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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이던 그가 ‘유품정리인’이 된 이유

“우연히 목격한 죽음 때문입니다”

ⓒ한겨레

“현재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마지막(사망) 모습이 어떠할지 짐작이 돼요. 어떤 이는 나중에 고립될 위험이 있죠. 보통 잘 웃는 이는 설사 나중에 혼자더라도 마지막이 외롭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키퍼스 김석중(49) 대표는 유품정리인이다. 말 그대로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죽은 이의 지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유품으로 생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그는 역으로 살아 있는 이들의 현재 모습에서 마지막을 떠올린다.

2010년 일본 유품정리업체 키퍼스에서 영감을 얻어 부산에서 같은 이름의 키퍼스를 창업한 그는 한국에 유품정리라는 생소한 분야를 처음 소개한 이로 알려져 있다. 8년간 그의 손을 거쳐 정리된 유품만 수천톤이다. 고독사, 자살 등의 사회문제와 1인 가구 증가 등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더는 나의 마지막을 정리해줄 가족이나 이웃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다. 이런 이유로 최근 유품정리인이 주목받고 있다.

청소와 정리 대상이 유품인 것을 빼면 일반 청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유품과 물건은 다릅니다. 물건은 치우고 버리는 것이지만, 유품 정리는 유족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정하는 것이지요. 고인의 유지와 산 사람의 접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 작업도 일반 청소와는 다르다. 시취(주검에서 나는 냄새)를 특수 장비로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 구더기 등을 퇴치하는 살충제만으로 힘들다. 전문적인 지식으로 제대로 작업하지 않으면 이웃의 각종 항의가 날아오고, 작업자가 위험할 수도 있다. 이어서 그는 “비밀 엄수는 생명”이라고 말한다. 평소 교육자로서 덕망 있던 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다소 민망한 물건과 영상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유족과의 상담을 통해 부동산 매각, 폐기물 처리, 귀중품이나 유언장, 상속서류, 보험증서 등의 수색, 유품 배송도 유품정리인의 일이다. 유품정리는 민법의 상속과 관련된 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법률적인 지식도 갖춰야 한다. 자칫 가족 간의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몇 시간이면 끝나는 청소에 비해 유품정리는 얼마나 걸릴까? “때에 따라 다르지만 1주일 걸려 정리한 적도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보름 이상 진행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용은 십만원대에서 수천만원까지 다양하다. 고인의 거주지 크기나 유족과의 상담 내용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김석중씨가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석중씨가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석중씨 제공

그가 이런 독특한 세계에 발을 디딘 사연이 궁금하다. “우연히 목격한 죽음 때문”이라고 한다. 법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6년 만에 그일을 그만두고 창업했다. 무역 등을 기반으로 한 회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어느 날 주말 새벽,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불과 12시간 전에 퇴근하겠다고 인사한 직원의 죽음을 알리는 문자였다. 20대 후반이었던 직원은 주말에 바다로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차량이 추락하는 바람에 세상을 등졌다. 유난히 볼에 여드름이 많고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직원의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가족처럼 지낸 직원의 죽음은 성공을 위해 달리기만 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오르던 때 운명처럼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됐다. 일본 ‘일본방송협회‘(NHK)의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유품정리 전문 회사인 키퍼스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였다. 2007년, 대표 요시다 다이치에 반한 그는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한국을 오가며 3년간 유품정리 일에 매달렸다. 연수 기간 유품의 가치에 대해서도 배웠다. “어떤 분의 다락방에서 동전 수집 앨범을 발견했죠. 후쿠오카에 사는 딸이 도쿄에 살다가 고인이 된 부친의 집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이었죠. 젊은 날부터 모은 동전엔 고인의 인생이 투영돼 있었어요. 유품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접었죠.”

그는 고독사하지 않기 위한 생활 지침을 소개한 요시다 다이치의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실제 일본에서 경험한 현장은 30% 이상 고독사였다. 일본에서 나날이 성장하는 장례 산업에서 고수들을 만나면서 이 직업에 애정이 깊어졌다. 사망 후 유족에게 보낼 편지를 미리 작성해주는 ‘천국에서 온 편지’ 사업이라든가 유골을 우주에 뿌리는 ‘우주장’ 등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창업 초기 일감은 몰려들었다. 그만큼 죽음의 현장을 많이 목격했던 것이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초창기 힘들었죠. 매일 죽음에 빨려들어 가는 것 같았어요. 눈을 감아도 흑백사진 같은 영상이 떠올랐지요.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는 “고인들과 대화하자”고 결심하면서 편안해졌다고 한다. “결국 나와의 대화였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런 경험을 유족도 가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유품정리인이 할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 김석중씨.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 김석중씨. ⓒ김석중씨 제공

그는 현재 유품정리업계가 안타깝다. 개업 초창기와 달리 일반 청소업체도 뛰어들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저 비즈니스 모델로만 생각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유품정리는 죽음과 연관되어있어요. 내 죽음을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죠. 죽음을 생각하면 현재 내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데, 그런 철학적인 소프트웨어가 결여되어 있어요.”

그에게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100년 살 것처럼 굴죠.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을 잘 살고 내일을 잘 살아야 100년 살 수 있어요. ‘나중에 먹고살 만하면 하자’란 생각 버리고 소중한 일을 미루지 않는 것, 소중한 이가 떠나고 난 후 후회하지 말고 지금 아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준비법입니다.”

그는 유품정리에서 우리 사회의 심각한 고독사 문제를 봤다. 지난 12월 ‘고독사 예방 대책 연구소’를 그가 연 이유다. “고독사를 문제로 보고 지적하는 얘기는 많지만 일본처럼 구체적인 예방 활동을 하는 데는 별로 없다”면서 하루가 멀다고 사회복지 전문가, 고독사 관련 연구자나 교수를 만나러 다니고 있다. 최근엔 중국인들의 유품정리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공기 속에 떠돌았다.

“유품정리인은 타인의 눈물로 장사를 하는 이가 아니라 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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