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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E 3회] “앞으로 이 돈 다 쓸 겁니다” 제주에서 사업하는 아일랜드 신부의 이야기 (영상)

이시돌협회 이사장 이어돈 신부 ②

  • 박수진
  • 입력 2018.08.19 21:24
  • 수정 2018.08.20 11:36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은 아마도 아일랜드 출신의 임피제 신부(본명 패트릭 J. 맥그린치)일 것이다. 임피제 신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20대 청년으로 제주에 와 지난 4월 선종하기까지 평생을 제주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는 척박한 제주 한림읍의 산을 개간하고, 육지에서 가축을 수입해와 목장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제주도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지역 경제’와 ‘사회적 경제’를 시작한 인물이다.

 

임피제 신부와 함께 해온 이들 중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를 떠나와 벌써 수십년째 제주에 살며 주민들과 어울려온 이어돈 신부(본명 마이클 리어던)가 있었다. 임피제 신부의 뒤를 이어 사단법인 성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이하 이시돌협회) 이사장을 맡아 목장, 호스피스, 요양원, 어린이집 등 지역 기반 사업들을 총괄하고 있는 그를 지난 7월 제주 한림읍 성이시돌센터에서 만났다.

 

ⓒRISE 3회 첫 번째 기사 보기

*[RISE 3회] 한국 최초의 사회적 기업은 1954년 한 아일랜드인이 만들었다 - 故 맥그린치 임피제 신부와 성이시돌협회 ①에서 이어집니다.

 

성당에서 자선이 아닌 수익 사업을 하는 이유

 

-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아일랜드에서 온 마이클 리어던 신부라고 합니다. 한국 이름은 이어돈. 사단법인 성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겸 제주 교구 금악성당 주임입니다.

 

- 한국에 수의사로 처음 왔다가, 신부로 다시 와서 33년째 살고 계시다고요.

 

= 처음 제주도에 온 건 1978년, 스물세살 수의학과 5학년 때였어요. 처음부터 한국에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제주도에 가기로 확정이 된 거예요. 부모님도 반대하고, 언어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가야하는 데도 막상 비행기 탈 때가 가까워지니까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더라고요.

와서 임피제 신부님께 많이 배우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2년 반 동안 수의사로 일하다 아일랜드로 돌아갔는데 다시 한국에 오고 싶어서 신부가 됐어요. 처음 아일랜드로 떠날 땐 못 돌아올 줄 알았는데 결국 1986년에 돌아왔고 한국에서 한 30년 살았어요.

 

- 이시돌협회는 어떤 곳이고, 지금은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나요?

 

 = 농촌산업개발협회 안에 사료 공장, 경주마 키우는 목장, 또 우유를 생산하는 성이시돌목장이 있어서 이 사업들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영리 사업 같지만, 여기서 나온 수익은 모두 직원들 월급 주고, 또 협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호스피스·어린이집에 투자하는 데 들어갑니다. 저는 이사장으로서 백원도 안 받고 있어요. 그래서 협회 전체적으로는 비영리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요양원과 호스피스, 어린이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해가고 계신가요?

 

= 모두 처음부터 협회 재단에서 100% 출자해서 만들었고요. 외부 후원금과 (요양원의 경우) 어르신들이 내는 돈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운영비 대부분을 협회에서 내고 있습니다. 호스피스는 선종을 앞둔 지역 주민이라면 신자든, 비신자든 상관 없이 100% 무료입니다.

얼마 전에 요양원 주방을 수리하면서 몇천만원이 들었는데, 그런 것도 다 재단 돈을 써서 운영비에 영향이 없을 수 있었어요. 여러 사업을 더 하고 싶은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위해서 이 돈 다 쓸 것입니다.

 

성이시돌목장
성이시돌목장 ⓒhuffpost/sujean park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가 된 성이시돌목장 내 건축물 테쉬폰. 이라크 인근의 전통 건축방식을 서양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임피제 신부가 한국에 들여와 현재는 당시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다.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가 된 성이시돌목장 내 건축물 테쉬폰. 이라크 인근의 전통 건축방식을 서양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임피제 신부가 한국에 들여와 현재는 당시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다. ⓒpenboy via Getty Images

 

- 1950년대에 첫 출발했고, 사회적 기업·협동조합·마을 기업의 목적과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사회적 경제 모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후원금을 모아서 기부하는 자선 사업을 할 수도 있는데, 직접 이렇게 고용을 하고 수익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임피제 신부가 처음 제주에 온 게 한국전쟁이 막 끝났을 때입니다. 그냥 도와주면 구걸하고 남에게 의지하게 될 것 같아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은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처음 협회를 시작할 때 목표였어요.

그래서 옛날에 양돈 사업을 할 때는 목장에서 돼지를 키우기만 한 게 아니라 주민들 대상으로 돼지 키우는 법 가르치는 학교도 만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목장에서 두 시간씩 배우고 실습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중에 누군가 잘 해서 ‘나는 나가서 개인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면 도와주는 식이었습니다. 그때처럼 지금도,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립을 잘 하는 것이 우리 사업의 목표입니다.

