 씨네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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