 

- 성이시돌목장은 제주도 관광지로도 유명해졌는데요. 앞으로 이 목장에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싶으시다고요.

 

= 목장 운영의 가장 큰 목적은 처음 열었을 때나 지금이나 일자리 제공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기 싫어해서 직원 찾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이제는 목장도 다른 방식으로 꾸려가려고,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관광 사업을 한다면, 보통 하는 흔한 관광 프로그램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아이들의 생태 체험 프로그램이에요. 우리 목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제주도민들의 미래를 위해서 자연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수익 사업을 할 때) 항상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갈등이 있어요. 오로지 돈 버는 것만을 추구하지 말자는 생각과, 어쨌든 (원래 목표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돈을 더 빼앗아올 수 있을까’라는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이시돌협회에서는 생태관광과 별도로, 목장의 동물들과 청소년들이 교류할 수 있는 청소년 보호관찰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마이클 리어던 이어돈 신부
마이클 리어던 이어돈 신부 ⓒRISE

 

″평화롭고, 정의롭게, 자연 그대로”

 

- 여러 사업을 운영하면서 ‘진정한 발전의 의미’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살다보니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가 하나 있더라고요. 저도 어렵지만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건데요. 바로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기도’입니다. 가끔 자기를 돌아보고 “내가 이걸 왜 하는 건가?”라고 평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개인만 그런 게 아니라, 국가도 “이걸 왜 하는 건가?” 중간에 자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이건 아니다’, ‘계속 하면 안 된다’라고(잘못 됐을 때 멈출 때를 알게 돼요.) 사람들은 가끔 처음에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돈만 좇아가게 되기도 하거든요.

다른 가치를 잊어버리고 과학적인 발전만 계속한다? 그건 진짜 발전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서울 같은 환경이 아니어도 여기 시골에서 너무 행복하거든요. 작년보다 더 벌거나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처럼 느끼는데, 사실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천주교에서는 신자라면 스스로를 성찰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런 걸 자본주의에도 적용하면 좋겠어요. 숫자만 보고 ‘아, 많이 벌었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그 숫자만큼 버는 동안 자연이, 동물이, 또 다른 것들이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가끔 신문 같은 데서 보면 소, 돼지, 닭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육하는데 관리하는 방법을 바꿔야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아직 한국에서는 동물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요. 개 고기를 먹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개를 도축하는 방식은 절대 찬성하지 않아요. 동물도 우리처럼 우주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숫자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다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 제주 지역 활동에도 종종 참여하시는데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미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현장에서는 주민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 운동가들이 고맙다고 가끔 말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나한테 직접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말 안 한 사람 중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겠죠. 지금도 저는 해군기지가 평화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군(과 연합군)이 이라크에서 IS를 몰아냈다고 하지만, 그곳에 평화가 온 건 아니잖아요. 평화를 이루려면 아직 복잡한 과정이 남아있죠. 전쟁에서 이기는 건 평화를 이루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이에요.

세계는 아직도 군비경쟁을 하고 있어요. 이것도 숫자와 돈만 보는 것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전쟁이 계속 일어나야만 돈을 버는 무기 회사들이 아직 있잖아요? 한국도 북한과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계속 말하지만 아직 한국 남자들 다 군대 가죠. 군대 가서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나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웁니까? 적을 죽이는 방법을 배우죠. 그 시간에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 앞으로의 사업은 어떻게 해나갈 계획이신가요?

 

= (우리가 한림읍에 땅이 많으니까) 유혹도 많이 와요. 땅 팔라고. 물론 어떻게든 돈 많이 벌면 그걸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더 많이 도와줄 수 있고, 더 인정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땅 임대하고 팔아서 돈 버는 건, 우리한테는 아니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벌 수록 욕심이 더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면 자기 입장만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시돌협회는 돈 벌기 위해서 운영하는 자본주의 회사가 아니에요. 앞으로 땅 팔지 않고, 사람들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잘 살 수 있도록, 평화롭고 정의롭게, 제주도민 미래를 위해서 자연 그대로, 생태적으로 유지할 겁니다.

 

*인터뷰 답변은 명료성을 위해 요약, 정리되었습니다.

 

# RISE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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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쇼핑 카테고리만 하나 만들어도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온라인쇼핑 플랫폼을 활용해 공익을 위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한 이커머스 기업의 이야기 (인터뷰 기사 보기)

3회. 제주도 사람들과 수십년 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 신부(神父)들: 성이시돌법인 임피제·이어돈 신부의 이야기 (첫 번째 인터뷰 보기)

 

ⓒhuffpost korea/sell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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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E 3회. 성이시돌법인 임피제·이어돈 신부 편

촬영/ 강한(sellev.), 김한솔(sellev.), 이윤섭

영상 구성, 편집/ 강한(sellev.), 김지현(sellev.)

영상 디자인 / nature(sellev.)

대담/ 김지현(sellev.), 박수진

정리/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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